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이 쓸고간 자리다. 어제 저녁 잠깐 사이에 쏟아진 우박으로 옥수수, 고추, 깨, 상추, 가지, 호박을 비롯한 거의 모든 밭작물은 쑥대밭이 되었으며, 자두, 매실, 복숭아, 사과, 포도 등 열매가 열린 모든 과일나무의 열매는 다 떨어졌고, 잎 달린 식물은 잎을 찟기고 떨구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이니 어쩌겠냐는 앞집 할머니의 얼굴엔 망연자실 딱 그것이다. 가물어 비를 기다렸던 농부들의 가슴에 깊은 골이 패였다. 성한 것 하나 없는 밭을 보는 마음이 애리다.
또가원 역시 마찬가지다. 텃밭은 뭉개졌고 열매는 떨어졌으며 그 화사했던 꽃은 처참하게 뭉개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회복될까. 골목길 대문 앞에는 아직도 우박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