쾌락과 고통, 그 희극과 비극의 술.
1. 전부가 아니겠지만 대게가 부친이나 모친이 술 잘 드시면 자식들도 술 많이 마실 가능성이 있더라. 아닌 경우도 있고, 맞는 경우도 있고 특정할 수는 없겠으나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을 거 같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또한 술을 좋아하셨고 할아버지도 술을 좋아했다고 하니 유전은 있긴 있는 모양이다.
2. 군대 있을 때 동동주까지는 아닌데 술 비슷한 거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소대의 특수한 상황이긴 해도 소대 단위의 취사를 했었던 터라 남는 밥으로 동동주 비슷하게 흉내는 내봤다. 휴가 때 소량의 누룩 한 덩이를 가지고 들어가서 밥 알에 누룩과 물을 항아리에 넣고 따뜻한 난로 곁에서 발효시켰다. 물론 저 도수의 알코올 성분이긴 하지만 약간의 막걸리 같은 취기와 맛도 났었다. 뭐 고참들에게 큰 기쁨을 받았다. 밥 먹을 때 감질나게 딱 한 잔씩 배식하면 반응이야 이것도 술이랍시고 즉각적이었으니까.
3. 술의 발견이라는 것이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온 추론이겠지만, 자연산 포도가 떨어진 웅덩이에 물을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 설~이 있다. 그래서 발견하고 포도를 짓이겨서 포도주를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가 시초가 아니었을까 한다. 인간이란 쾌락은 거의 본능적으로 잘 따라 배운다. 술의 발견과 발전도 마찬가지다. 이 좋은 걸 개발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거다. 뭐 있냐 한잔 마시는 거지라는 핑계가 오늘의 수많은 알코올중독자를 양산한다. 술의 위대함과 술의 추악함은 인간 본성의 심연에 끝없는 파문을 일으키는 화학적인 물질이다. 알코올중독이 심해지면 의존증으로 다시 약물중독으로 그리고 마약으로 이어지는 첫 단추 같은 역할은 인간이 이성으로 조절 불가능한 어떤 신적인 경지를 만나게 해준다. 지난 밤. 소주로 거하게 취하고 쓴 글이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으면 얼마나 유치한지를 술 마시고 글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술의 신 바쿠스는 생각의 자유로움을 준다고 했으나, 유치할 거라는 건 안 비밀이었다.
4.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되는 체질과 아닌 체질을 구분하기가 좀 억지겠으나, 누구나 마시 마시면 탈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 담배로 인한 해악보다 술로 인한 사회적인 해악이 훨씬 더 크지만 담배는 흡연구역이 줄어들고 담배를 끊도록 지속적으로 금연운동을 하는데 금주에 대한 운동은 의외로 잠잠하다. 술 때문에 싸움이 어디 한둘이 아니고 주말 휴일 시내 파출소에는 꼭 주취자 몇몇은 널브러져 있는 것도 낯선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된지 오래이다. 담배로 인한 질병은 자기 내부적이고 술은 자기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하다. 술 때문에 사고 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한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보면 안다. 어쨌거나 우리 사회는 술 문화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술 마시고 온갖 사고와 사건이 나더라도 술이란 좋은 핑계가 있다. 외국은 술 먹고 사고나 사건을 치면 더 가혹한 처벌을 하지만 우리는 반대이다. 에이 술 한 잔 마시고 그럴 수 있지 뭐.라는 좋은 이유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유효한 처벌의 방어 수단이 된다.
5.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술로 인한 콤플렉스가 있다. 이성이 조절 안되는 정도의 취한 상태를 너무 싫어한다. 너무 취해서 흐느적거리며 길바닥에 드러눕는다든가, 과잉의 김정 기복 상태라든가 반복되는 언어의 통제불능이라든가... 술 때문에 가족 중에 괴물이었던 사람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다마는, 그런 심정은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때까지 술 먹고 욕 찌꺼리 조차하고 싶지는 않다. 가급적 혼자 마시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스타일이 맞지 않는 사람하고는 술을 같이 마시길 상당히 꺼려 한다. 뻔한 소리 듣는 것도 딱 질색이고 또한 내가 그들에게 하는 술 취한 상태의 말도 듣기 거북스러울까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술 먹고 생떼가 심한 사람들의 현실적 불만과 나약함도 작용하지는 않을까라는 심리적인 추측을 한다.
6. 고작 술의 쾌락에 의지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현실의 고통이 심한 사회라는 증명이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버티기 어려우니 술 한 잔 마시고 취함이라는 현실의 상황에 심리적 비켜 감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흡사 괴테가 말했든 중세를 이겨낸 것은 술 때문이었다는 말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유효한 명언이라는 점이다. 야 오늘도 한잔해.. 인생 뭐 있나 한 잔으로 시름을 푸는 거지.라는 저녁의 회식 술자리는 대부분 직장인이라면 거절하기 어렵다. 오죽했으면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 되기까지 했던가를 따져보면 그렇다. 어느 모임이든 술이 빠지면 참 매가리가 없게 된다. 각종 조직과 단체의 회식에서 술은 항상 단골 중에 단골이요 매인의 주인공이다. 빠지면 절대로 안 되는, 조직의 핵심 멤버가 아니었는가.
7. 이때까지 마신 술 중에서 제일 눈물겹게 맛났던 술이 있었다. 대학 때 야간 수업을 마치거나 토론회를 마치고 교문 앞에 죽 나열된 포장마차에서 마시던 잔소주 딱 한 잔에 꼬치 하나. 결론적으로 결핍의 술이 제일 맛났던 기억이 있다. 딱 한 잔만이라는 가난한 호주머니에서 나온 500원 동전으로 가름되는 그저 알코올이라기보다는 달달한 무한 단물 같았다. 두 번째는 어느 산이고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가는 내내 가쁜 숨을 들이켜며 허겁지겁 올라서 산 정상에서 마시는 정상주 한 잔. 요즘은 대학가 정문에 포장마차는 하나도 없고 마찬가지로 국립공원 전체가 음주 금지 지역이 되었다. 아직 일부 포장마차가 남아 있는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도로를 점용하며 주류 판매 등의 영업행위는 주변의 식당 상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신고 대상이 되었다. 또한 각종 엉엽허가도 없는 포장마차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결핍의 술맛도 사라졌다.
8. 최근에 주류제조면허가 완화되었다. 그래? 옳거니. 그럼 나도 양조장을 해봐?라고 찾아보니 주류 제조는 철저히 탈세방지책으로 높은 장벽을 쳐져 있었다. 역시나.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나라 주세법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철저히 밀주를 막겠다는 취지였을 것이고 세금을 걷어야 하는데 밀주는 막아야 할 대상이었다. 주류 제조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일정한 제조 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수질 검사를 받아야 하고 주정을 만드는 방법을 공개해야 하고 일정 규모의 시설을 만들던가 임차를 하든가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입해야만 가능한, 그러니까 함부로 만들어서 팔지는 못하는 등의 진입장벽이 꽤 높은 식품 제조면허였던 것이다. 술 팔아서 돈벌이는 결국 돈 많은 자본가들이 할 수 있는 업종중 하나였던 거다. 물론 집에서 나 혼자 마시려면 까이거 다 필요 없다. 지인들에게도 술 한 병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이고 다만 돈 받고 팔지만 않으면 될 거 아닌가 싶었다. 궁극의 술은 외로움을 끊어 생각의 자유로움을 주는 술. 고독이 더 치열하게 만들어서 생각이 자유롭게 해주는 술. 그런 술은 어떻게 만들어 볼까 하고 생기는 꿈을 꾼다. 뭐 이것도 술 먹고 하는 생각이었다.
9. 언젠가 만들어 마셔 보리라. 술 이름도 벌써 정했다. 개허접하지만 술도가를 만들고 주정을 연구하고 재료를 섞어 증류주를 만들 참이다. 시골의 고장 지명을 따서 전통주의 증류주로 뽑아 드롭시켜 볼란다. 마음은 이미 아일랜드 어느 지방 몰드 위스키같이, 아니면 러시아의 어느 시골에서 혓바닥이 타들어가듯이 순도를 높인 보드카같이, 아니면 카리브 해를 떠돌던 해적떼가 마시던 사탕옥수수로 빚은 럼주같이 그런 술을 만들고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름만이라도 거창하게 유레카 주조연구소라는 타이틀은 근사하다고 자평해도 될터, 그렇다면 책이 없을까 찾는다. 앗싸 이거 양조학이다. 술을 빚을려면 술의 원리를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이 필요하다는 거. 이번 달에 주문할 책이다. 두고 봐. 꼭 술 한번 만들고 죽어야지.ㅎㅎㅎ 내가 유레카(EUREKA) 같이 번개치는 깨침을 주는 술을 만들겠다. 현실의 탈출은 몸이 안되면 착각으로라도 할 수만 있다. 그게 술이 주는 현실에 대한 경미한 마취작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