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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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스웨덴의 국립식품청의 수의직 공무원으로 도살장에서 일하게 된 수의사 리나 구스타프손의 일기가 담긴 책이다. 첫출근부터 사표를 쓰고 그만둔 85일간의 기록이었고 목차 없이 여든다섯개 꼭지의 일기가 엮여있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도살장의 어두운 이면들이 날것 그대로 담겨있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들은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동물권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 절망적인 회의감도 들었지만 일말의 희망과 가능성을 저자와 함께 찾아나서는 여정이기도 했다. 


저자는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축장 일에 지원한다. 주로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지만 돼지, 소, 닭 등 식용육의 하역, 수송, 보관, 도축 과정에서 각오를 훌쩍 뛰어넘는 참혹한 장면을 마주하고, 그 먹먹한 날들을 묵묵히 일기로 남긴다.


돼지 이마에 볼트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녀석의 몸이 뻣뻣해지다가 털썩 쓰러진다. … 돼지는 몸을 떨고 경련으로 움칠대며 이리저리 뒤치지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 돼지가 조용해지기까지 30분이 걸린다. … 나는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심장은 방망이질을 해댄다. 운반 기사는 튀는 피를 피해 칸막이 벽 뒤로 몸을 숨긴다. 따분한 데다 스트레스를 받은 표정이다. … 돼지의 온몸이 자기 피로 범벅이다. 기사는 죽은 돼지를 도축작업장으로 싣고 간다. 이런 경우 한 번 더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5년 6개월의 수의학 공부를 마친 후 나는 내가 더는 예전처럼 순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다시금 내가 여전히 참 순진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속도와 어마어마한 물량,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나 자신이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과 싸웠고, 이곳으로 올 때 품었던 실용주의에 매달리려 애썼다. 


동물복지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스웨덴조차도, 도축장은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장일 뿐이다. 동물보호에 누구보다도 진심이었기에 섬세하게 문제를 건의하고 설득하며 가혹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왔지만,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일상은 버거웠을 것이다. 저자의 사직으로 마무리되는 이 기록은 마지막까지도 죄책감과 미미한 희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마침표는 아니다”라는 저자의 의연한 한마디 또한 묵직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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