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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번역을 거친 문장들이란 것도 잊어버리고 몰입해서 즐겁게 읽은 해외문학이다. 특별히 미스터리나 스릴러, 범죄 사건이 아니면서도 주인공들으 대화와 문장들을 즐기며 술술 읽히는 문학 그 자체였다.
또한 문학의 기쁨과 슬픔이라고 할만할 정도로 문학적 우정을 나누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그들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들을 읽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이야기 자체의 흐름도 아주 서서히 나도 모르게 빠져들며 후반부로 갈수록 그 갈등과 절정으로 치닫는 매력이 있다.
주인공인 ‘나’는 문예창작 워크숍 합평 수업에서 빌리의 재능에 반하고 어려운 빌리의 형편을 알고 같이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기를 제안하고 그렇게 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런 이야기의 기본공식이 그러하듯 둘 사이의 차이로 갈등이 벌어지고 그들의 감정들을 멋지게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필력을 뽐낸다.
‘나’는 빌리가 나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인정하면서도 나는 질투나 열등감 같은 통상적인 감정에 빠져드는 대신 그가 프로그램의 모든 학생 가운데 도와주기로 선택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우쭐함을 느끼게 된다.
90년대말 미국의 문학청년들은 어떠했는지를 엿보는 재미도 있었고 보수적인 빌리와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나 사이의 갈등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 간의 가치관 차이는 어떻게 갈등을 빚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빌리가 그려낸 이름 없는 중서부의 도시, 그 생기 없고 황량한 풍경과 다 허물어져가는 집들, 앞면이 널빤지로 막힌 가게들이 있는 그곳이야말로 그 모든 겉모습이 반대를 가리킴에도, 진짜 삶이 맥박치고 진동하는 곳이었다. 그곳이 진정으로 미국의 심장부, 하틀랜드였다. 뉴욕은 현란하지만 그냥 쓰고 버려도 되는 말단 도시였다.
그외에도 다른 소설들에서 보지 못했던 유려한 문장들이 인상적이었고 한참을 머물며 몇번을 되네이게 하는 문장들이 매력적이었다.
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 p.286
사람의 마음이라는 저수지가 끝없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빌리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하는 일에 가까이 갔던 마지막 사람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