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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평점 :
매든 씨가 왕진을 다녀오던 중 사고로 사망하고, 여섯 딸은 800파운드라는 유산을 물려받는다. 여섯 모두가 여유롭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상의 끝에 언니 라인 앨리스, 버지니아, 거트루드는 즉시 독립하고, 동생 라인 마사, 이사벨, 모니카는 돌봄을 받는다. 시간이 흐르며 그중 거트루드와 마사, 이사벨이 각각 폐렴, 익사,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매든 씨의 죽음으로부터 16년 후 모니카는 월워스 로드의 옷가게에서 일하고, 버지니아는 코니스비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가정교사였던 앨리스는 버지니아의 하숙 집에서 함께 지낸다. 그러던 중 옛 친구 로더 넌의 편지를 받는다. 로더는 메리 바풋과 함께 짝 없는 여자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훈련시켜 주기 위한 사업을 하는데, 세 자매에게도 유산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투자해 볼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 내키지 않아 하던 모니카는 언니들의 설득에 따라 잠시 교육을 받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에드먼드 위도우선과 결혼한다. 한편 로더는 메리의 사촌 에버라드 바풋을 만나면서 결혼을 강건히 거부하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 읽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트를 펼쳐 두고 읽었음에도, 독서가 끝난 뒤의 감상이나 읽는 과정에서 떠올랐던 단상을 그러모아 한 군데로 모으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상을 주는 작품을 마주할 때 나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짝 없는 여자들』은 지금 읽어도 손색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보적이다. 조지 기싱은 이 소설에서 매든 자매와 로더를 양 극단에 둔 채로 당대의 여성관과 결혼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들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교사로 평생 몸을 혹사하다가 쇠약해진 채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누군가의 아내이자 “노예”로 남는 대신 비교적 편안한 삶을 영위하거나. 매든 자매는 각각 교사와 귀부인의 말동무, 혹은 가게의 직원으로 보수가 좋지 않은 ‘통상적인 여성의 일’을 찾아 나섰다. 결혼하지 않은 이 여자들의 삶은 보람도 없이, 돈 대신 병을 얻는 비참한 결과를 맞았다. 반면 로더는 과감히 교사를 그만두고 어머니에게 받은 유산을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는 데에 사용한다. 그 소비는 투자가 되어 일반적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은 벨라와 모니카가 아닐까 생각했다. 큰 마음을 먹고 도전했다가도 밀려드는 불안감에 금세 도피해 버리는 이들.
과연 전통적인 결혼 체제 아래서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모니카는 아내를 소유물로 전락시키며 남편으로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위도우선의 태도를 바꾸려 부단히 시도한다. 두 사람은 동등하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인정해야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다. 때로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기도, 때로는 부드럽게 너그러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하며 어느 순간에는 위도우선마저 새로운 관계의 시작과 활력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처럼 이 다짐은 얼마 가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구로 연기 정도만 가능했을 뿐, 깊이 뿌리박힌 관념을 뒤바꾸는 일 자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모니카는 다시 새로운 남성을 도피처로 삼으려 한다. 위도우선은 또 나름대로 미사여구로 점철된 거추장스러운 편지를 몇 장이고 적으며 자신의 감정을 되살리려 한다. 둘 모두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진전이 있는 듯 보였을 때 나 역시 기대와 환희에 차올랐다. 그런 덕에 그녀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 때는 조금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로더와 메리는 확실히 매든 자매와 비교했을 때 기회가 많은 인물처럼 보였다. 이후의 선택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지만, 우선 로더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었고 메리에게는 에버라드의 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이 있었다. 반면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뒤 막막한 삶을 맞닥뜨리게 된 앨리스나 버지니아에게 장기적인 시선과 미래를 향한 투자는 너무 아득하고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신여성도 어느 정도 재산이 마련된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위치였던 게 아닐까 추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택지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남들 다 하는 교사 혹은 결혼, 둘 중 하나에서만 찾으려는 태도가 어쩌면 남자들이 “세상과 싸우는 건 남자에게 맡겨야” 하고, “결혼하지 못한 여자의 삶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어서 능력이 되는 남자라면 누구나 여자를 그 운명에서 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우기며 여자에게서 많은 일을 뺏어 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고.
로더와 모니카가 사는 세상과는 시대도, 장소도 다르지만 놀랍게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관한 시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대부분의 가정에서 요리와 청소, 빨래를 비롯한 집안일은 아내의 몫이다. 그런 탓에 결혼한 여성은 여생을 GDP에도 포함되지 않는 노동에 묶여 산다. 현실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이 인생의 필수 코스라도 되는 듯이 왜 남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지, 결혼 생각은 없는지 지겹게도 묻는다. 희망차고 역동적인 기운이 연신 꿈틀거렸던 이 소설마저 긍정적인 변화나 가능성은 끝내 보여 주지 않는다. 정 하고 싶다면 최대한 의견이 맞는 남성을 만나고, 아니더라도 조율해 나가야 하는 게 결혼이지만... 과연 그렇게까지 할 가치와 의미가 있나? 여전한 의문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몇 년 뒤에 내가 1초라도 못 보면 죽을 정도로 열렬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이상 끝내 “짝 없는 여자”로 살겠다는, 예전부터 간직해 온 다짐이 변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몇 달 전 본 영화의 주인공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함께 일하는 다른 운동가들에게 여성을 상품화하는 ‘미스 월드’ 폐지 요구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그래도 상관없지만 대신 네 딸이 변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게 되어도 아무 말 말라”는 말이었다. 모니카는 예쁘니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인들의 평가를 볼 때마다 그 영화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는 ‘쿵쾅이’이고, 못생긴 탓에 인기가 없어서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기보다 한숨이 나온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여자를 평가하는 잣대는 외관 하나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서다. 여러 중대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수십 년이 넘게 걸렸다. 이 문제의 10%만이라도 해결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이것도 역시 덮어 두고 나아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문제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