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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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지 않은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냥 어린 나에게는 왠지 어려울 듯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대신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골랐었다. 이후에도 딱히 흥미를 둘 이유는 없었던지라, 부끄럽지만 페르메이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주 귀고리 소녀>의 화가라는 부연을 듣고서야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정보가 너무 적어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왜 베일에 싸인 화가라고 불리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대강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페르메이르』를 펼쳐 들었다.

1장은 저자가 일본 페르메이르 전시회에 갔던 경험으로 시작한다. <디아나와 님프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를 비롯한 초기 작품을 다룬다. 2장에서는 네덜란드로 떠난다. 당시 네덜란드 예술의 탄생 배경을 주로 설명하고, 정물화 속 정물의 의미를 파악한다. 3장은 페르메이르의 고향 델프트에서 서술한다. 그의 생애 전반을 훑는다. 4장의 배경은 암스테르담의 국립미술관이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 <레이스를 뜨는 여자>로 대표되는, 하녀가 등장한 그림을 중점으로 소개한다. 5장에서는 덴하흐(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찾아 대표 소장 작품인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본다. 그와 더불어 같은 트로니 세 점을 소개한다. 6장에서는 오스트리아 빈을 찾는다. 그곳에서 페이메이르의 흔적을 찾는다.








‘명화’ 하면 연상되는 유려한 그림체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유난히 담백한 구석이 있다. 다 읽고 지금 생각해 보니 섹슈얼한 인상이 없다는 데에 칼뱅파 사회의 엄격한 규율이 일조한 게 아닌가 싶다. 『페르메이르』는 내가 처음 읽은 클래식 클라우드의 화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단테』나 『코넌 도일』보다 작품 설명이 많고, 그림을 한 점 한 점 들여다 보며 구도와 사물을 해석해 준 면이 탁월했다. 앞서 읽었던 편들이 정말 기행처럼 느껴졌다면 『페르메이르』는 함께 미술관을 거니는 듯했다. 더불어 사회적, 예술적 역사 배경을 배울 수 있어 편익했다. 15세기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17세기 네덜란드의 예술적 배경을 비교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감명 깊었다. 페르메이르라는 작가뿐만 아니라 근면성실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네덜란드인들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어 더욱 가치 있었다.

책에는 분명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여전히 페르메이르는 뿌옇다. 그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서일까, 그를 둘러싼 배경, 화가로서의 신념 등을 대부분 배웠지만 정작 페르메이르에게는 다가가지 못한 기분이다. 전반적 생애나 화풍 정도를 알았으니 이걸로 된 걸까?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페르메이르는 다른 이들의 반질반질한 피부와 입술, 그리고 그 순간의 햇볕을 포착했다. 하다못해 정물에도 생기를 부여해 그림 속에 남겨 두었다. 그러나 본인은 시간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런 그에게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그보다 <골목길>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그에 관해 잘 알 수 없어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골목길>을 보면 페르메이르는 분명 자신의 생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사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온한 삶과 사람에 염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일상적 분위기를 담아낸 이런 그림을 그렸을 수 없을 테니까. 라피스라줄리를 통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지켰던 그의 심정을 떠올려 본다. 다작을 했던 다른 화가들과 달리 소수의 작품에 집중하는 대신,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고 비싼 안료도 아끼지 않던 태도에서 예술을 향한 열기를 느낀다. 죽기 전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나라에 줄곧 튤립과 풍차로만 기억되었던 네덜란드가 추가되었다. 다름 아닌 페르메이르 덕분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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