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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은 늦더라도 챙겨 읽는다. 한국 문화의 최근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젊은 작가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도전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 가끔씩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인 친구들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반면 고전은 그에 비해 독자가 적다. 아주 유명한 고전은 다들 읽는 듯하지만, 마니아층이 아니고서는 섭렵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루에도 몇십 권씩 책이 출간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책을 따라가느라 바쁜 심정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고전과 젊은 작가의 중간에 있는 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는 과거 출간된 바 있으나, 큰 조명을 받지 못했던 작품을 모아 재출간한 것이다. 오늘의 작가 서포터즈로 다섯 권 중 한 권이 랜덤 배송되었는데, 나에게 온 책은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이었다.
영인에게 불쑥 엄마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함께 살게 된다. 영인은 자신의 엄마를 다른 사람들이 칭하듯이 김 작가라고 부른다. 그리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김 작가에게도 딱히 모성애는 없다. 책임감 있게 딸을 키우기보다는 마음 맞는 남자가 생기면 남자와 연애를 하고, 글 짓기 모임에 아무리 영인이 불만을 제기해도 꿋꿋이 활동을 이어나간다. 다소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듯 보인다. R과 K, 장 등 주변을 거쳐가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영인은 글을 쓴다. 나아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유명 작가 J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여 준다. 생생하고 구수한 묘사를 읽는 내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글맛이 담뿍 느껴지고,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라이팅 클럽』은 영인의 성장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 왔을 법한 흔적이다. 뚜렷한 야망 없이 어렸을 적부터 책과 가까이 지내며 자연스레 글쓰기를 꿈꾸게 된 영인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눈앞에 세세히 그려졌다. 나름의 프레임을 씌워 좋아했던 R, K와의 연애, 글은 잘 몰라도 표현력에 쏙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녀의 편지,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관계없이 예쁜 문장에만 잔뜩 그었던 밑줄, 잘못되면 애인과 한강에 뛰어들겠다는 다소 낭만적인 발상. 나 역시 한 번쯤 겪어 온 이야기라 친근하면서도 머쓱하고 수치스러웠다. J의 조언도 영인의 글쓰기 스타일에 일정 수준의 영향을 미치지만, 헤세의 말처럼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은 영인 본인이 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 서사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때로는 김 작가로, 때로는 영인으로, 때로는 K로, 계동 여성들 혹은 뉴저지 라이팅 클럽 회원으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열망한다. 『라이팅 클럽』 속 글쓰기는 그리 대단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타오르는 감정을 쏟아 붓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을 목적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노동 일기』처럼 일이 전부인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묘사하고 기록하라고 말한다. 글쓰기를 특별한 행위로 치부하는 순간, 쓰기는 힘들어지고 평가는 쉬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할 때는 왜 이렇게 박해지는 걸까. K의 글에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혹평만 남기고, 계동 글 짓기 모임의 문집을 그저 레시피북으로 치부하는 영인의 모습에서 나의 지난날이 보였다. 영인은 성장의 한 단계를 이룩했다. 자연스레 나의 현 주소를 묻는다.

별것 아닌 글을 쓰면서도 주춤거리는 순간이 많다. 스스로 정한 ‘남에게 보여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자’는 다짐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매 순간 의심한다. 나의 너절한 생각을 전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되묻는다. 『라이팅 클럽』은 이런 순간에 멈춰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쓰기가 겁나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를 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한층 더 세세히 물색하게 된다. 과연 나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깊은 애정의 골을 채워 주는 행위라고 할 만하다. 레시피북과 경험담에 그칠지언정 꿋꿋이 쓰는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수다로 속내를 털어내고, 누구보다 서로에게 공감할 줄 아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도 좋았다. 벌써 십 년 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은 십 년 뒤 재출간되어, 오늘날 나의 글쓰기 인생에 이정표가 되어 준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