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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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리주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고아인 남자아이를 희생해 표류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한 예시가 등장한다. 유사하게 뚱뚱한 사람 한 명을 밀어 떨어뜨리면 그 사람 한 명의 목숨으로 열차를 멈출 수 있는데, 떨어뜨리지 않으면 열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경우 어떤 선택을 하겠냐는 질문도 있다. 지금 받아도 결정하기 힘든 딜레마다. 이렇게 다소 극단적인 예시들로 족집게처럼 배웠기에 마냥 재미있다는 인상으로만 남아 있었다. 현실성을 배제한 채 떠올렸던 이 사상을 존 스튜어트 밀이 직접 쓴 『공리주의』를 통해 과거의 시각으로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제1장은 존 스튜어트 밀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다. 제2장에서는 공리주의라는 사상을 본격적으로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제기된 반론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제3장은 인간이 공리를 추구하게 만드는 외부적 제재와 내부적 제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제4장에는 조금 더 자세한 원리를 부언한다. 제5장은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기준, 그리고 정의와 공리의 관계를 다룬다.







  공리주의의 슬로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밀은 벤담의 이론을 발전시켜 행복의 양과 질을 모두 고려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공리주의에 관해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단편적으로 배우다 보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었다. 작품 해설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의외로 가독성도 좋아 철학 도서치고 잘 읽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주고받는 논제들 사이에서 사고력을 키울 수 있었다. 철학과 사상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당연히 필독서이지만, 그와 별개로 논술을 준비하는 사람들, 논리력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었던 이유이다.


  초반부 밀의 행복 정의와 공리를 가능케 하는 원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밀은 돈 역시 행복의 일부라고 했지만, 과연 돈을 그 일부로 생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돈과 행복을 맞바꾼 여러 사례를 고려하면,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보다는 비정상적인 탐욕과 집착의 산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쾌락을 이분법적으로 고상한 쾌락과 저급한 쾌락으로 나눈다는 논리도 고급과 저급을 분류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충동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작품 해설에서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서적을 읽을 때면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에 자신감이 있는 어조가 인상적이다. 늘 갈팡질팡하고 스스로의 생각에도 끊임없이 의문을 품는 나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밀의 설득을 직접 듣고 나서도 여전히 공리주의는 나에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취지 자체는 좋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탓에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여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희생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타인의 희생으로 증가할 행복의 총량을 누리는 다수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단체의 이상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혹자는 철학을 두고 결국 말장난이라고 한다. 이공 계열과 비교했을 때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 낭비라고도 한다. 듣고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각도를 비틀어 논쟁을 이어 나가니까. 하지만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의심은 간데없고 애정만이 생겨 난다. 이런 고찰이 나의 양분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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