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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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서는 속았다는 것이 핑계가 되지 않는다.(5)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가르침을 준다.(13)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우리는 역사를 연구하여 폭정의 뿌리 깊은 근원을 이해한 다음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16)
역사는 우리에게 자유를 모색할 수 있는 구조를 보여 준다. 역사는 여러 순간을 드러내는데, 각각이 다 다르지만 어느 것도 유일무이하지는 않다. 어느 순간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순간의 공동 창조자가 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든다.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는 그러한 책임 의식이 고립과 무관심을 깨뜨린다고 보았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렇게 고립과 무관심을 깨뜨린, 우리보다 고초를 더 많이 겪은 동지들을 찾을 수 있다.(162~163)

위에 적은 문장을 보니, 책의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역사가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어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역사를 왜 공부하냐?' 혹은 '역사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집니다.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정>을 읽고나니 개인적으로 저는 반복되는 역사를 살피고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인가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게 되네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

그런데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것만큼이나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도 중요한 일인 건 틀림없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긴 하지만, 왜 인간들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가 하는 문제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왜 일어나느냐'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원인을 파악해야 그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으니까요. <폭정>을 읽은 분들은 알지만, 책의 저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타이더가 꽂혀 있는 부분도 여기입니다. 특히 티머시 스나이더는 1930년대에 대공황을 맞아 유럽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전성기를 맞은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당선된 것에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저자는 1930년대 유럽의 상황이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자처럼 1930년대 유럽의 상황과 최근 미국의 상황이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내부의 문제를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선동정치의 성공도 그렇고, 합리적인 이성,대화,토론,존중,공존,이해 같은 민주주의 사회의 덕목을 무시하며 생존과 이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서도 그렇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성공 자체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죠. 아마도 나름대로 미국에서 성실하게 살며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한 채 지내고 있는 이라면 화날만도 하겠죠. 민주주의의 덕목이나 가치를 존중한 인물이 아니라 오직 수단방법 안 가리고 당선에만 매달린 이가 대통령이 됐으니까요. <폭정>의 저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도 분노한 이들 중에 하나로 보입니다. 분노가 한 권의 책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티머시 스나이더의 분노는 생산적이네요. 자기 자신의 분노를 생산적으로 승화시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역사의 힘을 빌려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20세기에서 배운 20가지로(20-20 라임이 딱 맞네요.^^;;) 폭정을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미리 복종하지 말라, 제도를 보호하라,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 앞장서라, 직접 조사하라,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어법에 공을 들여라, 다른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배우라,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최대한 용기를 내라  같은. 저자의 제안이 특별한 건, 기본적으로 명령형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천적인 제안이라는 점입니다. 자기 계발서 느낌의 이 제안들을 뒷받침하는 건 자기계발서류의 성공 사례 나열이 아니라 철저하게 엄선된 역사적 사례들과 사회과학적 이론들입니다. 흡사 자기계발서류의 성공을 위한 방법들을 인문학적 지식이 뒷받침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도 성공을 바라는 건 맞습니다. 경제적 성공이 아닌 현 시대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성공.

저자가 정치적 성공을 바라는 만큼이나 저도 미국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강대국인 미국이 자신들만 생각하며 이기적이고 이득만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지 못하는 건 세계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들에게 도움도 안 되구요. 저자의 바람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점입니다. 미국인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정치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더 분발해주기 바랍니다. 아직 폭정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이루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배우고 더 노력해서 부디 티머시 스나이더의 바람대로 정치적 변화를 이루어내기를. 한국에 사는 우리들도 <폭정>을 읽고 변화할 테니. 다 쓰고보니 희망사항만 잔득 적어놓은 주술적 느낌의 글이 됐네요. ㅎㅎㅎ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의 바다에 나 자신의 바람을 적은 '병 속에 든 편지'를 띄우는 기분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폭정>의 저자 티머시 스타이더가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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