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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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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_키건
#맡겨진_소녀
98쪽.
100쪽도 채우지 못한 적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가슴을 찡하게 누르는 감동의 무게는 수 천 쪽의 백과사전보다 수십수백배는 더합니다.
웬만해서는 정동적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저는 최근 만난 클레어 키건의 두 소설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전에 소감을 올렸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그랬고, 이번의 <맡겨진 소녀>가 또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에 관심 이상의 마음이 불쑥 들었는데, <맡겨진 소녀>를 거치면서 그 마음은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동경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작가라는 평을 받을 만큼 뛰어난 작가로 불립니다.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을 필두로 24년간 단 4권의 책만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일궈낸 이력의 면면을 보자면, 첫 단편집 <남극>은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했고,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 세 번째 발표한 <맡겨진 소녀>는 데에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과 더불어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 선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발표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오웰상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책표지 작가소개 내용을 참고)
소설 <맡겨진 소녀>는 책 제목에서처럼 한 소녀가 엄마의 먼 친척에게 맡겨져 어느 여름 한 때를 보내는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소녀는 작품에서 직중화자인 ‘나‘이며, 나를 맡게되는 먼 친척은 킨셀라 부부입니다. 소설은 이 셋이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맡겨진 소녀>의 특징 중 하나를 꼽자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현재형 시제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작품은 시종일관 당장 눈 앞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소설 <맡겨진 소녀>는 시간차 없이 그때그때 작중화자인 나, 소녀의 시선과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참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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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살짝 소개합니다.
학교 지붕 교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 복권을 팔고자 두 남자가 킨셀라 부부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찾아온 사람에게 킨셀라 아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한테 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집 애들 머리에 비가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지.˝ (47쪽)
그 말이, 그 마음이 마냥 따듯합니다. 이 장면은 클레어 키건의 다른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이 비 오는 날 땔감을 주우러 나온 아이를 차에 태워 비를 피하게 하고 자신의 주머니에 든 동전을 쥐어주는 장면과 닮아있습니다. 작가의 작품 속 중심인물들이 하나같이 따듯한 심장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닐 듯합니다. 작가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짐작이지만, 그럴 것이라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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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쪽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 73쪽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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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마음에 온도를 높이고 싶을 때,
슬며시 어깨를 도닥여주는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클레어 키건을 찾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