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지만 소심한 사람
이다은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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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제목처럼 작가는 스스로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글에서 활기와 자신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밝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짝사랑 경험담도 있고, 부모님에게 잘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면서도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이야기도 있고. 대부분의 독자가 무난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에세이는 작가의 평소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라, 굵직굵직한 부분이 맞지 않으면 읽는 게 고역이다. 다행히도 『유쾌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생각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꽤 있어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글쓰기에 관해 군데군데 서려 있는 단상에 공감했다. 어째 힘을 빼려고 하면 할수록 문장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은 나와 꼭 같은 고민이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면서도 다른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은 심정, 글을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무언가 바뀌었다는 깨달음 모두 겪어 본 것이라 십분 이해되었다. 더불어 글쓰기 수업에서 엄마에 관한 글을 낭독하며 울었다는 에피소드를 읽을 때에는 내 흑역사가 떠올라 잠시 얼굴이 화끈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 수업은 아니었지만, 반려견에 관해 써 놓은 글을 읽으면서 눈물 한 바가지 쏟았던 일이다. 들은 사람들이 강아지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고마우면서도 창피해서 혀 깨물고 싶었는데....

친구 관계에 관한 부분은 읽으면서 반성했다. 나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기 전에는 결코 남의 이야기만 듣고 바뀌지 않는다. 나 자신에게는 큰 불편함이 없으나, 관계에도 적용된다는 게 문제다. 친구들이 아무리 답장 좀 빨리 하라고 눈치를 주고, 개중 몇이 대놓고 말해도 바뀌질 않는다. 심지어 과거의 연인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너무 기다리게 해서 한소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넘어 있는 거라고 줄곧 합리화했지만.... 글을 읽고 나니 간절한 부탁은 안 했어도 친구에게 말도 안 되는 태도로 비치기는 매한가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래도 너를 좋아하니 앞으로도 친구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으면 덜 미웠으려나. 이제는 이따금 장난으로 “오랜만이네요 ^^” 하면서도 묵묵히 참아 주는 친구들에게 새삼 미안하다. 서평 다 쓰고 얼른 답장하러 가야지.





이 글을 오글거린다고 표현한다면 “당신의 좁은 그릇이 끓어 넘치”는 것 아니냐는 초반부를 읽었을 때 반감이 들었다. ‘오글거리다’, ‘감성충’ 같은 표현은 벌써 여러 번 이야기했을 정도로 나 역시 싫어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어떤 공격이든 방어하고 시작하는 글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독자가 글을 읽고 남겼던 부정적인 반응까지 책에 기재한다면, 내가 쓴 글도 이 사람의 다음 책에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솔직하게 쓰기도 불편해진다. 하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 공감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있었기에 책의 인상이 나쁘지 않다.

나는 “저는 유쾌한 사람입니다”보다 “사람들한테 장난 거는 건 좋아하지만... 정말 유쾌한지는 주변 사람들한테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쪽이라 근본적으로는 작가와 정반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큰 이질감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나이와 관심사가 비슷해서 아닐까. 짧게 등장했지만 “일이 없어도 해야 할 일은 매일매일 새롭게 차 있는” 작가의 동생에게도 애정이 갔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미래를 끊임없이 갈구하며 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덮을 무렵에는 사람에게 더 이상 상처 줄 일 만들지 말되, 일에 한해서는 결국 자기 멋에 취해 살아야 편하다는 결론이 남았다. 딥앤와이드의 서포터즈로 활동하는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짧다면 짧지만 출판사의 전체적인 지향성과 분위기에 녹진해질 수 있을 만큼 풍부한 기간이었다. 내가 읽은 그 책들이 또 다른 독자에게 날아가 위로가 되어 주기를 염원한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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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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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든 씨가 왕진을 다녀오던 중 사고로 사망하고, 여섯 딸은 800파운드라는 유산을 물려받는다. 여섯 모두가 여유롭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상의 끝에 언니 라인 앨리스, 버지니아, 거트루드는 즉시 독립하고, 동생 라인 마사, 이사벨, 모니카는 돌봄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며 그중 거트루드와 마사, 이사벨이 각각 폐렴, 익사,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매든 씨의 죽음으로부터 16년 후 모니카는 월워스 로드의 옷가게에서 일하고, 버지니아는 코니스비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가정교사였던 앨리스는 버지니아의 하숙 집에서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 옛 친구 로더 넌의 편지를 받는다. 로더는 메리 바풋과 함께 짝 없는 여자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훈련시켜 주기 위한 사업을 하는데, 세 자매에게도 유산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투자해 볼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 내키지 않아 하던 모니카는 언니들의 설득에 따라 잠시 교육을 받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에드먼드 위도우선과 결혼한다. 한편 로더는 메리의 사촌 에버라드 바풋을 만나면서 결혼을 강건히 거부하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 읽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트를 펼쳐 두고 읽었음에도, 독서가 끝난 뒤의 감상이나 읽는 과정에서 떠올랐던 단상을 그러모아 한 군데로 모으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상을 주는 작품을 마주할 때 나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짝 없는 여자들』은 지금 읽어도 손색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보적이다. 조지 기싱은 이 소설에서 매든 자매와 로더를 양 극단에 둔 채로 당대의 여성관과 결혼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교사로 평생 몸을 혹사하다가 쇠약해진 채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누군가의 아내이자 “노예”로 남는 대신 비교적 편안한 삶을 영위하거나. 매든 자매는 각각 교사와 귀부인의 말동무, 혹은 가게의 직원으로 보수가 좋지 않은 ‘통상적인 여성의 일’을 찾아 나섰다. 결혼하지 않은 이 여자들의 삶은 보람도 없이, 돈 대신 병을 얻는 비참한 결과를 맞았다. 반면 로더는 과감히 교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에게 받은 유산을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는 데에 사용한다. 그 소비는 투자가 되어 일반적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은 벨라와 모니카가 아닐까 생각했다. 큰 마음을 먹고 도전했다가도 밀려드는 불안감에 금세 도피해 버리는 이들.





과연 전통적인 결혼 체제 아래서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모니카는 아내를 소유물로 전락시키며 남편으로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위도우선의 태도를 바꾸려 부단히 시도한다. 두 사람은 동등하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인정해야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때로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기도, 때로는 부드럽게 너그러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하며 어느 순간에는 위도우선마저 새로운 관계의 시작과 활력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처럼 이 다짐은 얼마 가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로 연기 정도만 가능했을 뿐, 깊이 뿌리박힌 관념을 뒤바꾸는 일 자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모니카는 다시 새로운 남성을 도피처로 삼으려 한다. 위도우선은 또 나름대로 미사여구로 점철된 거추장스러운 편지를 몇 장이고 적으며 자신의 감정을 되살리려 한다. 둘 모두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진전이 있는 듯 보였을 때 나 역시 기대와 환희에 차올랐다. 그런 덕에 그녀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 때는 조금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로더와 메리는 확실히 매든 자매와 비교했을 때 기회가 많은 인물처럼 보였다. 이후의 선택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지만, 우선 로더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었고 메리에게는 에버라드의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이 있었다. 반면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뒤 막막한 삶을 맞닥뜨리게 된 앨리스나 버지니아에게 장기적인 시선과 미래를 향한 투자는 너무 아득하고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신여성도 어느 정도 재산이 마련된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위치였던 게 아닐까 추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택지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남들 다 하는 교사 혹은 결혼, 둘 중 하나에서만 찾으려는 태도가 어쩌면 남자들이  “세상과 싸우는 건 남자에게 맡겨야” 하고, “결혼하지 못한 여자의 삶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어서 능력이 되는 남자라면 누구나 여자를 그 운명에서 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우기며 여자에게서 많은 일을 뺏어 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고.






로더와 모니카가 사는 세상과는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놀랍게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한 시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대부분의 가정에서 요리와 청소, 빨래를 비롯한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다. 그런 탓에 결혼한 여성은 여생을 GDP에도 포함되지 않는 노동에 묶여 산다. 현실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이 인생의 필수 코스라도 되는 듯이 왜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지, 결혼 생각은 없는지 지겹게도 묻는다. 희망차고 역동적인 기운이 연신 꿈틀거렸던 이 소설마저 긍정적인 변화나 가능성은 끝내 보여 주지 않는다. 정 하고 싶다면 최대한 의견이 맞는 남성을 만나고, 아니더라도 조율해 나가야 하는 게 결혼이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할 가치와 의미가 있나? 여전한 의문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몇 년 뒤에 내가 1초라도 못 보면 죽을 정도로 열렬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이상 끝내 “짝 없는 여자”로 살겠다는, 예전부터 간직해 온 다짐이 변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몇 달 전 본 영화의 주인공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함께 일하는 다른 운동가들에게 여성을 상품화하는 ‘미스 월드’ 폐지 요구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그래도 상관없지만 대신 네 딸이 변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게 되어도 아무 말 말라”는 말이었다. 모니카는 예쁘니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인들의 평가를 볼 때마다 그 영화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는 ‘쿵쾅이’이고, 못생긴 탓에 인기가 없어서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기보다 한숨이 나온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자를 평가하는 잣대는 외관 하나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서다. 여러 중대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수십 년이 넘게 걸렸다. 이 문제의 10%만이라도 해결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이것도 역시 덮어 두고 나아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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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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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교회에 화재가 일어난다. 방화인지, 단순 사고인지, 방화라면 누가 불을 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목양면 주민의 진술을 듣는다. 엇갈린 증언 가운데에 종교라는 구심점이 있다. 목양면이라는 장소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최 목사와 가장 멀리 있는 사람부터 천천히 돌아 그에게 도달한다. 고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자유자재의 말투를 구사하는 덕에 지루하지 않다. 중반부터는 진실과 그 추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고서도 어쩔 수 없이 집중하게 만드는 이끌림이 있다. 특히 마지막 장은 굉장히 도발적이었다.

종교와 신은 참 묘한 위치에 있다. 나도 사실은 뭐가 뭔지 여전히 잘 모르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는 효과를 따지기 시작하면 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성당에 가면 하느님한테 무언가를 끊임없이 빌었다. (공부는 안 했지만) 이번 시험 백 점 맞게 해 주세요, (이미 아프지만) OO이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등등. 기도의 효과를 멋대로 기대해 놓고 여러 번 효과가 없다며 실망하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난데없이 하느님을 소환해 원망한 경험도 여러 번이고. 신은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인데, 멋대로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면 그저 우습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도 역시 잘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는 각자 할당된 운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나쁜 일을 하면 그만큼 기본치에서 깎여 나가고, 착한 일을 하면 쌓인다는 발상이다. 나는 뽑기 운이 정말 더럽게 없는 ‘똥손’이다. 열 가지 중 하나가 랜덤으로 나오는 뽑기를 돌렸을 때 아홉 개의 피규어 대신 10분의 1 확률밖에 안 되는 머리끈을 뽑는다거나... 그 많은 토이스토리 캐릭터 중에서 웬 기억도 안 나는 사마귀병사 캐릭터를 뽑는다거나... 어벤져스 캐릭터가 그렇게 많은데 닥터 옥토퍼스가 나온다거나. 한 번은 내가 왜 이렇게 운이 없는지 머리를 싸매고 곰곰이 고민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그리 불운한 편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좋은 결과는 작게, 아픈 결과는 크게 받아들였기에 일어난 오해였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 신이 아니라 사람 마음이다. 애초에 신의 존재를 인정할지 부정할지도 사람 마음, 좋은 일이 있을 때 신 앞으로 돌릴지 요행으로 치부하고 넘어갈지도 사람 마음이다. 신은 말이 없다. 그러니 이런 종교를 타인에게 믿으라고 강요하는 태도도, 과하게 신뢰한다고 매도하는 태도도 옳지 않은 거다. 나는 이런 이슈와 편 가르기가 골치 아프고 싫다. 그냥 서로 피해 안 주는 선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아, 쓰면서도 정말 종교는 어렵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거지.... 살다가 힘들면 하느님한테도 빌어 보고, 내가 잘못했는데 인정하기 싫으면 “나한테 왜 이래요?” 외쳐 보기도 하는 거지, 뭐.... 하느님도 다소 억울하시겠지만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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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9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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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김 씨는 팔곡 마을에 편지를 배달하러 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마을의 모든 노인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선장에게 양해를 구한 뒤 둘러본 마을의 분위기는 더욱 이상하다. 무언가 일이 터진 것처럼 음산하고, 심지어 이장인 피 노인의 집에는 피 노인 대신 옥수수대에 이불이 덮여 있다. 그는 월상파출소장의 박 경위와 함께 다시 팔곡 마을을 찾는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우리가 직면한 고령화 사회를 골자로 한다. ‘과연 초고령화 사회, 고령화 사회는 실질적으로 꺼릴 만한 이유가 있는 현상인가?’라는 질문이다. 정부와 결부지은 점은 그럴 듯했으나, 현실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무리인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어차피 모두 픽션이라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상상이 재미나고 참신하게 느껴졌다. 흡입력도 대단해서 초반에는 손에 땀을 쥐기도 하고, 그 방증으로 책을 펴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리기까지 했다. 타인을 향한 관심이 길게 유지되지 못하는 현실을 기가 막히게 꼬집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급하게 진행되며 치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분량 상 독자를 빠르게 이해시키기 위해 추가했을 상세 설명이 과한 부연으로 느껴졌다.






젊음을 칭송하고 늙음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 젊음의 미래가 늙음, 미래의 과거가 젊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예전에는 생각도 못 했다. 한 CF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조금 더 노인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서 단숨에 지금까지 넘어왔다고 생각한 것처럼 그들의 시간도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왔을 것이고, 여전히 나처럼 나이를 실감 못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연 노인 혐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혐오가 그렇다. 사람과 관계된 일일수록 ‘결국 케바케’라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많은 일이 해결된다. 각자가 수집한 빅데이터를 토대로 내리는 판단이겠지만, 어떤 면에서 맹목적인 혐오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김희선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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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 - 칠 건 치고 둘 건 두는 본격 관계 손절 에세이
솜숨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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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알고 봐야 좋은 것들을 알아봐 줘야 할까? 종종 드는 생각이다. 말도 그렇다.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데, 표현하지 않고서 알아봐 주기를 바라거나 서투르다는 핑계로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왜 구태여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 관계에 알아가기까지의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면 더더욱. 차라리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좋아하는 일을 누리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나. 저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한층 나아가 ‘알고 봐야 좋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한다. 책이 전적으로 관계를 대하는 법에 관한 내용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한 척 무례했던 너에게 안녕’은 대표적인 다짐 하나다. 그리고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저자의 다짐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의 고충이나 장녀로서 살아가는 고충 등을 기반으로 한 변화다. 편집자로 일한 경험 덕분인지, 글에 영화와 책이 꽤 자주 등장한다. 익숙한 것들이라 반가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자와 생각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이를테면 나는 ‘가늘고 길게’가 아니라 ‘굵게 한 방’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현실이 따라주는지는 별개의 문제고, 우선 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그렇다는 뜻이다. 따라서 에세이 내용에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존재했지만, 굳이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 않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누구든 그냥 자기가 가장 마음 편한 대로 사는 게 최선의 답 아니겠는가. 이렇게 산다면 마음은 편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사람을 대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대화할 때 가장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건 뒷담화와 상처 주는 말이다. 특히 뒷담화 같은 경우에는 일시적인 친분일 뿐만 아니라, 말의 주술적 효과 때문에 더 경계한다. 경험상 머릿속으로 ‘싫다’라고 단순히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싫다”라는 말을 내뱉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싫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상대가 정말 싫어진다. 누군가와의 뒷담화까지 더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싫지 않은데,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각인하며 그 감정을 쌓아 가는 셈이다. 저자는 삼십 대가 인간관계를 미니멀로 유지해야 하는 시기라는 데에 공감한다. 그 이야기를 한 구석에 저장해 두었다가 삼십 대가 되어 필요해지면 요긴하게 써야지, 그렇게 마음 먹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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