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포스터 대본집 - 시즌 1 / 오리지널 영문 대본 동시수록
마이크 바틀렛 지음, 김영수 옮김 / 인간희극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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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터넷에 ‘사빠죄아’라는 단어가 자주 보였다. <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그 드라마의 대사였다. 친구가 첫 화를 보고 꽤 재미있다고 이야기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드라마에 별관심이 없었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딱히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점점 나 빼고 다 보는 듯한 드라마가 되었을 때쯤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보지 않았고, 지금 왓챠를 사용 중이면서도 원작이라는 <닥터 포스터> 역시 아직 보지 않았다. 이 대본집을 만나게 된 건 어쩌면 운명적이다. 원래는 출판사 진행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갈피를 받기로 했는데, 담당자분이 막상 책갈피만 보내려니 우편비가 아깝다고 하셔서(ㅋㅋㅋ) 대본집을 같이 받게 되었다. 이 정도면 대본집 먼저 읽게 될 운명이었다고 해도 과언 아니지 않을까.

『닥터 포스터 대본집』은 드라마와 동일하게 시즌 하나 당 다섯 회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젬마가 남편 사이먼의 바람을 직감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바지에서 떨어진 입술 보호제와 그의 스카프에서 발견한 금색 머리카락이 첫 물증이 된다. 이후 사이먼의 비서 베키와 대화하다가, 남편이 퇴근 후 바로 귀가하는 게 아니라 두 시간 가량 다른 일을 하다가 귀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젬마는 그를 미행하지만 사이먼이 향한 곳은 어머니 헬렌이 머물고 있는 브라이드웰 요양원이다. 안도한 것도 잠시, 방문자 명단에 당일을 제외한 다른 날에는 사이먼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닥터 포스터>를 본 지인들은 젬마 캐릭터를 두고 감상이 갈린다. 그녀의 행동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기준점은 가정을 위한 선택을 하느냐, 본인을 위한 선택을 하느냐라고 본다. 지금 대본집으로 시즌 1까지 읽은 현 시점의 나는 젬마가 나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한 만큼의 ‘사이다’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 부부의 결혼 생활과 바람 대상을 추적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했지만, 그보다 오만해지거나 타인에게 냉랭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본집을 읽을 때에는 인물 관계도가 필수다. 소설에서는 긴 설명이 이어지지만, 대본집에는 부연 설명이 없기 때문에 지문만으로 관계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대신 한 번 적어 두고 읽기 시작하면 굳이 힐끔힐끔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입력할 수 있다. 사실 처음 책을 펴 보았을 때에는 글씨 크기가 작아서 처음에는 눈이 많이 아프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워낙 속도감 있게 읽고 넘길 수 있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쉬운 점은 번역투가 조금 어색했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처음부터 한국어로 작성된 대본이 아니기에 맥락 상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칼리가 펍에서 사귀었다는 친구가 수지라는 것인지, 그 친구가 수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옆면에 있는 원문을 읽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드라마로 영어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경험상 영어뿐만 아니라 타국의 언어를 배울 때는 무작정 단어를 암기하기보다 친숙한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하는 쪽이 확연히 효율적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영국 발음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억양과는 별개로 콘텐츠의 내용이... 적합하지 않아 관둔 적이 있다. <닥터 포스터> 역시 비교적 발음이 명확한 영국 드라마이므로 영어 공부에 활용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을 것 같다. 대본집의 한 면이 영어로 채워져 있으니 번역본과 비교하며 보기도 좋다. 내용을 직접 읽어 보았을 때는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고, 젬마의 직업이 의사인 것치고 의학적 용어가 등장하지 않아 적합해 보였다. 주요 등장인물이 삼십대 이상이므로 최근 유행하는 단어나 은어를 배우려면 다른 드라마를 택해야겠지만. 나는 이 대본집으로 시즌 1을 다 읽었으니, 영상으로는 시즌 2부터 보려고 한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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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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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지 않은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냥 어린 나에게는 왠지 어려울 듯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대신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골랐었다. 이후에도 딱히 흥미를 둘 이유는 없었던지라, 부끄럽지만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화가라는 부연을 듣고서야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정보가 너무 적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왜 베일에 싸인 화가라고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강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페르메이르』를 펼쳐 들었다.

1장은 저자가 일본 페르메이르 전시회에 갔던 경험으로 시작한다. <디아나와 님프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를 비롯한 초기 작품을 다룬다. 2장에서는 네덜란드로 떠난다. 당시 네덜란드 예술의 탄생 배경을 주로 설명하고, 정물화 속 정물의 의미를 파악한다. 3장은 페르메이르의 고향 델프트에서 서술한다. 그의 생애 전반을 훑는다. 4장의 배경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이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 <레이스를 뜨는 여자>로 대표되는, 하녀가 등장한 그림을 중점으로 소개한다. 5장에서는 덴하흐(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아 대표 소장 작품인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본다. 그와 더불어 같은 트로니 세 점을 소개한다. 6장에서는 오스트리아 빈을 찾는다. 그곳에서 페이메이르의 흔적을 찾는다.








‘명화’ 하면 연상되는 유려한 그림체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담백한 구석이 있다. 다 읽고 지금 생각해 보니 섹슈얼한 인상이 없다는 데에 칼뱅파 사회의 엄격한 규율이 일조한 게 아닌가 싶다. 『페르메이르』는 내가 처음 읽은 클래식 클라우드의 화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단테』나 『코넌 도일』보다 작품 설명이 많고, 그림을 한 점 한 점 들여다 보며 구도와 사물을 해석해 준 면이 탁월했다. 앞서 읽었던 편들이 정말 기행처럼 느껴졌다면 『페르메이르』는 함께 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다. 더불어 사회적, 예술적 역사 배경을 배울 수 있어 편익했다. 15세기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17세기 네덜란드의 예술적 배경을 비교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감명 깊었다. 페르메이르라는 작가뿐만 아니라 근면성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네덜란드인들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어 더욱 가치 있었다.

책에는 분명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여전히 페르메이르는 뿌옇다. 그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서일까, 그를 둘러싼 배경, 화가로서의 신념 등을 대부분 배웠지만 정작 페르메이르에게는 다가가지 못한 기분이다. 전반적 생애나 화풍 정도를 알았으니 이걸로 된 걸까?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페르메이르는 다른 이들의 반질반질한 피부와 입술, 그리고 그 순간의 햇볕을 포착했다. 하다못해 정물에도 생기를 부여해 그림 속에 남겨 두었다. 그러나 본인은 시간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런 그에게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그보다 <골목길>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그에 관해 잘 알 수 없어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골목길>을 보면 페르메이르는 분명 자신의 생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사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온한 삶과 사람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일상적 분위기를 담아낸 이런 그림을 그렸을 수 없을 테니까. 라피스라줄리를 통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지켰던 그의 심정을 떠올려 본다. 다작을 했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소수의 작품에 집중하는 대신,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고 비싼 안료도 아끼지 않던 태도에서 예술을 향한 열기를 느낀다. 죽기 전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나라에 줄곧 튤립과 풍차로만 기억되었던 네덜란드가 추가되었다. 다름 아닌 페르메이르 덕분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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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위대한 개츠비 - 192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기선 옮김 / 더스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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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홀린 듯 불빛을 바라볼 때면 어김없이 개츠비가 떠오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 램지 부인이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바라볼 때에도 그 초록 불빛을 연상했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의 허황됨을 그렸다는 설명과 함께 소개되는 『위대한 개츠비』. 영화로도 책으로도 이미 본 작품이지만, 초판본이라서 더욱 특별한 기분으로 책을 펼쳤다.

닉이 웨스트에그로 이해하자 친척 동생 데이지가 그를 집에 초대한다. 데이지의 집에서 나오며 닉은 데이지의 반대편에 사는 개츠비를 처음 발견한다. 개츠비는 갑부로 파티를 자주 여는데, 그에 관해서는 정확한 사실이 없고 소문만 파다하다. 이후 닉은 개츠비에게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석하며 개츠비와 안면을 트게 된다. 데이지의 남편 톰은 닉에게 자신의 애인 머틀을 소개한다. 머틀은 자동차 정비사 조지 윌슨의 아내이다. 개츠비는 베이커를 통해 닉에게 데이지와 자신의 만남을 부탁한다. 오 년 전 사랑했던 두 사람은 닉을 통해 재회하고, 개츠비는 데이지가 자신에게 와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질과 별개로 차라리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 지어 둔 쪽이 읽고 보기에는 편하다. 특히 나처럼 이입해 감상하는 경우에는 모든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일수록 여운이 길다. 물론 그 여운이 새로운 감정을 낳고, 자꾸 다시 떠오르게 만들기에 작품을 오래 기억하고 좋아할 확률을 높여 준다. 예를 들면 영화 중에서는 <500일의 썸머>나 <패왕별희>가 후자에 속한다. 『위대한 개츠비』 역시 등장인물 대부분의 심리가 이해되어 괴로웠다.







개츠비는 꿈 속에 산다. 꿈을 좇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개츠비와 대비되는 인물은 작품 속에 수두룩하다. 대부분이 개츠비의 돈과 정보력에 이끌려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츠비가 평생 사랑한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흔들리면서도 톰과의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는 여성이다. 하지만 무작정 데이지를 힐난할 수만은 없다. 언젠가 변할지 모를 과거의 사랑을 위해 기껏 이룩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첫 번째에는 개츠비에게 집중해 놓쳤더라도, 두 번째에는 이혼을 기대하는 개츠비에게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외친 데이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데이지를 위해 한껏 스스로를 포장했던 개츠비가 몰락하는 모습은 더욱 초라하고 비참하다. 톰과의 말싸움에서 밑천이 드러나고, 결국 그의 곁에는 닉과 아버지를 제외한 누구도 남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초록 불빛을 향해 노력했던 그가 바보 같았다. 피츠제럴드는 이런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여전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라고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사랑의 성패를 떠나 개츠비의 순수성을 예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재독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초록 불빛”은 소설 속에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 읽고서 왜 개츠비가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장면이 지금까지도 『위대한 개츠비』를 상징하듯 강렬히 남았는지 자문해 보았다. 아마 가질 수 없는 대상을 갈망하는 뒷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습이 쓸쓸하기보다는 어떤 감정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매료된 듯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결혼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이다. 결혼 생활의 민낯을 목격한 것도,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언제든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어서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개츠비처럼 갈망할 수 있는 꿈을 계속 꾸면서 데이지처럼 현실 때문에 놓치고 싶지는 않다. 영화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읽을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이 그려졌다. 더없이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지만 상상하는 재미가 떨어져 아쉬웠지만 여전히 여운이 길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나 역시 데이지를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공감하고, 개츠비를 염원하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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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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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은 늦더라도 챙겨 읽는다. 한국 문화의 최근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젊은 작가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도전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가끔씩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인 친구들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반면 고전은 그에 비해 독자가 적다. 아주 유명한 고전은 다들 읽는 듯하지만, 마니아층이 아니고서는 섭렵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루에도 몇십 권씩 책이 출간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책을 따라가느라 바쁜 심정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고전과 젊은 작가의 중간에 있는 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는 과거 출간된 바 있으나, 큰 조명을 받지 못했던 작품을 모아 재출간한 것이다. 오늘의 작가 서포터즈로 다섯 권 중 한 권이 랜덤 배송되었는데, 나에게 온 책은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이었다.

  영인에게 불쑥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함께 살게 된다. 영인은 자신의 엄마를 다른 사람들이 칭하듯이 김 작가라고 부른다. 그리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김 작가에게도 딱히 모성애는 없다. 책임감 있게 딸을 키우기보다는 마음 맞는 남자가 생기면 남자와 연애를 하고, 글 짓기 모임에 아무리 영인이 불만을 제기해도 꿋꿋이 활동을 이어나간다. 다소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듯 보인다. R과 K, 장 등 주변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영인은 글을 쓴다. 나아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유명 작가 J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여 준다. 생생하고 구수한 묘사를 읽는 내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글맛이 담뿍 느껴지고,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라이팅 클럽』은 영인의 성장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 왔을 법한 흔적이다. 뚜렷한 야망 없이 어렸을 적부터 책과 가까이 지내며 자연스레 글쓰기를 꿈꾸게 된 영인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눈앞에 세세히 그려졌다. 나름의 프레임을 씌워 좋아했던 R, K와의 연애, 글은 잘 몰라도 표현력에 쏙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녀의 편지,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관계없이 예쁜 문장에만 잔뜩 그었던 밑줄, 잘못되면 애인과 한강에 뛰어들겠다는 다소 낭만적인 발상. 나 역시 한 번쯤 겪어 온 이야기라 친근하면서도 머쓱하고 수치스러웠다. J의 조언도 영인의 글쓰기 스타일에 일정 수준의 영향을 미치지만, 헤세의 말처럼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은 영인 본인이 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서사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때로는 김 작가로, 때로는 영인으로, 때로는 K로, 계동 여성들 혹은 뉴저지 라이팅 클럽 회원으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열망한다. 『라이팅 클럽』 속 글쓰기는 그리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타오르는 감정을 쏟아 붓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을 목적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노동 일기』처럼 일이 전부인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묘사하고 기록하라고 말한다. 글쓰기를 특별한 행위로 치부하는 순간, 쓰기는 힘들어지고 평가는 쉬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할 때는 왜 이렇게 박해지는 걸까. K의 글에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혹평만 남기고, 계동 글 짓기 모임의 문집을 그저 레시피북으로 치부하는 영인의 모습에서 나의 지난날이 보였다. 영인은 성장의 한 단계를 이룩했다. 자연스레 나의 현 주소를 묻는다.

별것 아닌 글을 쓰면서도 주춤거리는 순간이 많다. 스스로 정한 ‘남에게 보여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자’는 다짐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매 순간 의심한다. 나의 너절한 생각을 전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되묻는다. 『라이팅 클럽』은 이런 순간에 멈춰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쓰기가 겁나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를 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한층 더 세세히 물색하게 된다. 과연 나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깊은 애정의 골을 채워 주는 행위라고 할 만하다. 레시피북과 경험담에 그칠지언정 꿋꿋이 쓰는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수다로 속내를 털어내고, 누구보다 서로에게 공감할 줄 아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도 좋았다. 벌써 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은 십 년 뒤 재출간되어, 오늘날 나의 글쓰기 인생에 이정표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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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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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리주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고아인 남자아이를 희생해 표류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예시가 등장한다. 유사하게 뚱뚱한 사람 한 명을 밀어 떨어뜨리면 그 사람 한 명의 목숨으로 열차를 멈출 수 있는데, 떨어뜨리지 않으면 열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경우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질문도 있다. 지금 받아도 결정하기 힘든 딜레마다. 이렇게 다소 극단적인 예시들로 족집게처럼 배웠기에 마냥 재미있다는 인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현실성을 배제한 채 떠올렸던 이 사상을 존 스튜어트 밀이 직접 쓴 『공리주의』를 통해 과거의 시각으로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제1장은 존 스튜어트 밀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제2장에서는 공리주의라는 사상을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제기된 반론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제3장은 인간이 공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외부적 제재와 내부적 제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제4장에는 조금 더 자세한 원리를 부언한다. 제5장은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기준, 그리고 정의와 공리의 관계를 다룬다.







  공리주의의 슬로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밀은 벤담의 이론을 발전시켜 행복의 양과 질을 모두 고려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공리주의에 관해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단편적으로 배우다 보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었다. 작품 해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의외로 가독성도 좋아 철학 도서치고 잘 읽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주고받는 논제들 사이에서 사고력을 키울 수 있었다. 철학과 사상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당연히 필독서이지만, 그와 별개로 논술을 준비하는 사람들, 논리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었던 이유이다.


  초반부 밀의 행복 정의와 공리를 가능케 하는 원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밀은 돈 역시 행복의 일부라고 했지만, 과연 돈을 그 일부로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돈과 행복을 맞바꾼 여러 사례를 고려하면,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보다는 비정상적인 탐욕과 집착의 산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쾌락을 이분법적으로 고상한 쾌락과 저급한 쾌락으로 나눈다는 논리도 고급과 저급을 분류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충동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작품 해설에서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서적을 읽을 때면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에 자신감이 있는 어조가 인상적이다. 늘 갈팡질팡하고 스스로의 생각에도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나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밀의 설득을 직접 듣고 나서도 여전히 공리주의는 나에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취지 자체는 좋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탓에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여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타인의 희생으로 증가할 행복의 총량을 누리는 다수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단체의 이상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혹자는 철학을 두고 결국 말장난이라고 한다. 이공 계열과 비교했을 때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 낭비라고도 한다. 듣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각도를 비틀어 논쟁을 이어 나가니까. 하지만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의심은 간데없고 애정만이 생겨 난다. 이런 고찰이 나의 양분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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