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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김세화
#나비클럽
#추리소설
#한국추리문학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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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타오』가 출간되었습니다. 11월 6일에 저는 그 책을 배송 받아 며칠에 걸쳐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에 다시 『타오』를 소환합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치밀하게 담아낸 방대한 스케일의 미스터리‘로 소개되는 추리소설이자, 김세화 작가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끈질긴 호흡과 느리지만 사소한 실마리조차 잃지 않는 세심한 시선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수작이라 할 것입니다.

소설은 6월 3일 토요일의 살인사건 장면을 프롤로그로 담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 합니다.

그녀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녀는 나의 전부다. 그녀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그녀를 죽인 것은 그들이다. 그들이 그녀를 죽였다. 그들 하나하나가 그녀를 한 번씩 죽였다. (9~10쪽)

대명사로 지목되는 그들의 정체는 오리무중 속으로 감춰지고, 살인자와 피해자 그녀 또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살인자가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장면이 이후 복수 내지는 책임에 대한 응징이 따를 것이란 위기감을 고조시킵니다.

하지만 정작 다음으로 이어지는 본론에서는 프롤로그의 사건으로부터 훌쩍 시간 간격이 벌어진 8월 27일 일요일 폭우가 쏟아지던 밤, K대학 후문 이슬람 사원이 있는 골목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장면이 등장하며 이 둘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의아하게 만듭니다.

소설은 8월 27일 이후로 발생하는 살인미수, 살인, 방화 등의 연쇄적 사건들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는 가운데 프롤로그에서의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은 애매모호하게 안개 속으로 잠식해 버리는 듯 합니다.

소설은 449쪽에 달할 만큼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그런 만큼 프롤로그로부터 시작된 살인의 이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단순하지도 녹록하지도 않습니다. 어찌보면 지루하기 그지 없기도 합니다. 사건을 진득하게 풀어가는 오지영 형사과장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을 참을 수 없기도 합니다.

소설 『타오』는 자칫 지루함으로 변질될 수 있는 끈질기고 진득한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생과 해결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독자들이 쉽게 추리소설을 읽게 할수도 있겠지만, 추리소설인 만큼 그 구조에 독자가 개입하여 오지영 형사과장과 함께 진실찾기에 동참하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건 해결을 위한 추리에 전념하기 보다는 과정에 집중하여 사건 속에 감춰져 있는 모순들, 즉 약자가 만들어지는 모순, 그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불합리한 관계, 그것이 반복되는 계급화 사회구조적 폐습을 직접 목격하고 정의로움으로 향하는 분노를 자각케 함은 물론 사회구조적 모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부정의하고 불합리에 젖은 추악한 욕망덩어리들을 까발리며 고발하게끔 독자를 이끈다는 것이 김세화의 추리소설 『타오』가 품고 있는 진면목이자 찐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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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서의 인연으로 김세화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황금펜상을 수상한 「그날, 무대 위에서」라는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기회가 닿는대로 추리소설을 접하고 있습니다. 김세화 작가님의 작품들이 우선 순위에 있어 아직은 폭넓은 독서는 아니지만, 다른 작가, 특히 일본 작가들에 관심을 가져보려는 중입니다.

식견이 좁은 저의 관점일 뿐이지만 추리소설은 작품 내용에 충실하고자 할 경우 객관적 거리두기 보다는 주관적 사건 개입에 중점을, 작품 비평에 충실하고자 할 경우는 그와 반대의 입장이 극명한 독서방식을 갖는 장르라 생각됩니다.

이번 김세화 작가님의 『타오』는 작가의 문체, 즉 단문을 많이 사용하여 읽는 속도감을 느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진득함과 속도감은 분명 다른 결이지만 그 묘한 조화가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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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조앤 디디온 지음,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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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조앤디디온
#홍한별_옮김
#책읽는수요일


🔖사별 후 남겨진 사람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애도의 시간



📖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만(알지만), 상상한 죽음 직후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난 다음의 삶이 어떠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249쪽)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직후 며칠이나 몇 주‘ 동안의 ‘비애‘와 그 시간이 ‘지난 다음의‘ 삶에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애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겪에 되는 ‘자기 연민‘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조앤의 남편 존은 2003년 12월 30일 밤에 광범위 관상동맥 혈전을 일으켜 사망합니다. 이 순간의 상황을, 망연자실의 감정을 조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
(9쪽)

한 순간에 무너져버린 삶.

조앤와 존은 결혼 후 4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입니다. 둘 다 작가라는 직업 덕분으로 매일을 같이 지냈습니다.

📖 존과 나는 40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다. 그 기간에서 처음 5개월, 존이 《타임》에서 일하던 기간만 제외하면 우리 둘 다 줄곧 재택근무를 했다. 하루 24시간 같이 있었다는 말이다. (256쪽)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존이 죽음이라는 이유로 훌쩍 떠나버렸으니 남은 조앤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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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 보고 덜컥 구매한 책입니다. 상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상실의 감정 또는 그 상황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그 결이 얼마나 다른지, 또는 얼마나 닮았는지 알고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사별 이야기였기에 처음에는 주춤했습니다. 사별은...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경험하고 싶은 생각조차 추호도 없구요.

하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상실이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경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상실을 겪는 그 순간, 그 이후의 시간은 비교대상이 아니라 개인 고유의 삶의 영역이기에 그 어떤 주·객관적 판단을 개입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도 말입니다. 나의 일이 아닌 이상 남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감적 위로의 침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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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사별 후의 비애와 애도, 자기 연민의 상황과 감정을 십분 이해하게 되긴 했지만, 무엇보다 크게 각인된 것은 ‘나는 바로 곁에 있는 아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 존과 나는 서로의 생각을 훤히 안다고, 알고 싶지 않을 때조차도 속이 보인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 알겠다. 실은 당연히 알아야 할 아주 사소한 것조차 몰랐다는 사실을. (259쪽)

나름 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르지만, 알고 모르고의 문제보다는 그 마음, 알고자 하는 관심과 표현이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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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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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쌉싸름한초콜릿
#라우라에스키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08
#멕시코
#라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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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을 만나고 싶을 때
🔖‘요리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궁금할 때
🔖마술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섬세한 감각적 문체를 경험하고 싶을 때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추천합니다.


✏️
소설은 1989년 멕시코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동명의 영화로 1992년에 먼저 알려졌고, 2004년에야 민음사에서 번역 출판하여 소설로 소개되었습니다.

소설은 1910년대부터 1930년 초반까지 ‘멕시코 혁명‘이 한창이던 격동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그 역사적 혼란기 속에서 전통적 가족제도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티타‘라는 여성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복잡미묘한 관계가 얼키고설킨 삶의 굴곡진 이야기입니다.


✏️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화자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모할머니 티타의 요리책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은 ‘요리 문학‘이란 장르를 개척한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만큼 12개의 챕터 중 성냥 제조법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리 레시피와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티타의 서사가 그려집니다.

티타는 ‘데 라 가르사‘ 집안에 막내딸로, 가문의 전통인 막내딸은 부모가 죽는 날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봉양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납니다.

˝...... 네가 막내딸이라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17쪽)

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는 그점을 늘 티타에게 강요하는데, 티타는 그 억압적 가족 전통 때문에 사랑하는 페드로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소설의 초반이 이렇게 시작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불합리한 가족 전통에 맞선 티타의 첩첩으로 겹쳐 굴곡진 삶의 서사로 가득 메워집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
이 소설은 라틴문학에서 만날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핵심적 문체로 쓰여졌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20세기 세계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또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출발하는 형식입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술적, 환상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혼합하여 묘사하는 기법으로 현실과 환상의 공존, 비일상의 일상화적인 모습을 취합니다.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개인적으로 티타가 집을 떠나는 장면의 마술적 사실주의 묘사가 압도적이었습니다.

📖 첸차는 울면서 마차를 따라가, 티타가 긴긴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떴던 어마어마한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둘러 주었다. 담요가 어찌나 크고 무거웠던지 마차가 안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티타가 꼭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담요는 길게 드리워진 웨딩드레스 자락처럼 마차 뒤에 끌려갔다. 만화경처럼 알록달록한 무늬에 일 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티타가 색깔에 신경 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아무 실이나 기져다 썼기 때문에 완전히 총천연색이었다. 마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거대한 먼지 구름 사이로 담요는 마술을 부리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현란하게 너풀거렸다. (110~111쪽)


✏️
이 소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다 하자면 하루도 부족할 터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만 집어 말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식욕과 성욕이라는 욕구를 요리와 사랑이라는 서사에 잘 녹여 세밀하고 감각적이며 조화롭고 매력적이게 감탄할 지경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요리의 과정이 얼마나 애정과 정성으로 가득찬 것인지 이 소설로써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먹는 이 행위. 현대인에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다.˝

요리는 행복으로 향하는 길인듯 합니다. 요리하는 과정도, 그 요리를 먹는 순간도 그런 듯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정작 다뤄야 할 이야기는 티타의 서사인데, 스포일러를 피한 채 다룰 수는 없어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꼭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간절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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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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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에스키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08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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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을 만나고 싶을 때
🔖‘요리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궁금할 때
🔖마술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섬세한 감각적 문체를 경험하고 싶을 때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추천합니다.


✏️
소설은 1989년 멕시코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동명의 영화로 1992년에 먼저 알려졌고, 2004년에야 민음사에서 번역 출판하여 소설로 소개되었습니다.

소설은 1910년대부터 1930년 초반까지 ‘멕시코 혁명‘이 한창이던 격동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그 역사적 혼란기 속에서 전통적 가족제도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티타‘라는 여성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복잡미묘한 관계가 얼키고설킨 삶의 굴곡진 이야기입니다.


✏️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화자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이모할머니 티타의 요리책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은 ‘요리 문학‘이란 장르를 개척한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만큼 12개의 챕터 중 성냥 제조법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리 레시피와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티타의 서사가 그려집니다.

티타는 ‘데 라 가르사‘ 집안에 막내딸로, 가문의 전통인 막내딸은 부모가 죽는 날까지 결혼도 하지 못하고 봉양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고 태어납니다.

˝...... 네가 막내딸이라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17쪽)

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는 그점을 늘 티타에게 강요하는데, 티타는 그 억압적 가족 전통 때문에 사랑하는 페드로의 청혼에도 불구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소설의 초반이 이렇게 시작되는데, 이후의 이야기는 불합리한 가족 전통에 맞선 티타의 첩첩으로 겹쳐 굴곡진 삶의 서사로 가득 메워집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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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라틴문학에서 만날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핵심적 문체로 쓰여졌습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20세기 세계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또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출발하는 형식입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술적, 환상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혼합하여 묘사하는 기법으로 현실과 환상의 공존, 비일상의 일상화적인 모습을 취합니다.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개인적으로 티타가 집을 떠나는 장면의 마술적 사실주의 묘사가 압도적이었습니다.

📖 첸차는 울면서 마차를 따라가, 티타가 긴긴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떴던 어마어마한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둘러 주었다. 담요가 어찌나 크고 무거웠던지 마차가 안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티타가 꼭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담요는 길게 드리워진 웨딩드레스 자락처럼 마차 뒤에 끌려갔다. 만화경처럼 알록달록한 무늬에 일 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티타가 색깔에 신경 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아무 실이나 기져다 썼기 때문에 완전히 총천연색이었다. 마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거대한 먼지 구름 사이로 담요는 마술을 부리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면서 현란하게 너풀거렸다. (110~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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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다 하자면 하루도 부족할 터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만 집어 말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식욕과 성욕이라는 욕구를 요리와 사랑이라는 서사에 잘 녹여 세밀하고 감각적이며 조화롭고 매력적이게 감탄할 지경으로 묘사했다는 점입니다.


💭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요리의 과정이 얼마나 애정과 정성으로 가득찬 것인지 이 소설로써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먹는 이 행위. 현대인에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다.˝

요리는 행복으로 향하는 길인듯 합니다. 요리하는 과정도, 그 요리를 먹는 순간도 그런 듯 합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정작 다뤄야 할 이야기는 티타의 서사인데, 스포일러를 피한 채 다룰 수는 없어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꼭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간절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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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
닐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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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닐셔스터먼
#열린책들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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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중인 독서토론모임에서 회원들이 뽑은 5월 추천작으로 읽게 된 닐 셔스터먼의 SF소설입니다.

닐 셔스터먼은 미국작가이자 특히 <수확자 시리즈>로 국내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라고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미국에서는 여러 상을 받고 인지도도 높은 편이지만 국내에서는 2023년에야 『Scythe』(국내 출간명 『수확자』)가 번역되면서 늦게 알려진 작가입니다.

✏️
소설 『게임 체인저』(원제 Concussion)는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이끌어가지만, 작품 중심에 놓인 주제는 상당히 묵직합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풋볼 선수인 애시가 경기 중 심한 태클로 뇌진탕을 당하면서 이상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데 그 경험으로 세상이 이전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이전 세상에서 빨간색이었던 정지신호가 바뀐 세상에서는 파란색으로 사소한 변화였지만, 뇌진탕의 반복으로 세상은 더욱 크게 변해가게 됩니다. 애시는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의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나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애시의 바람처럼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원치않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맙니다.

✏️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애시의 도전 과정에서 소설은 묵직한 여러 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문제가 참으로 안타깝더군요.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애시의 흑인 친구 리오와 짝사랑하는 케이티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세상이 변하더라도 그 문제는 결코 바뀌지 않으며 오히려 더 강화되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했습니다.

특권인냥 치부되면서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온 차별과 혐오라는 감정, 인간만이 가진 악의적 본성. 그것의 불변성... 다름이 차이를 만들고 차이가 계급을 만들고 계급이 강력한 특권으로 자리잡고... 그런 특권의식에 절은 인간들이 군림하면서 무너뜨릴 수 없는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악순환의 구조.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평등했지만, 사회 상태에서 불평등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죠. 루소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가 존립하는 한 인간 불평등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겠죠. 자연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
15쪽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와 <문제가 아니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몰라보는 게 바로 특권이다.

34쪽 「아나.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인간의 30퍼센트는 나처럼 보고 70퍼센트는 너처럼 본대. 요점은 사람마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거지.... 그러니 모두가 파랑으로 본 걸 너 혼자 빨강으로 봤다고 해거 그걸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92쪽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막막한 미지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걸 견디게 해주는 것은 공감 뿐이란 걸.

358쪽 성차별이 그토록 짜증 나는 건 뻔한 것뿐 아니라 애매한 것도 많아서다. 내가 전적으로 옳은지, 아니면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는지 의심하게 되는 그런 찝찝한 순간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스스로 미쳤다고 믿게끔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일.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사는 게, 그런 불안감에 끊임없이 위축되는 게 얼마나 열받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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