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족의 탄생 - 유별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 이야기
친구사이.가구넷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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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를 통해 현대 가족의 의미를 되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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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 더 자유롭고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열 개의 목소리
홍혜은 외 지음 / 동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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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페미니즘. 소수의 인권을 감싸고 함께 살기 위한 방안의 페미니즘이 이제는 학교에서도 당연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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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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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단 한 번, 충동적인 기회로 유려하게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물론 쥐어짜내어 쓰기도 했었지만 그 땐 달랐다. 일상에서 소외된 청년의 평범하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이야기를 우직하게 밀고 나갔는데, 완성 직전 단계에서 컴퓨터 포맷으로 그만 날려버렸다. 천추의 한, 그 뒤로 그런 글은 다시 쓰지 못하리라는 마음만 남아 있다.

 

글쓰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하는 게 얼마나 배의 힘과 곱절의 노력을 요하는 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글은 기록을 넘어 추억이 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긋는다는 점에서 가장 진심이 드러날 때이기도 하다. 또한 공개 대상에 따라서, 글쓴이의 의도와 구성방식 흐름 등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서 마음을 움직이는 '마음의 심리학'이기도 하겠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차고 넘친다. 글쓰기 교육도 받아본 본인으로서는 몇년째 글로써 감성을 이 곳에 풀어내는 게 하나의 습관이자 자랑이 돼버렸다. 그런 찰나 이번에 또 글쓸 기회가 생긴다니 기쁠 따름. 뭐 이전 글을 실어도 되지만 말이다. :D

 

지인의 추천으로 읽은 이 책은 일단 완전 재미지다. 어쩜 그렇게 속마음을 잘 긁어주고 웃음 뽀인트를 잘아는지, 그야말로 맛깔나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진지하게 밀당 같은 느낌이 제 맛이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솔직히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럽다. 안건모 선생과는 또 다른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작년 글쓰기 교육에서의 좋은 경험 및 결과에 더불어 올해도 의지가 솟구친다. 내면을 비추고 갈고 닦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견주기 힘들다. 공감으로 소통하는 글쓰기, 올해도 할 수 있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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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까치글방 114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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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소유냐 존재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눈에는 소유한다는 것이 삶에 포함된 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당연히 소유한다. 그뿐이랴, 사물을 즐기기 위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p.33)

 

그렇다. 우선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유의 반대말은 '무소유'이고, 존재와 대비되는 단어는 '비존재'이다. 그러나 작가는 현대 인간에게 있어서 두 가지 개념이 대립각에 있다고 선을 긋는다. 거기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진다는 비판까지.

 

이에 대한 반박을 하기 전에, 자신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본인을 소개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되돌아보자.

 

집은 어디이구요 / 결혼은 언제 했구요 / 아들·딸은 몇명이구요 /

얼마 모았어요 / 그거 되게 신기하다 / 나도 니가 가진거 갖고 싶어

 

이런 게 바로 보통 사람의 자기 소개와 대화 형태 아닐는지. 자기 존재에 대한 특성보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더 드러내고, 자기 삶에 만족하기보다 더 가진 자의 삶을 따라가려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시대 자화상이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 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p.59)

 

자, 다시 물어보자. 당신은 상대방에게,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 "인간시장"에 진열된 상품으로서 자신의 인품과 인맥을 활용하여 그것을 돈과 명예로 바꾸고 싶은가? (p.210~212) 아니면 베풀고 나누고 희생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좀 더 나은 삶을 함께 누리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가? (p.155) 선택은 자기 몫이지만, 한번쯤은 정말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편 필자의 견해나 바람과는 어긋나게, 40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인은 폐해를 목격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의 실상을 뼈저리 체험하고 있다. 그 누구도 병든 인간을 제물로 하고서 그 건강을 부지하는 오늘날의 경제적 상황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는 지금(p.253), 오히려 경제는 '민주주의'라는 날개를 달고 정치와 엮이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세계 경제 위기를 예상했겠는가. 극심한 빈부 격차, 민영화 가속화, 지속적인 FTA체결 등은 결국 '너 죽고 나 살자. 너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자'는 소유욕에 다름 아니다.

 

건전한 인간을 위한 건전한 사회는 그렇게 계속 멀어져만 간다. 그렇다고 계속 우리는 우리 탓만 할 수 없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자. 나서자. 행동하자. 존재를 보여주자. 언론을 장악하고 사찰을 일삼는 정부, 그릇된 이익을 위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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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스승 톨스토이와의 만남 1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동완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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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어찌 보면 질문 자체가 뜬금없는 질문이자, 밑도 끝도 없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력한 끝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작품을 통해 확고히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예술이란 예술가가 체험한 특수한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과연, 맞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예술에 있어서 예술가와 그가 예술로 표현하려는 대상에 더 주목하고 싶다. 즉,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가는 주체-그 대상은 객체의 관계가 아닌, 소통하려고 다가가는 예술가도 주체-그 대상(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무엇이든지) 또한 주체의 관계로 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으려는 활동 자체가 예술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예술적으로 표현되는 대상-예술작품을 접하는 타인, 이 셋의 관계가 모두 주체가 되어 서로 다가가고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된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란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며 다른 부차적인 것들을 비판하였는데, 나는 그의 비판적인 생각을 내 생각대로 비판하고 싶다.

먼저 그는 비평가들이야말로 쓸모 없는 작자들이라고 깎아 내렸다. 그들은 작품에 드러난 예술가의 감정을 느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로써만 작품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의 말에는 모순이 있다. 그는 분명 아주 훌륭한 예술 작품이란 다수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를 설명하고 지식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비평가들 아닌가? 만약 그들이 예술가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작품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그 작품에 담긴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비평가는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으로 그는 예술이 점점 직업이 되는 점을 우려했다. 그에게 진정한 예술은 오직 조금의 보수도 받으려 하지 않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붙이려고 조차 하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톨스토이가 지금에 와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본을 통해 먹고 사는 것이 정해지는 사회에서, 직업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직업으로 먹고 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오히려 예술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평생 직업 삼아 예술로서 인생을 영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 받은 행복한 삶이 아닐까? 예술이 직업화(職業化)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지 그것이 예술의 본질을 흐리지는 않는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모든 표절, 혹은 모방을 통한 작품은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나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는다. 모방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려고 힘쓴다면, 그것은 결코 그릇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만 보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누가 모방 없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떤 작품을 모방하여 그것을 풍자적으로 재구성한 패러디의 가치를 높게 사고 싶다. 패러디야말로 그 작품에 담긴 감정을 십분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역작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방’과 ‘표절’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렇게 그의 예술에 대한 생각에 무수한 비판을 가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핵심 의견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 그는 예술이란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인간의 작업’이라고 정의 내렸고, 나도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그는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표현한 감정이 자신에게 감염될 때에만 - 정말 톨스토이가 ‘감정이 감염된다’라는 표현을 썼는지, 무척 궁금하다. 원작에서는 러시아어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알고 싶다. - 진정한 예술이라 보았고, ‘사람과 사람을 서로 결합시키는 마음’이야말로 ‘예술의 마음’이라고 역설했다.

다음 두 그림을 살펴보자.


              <27-ⅩⅠ-72>, 김환기                                 <시장의 여인들>, 박수근

위 두 그림의 공통점을 알겠는지? 둘 다 아주 비싼 값에 팔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왜 왼쪽 그림이 비싸게 팔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제목부터가 이상하다.) 도대체 화가가 어떠한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오른쪽의 그림은 화가가 얼마나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대상과 소통하려고 힘쓰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 그 감정이 전달된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을 보면 나도 감명을 받고 많은 사람들도 그의 가치를 인정하여 그의 그림에 비싼 값어치를 매긴다.

만약 톨스토이가 위 두 그림을 본다면, 그리고 위 두 그림이 다 비싼 값에 팔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뭐라고 했을까?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왼쪽 그림은 예술가가 감정의 전달에는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기교로만 멋을 낸 작품이고, 오른쪽 그림은 예술가가 삶 속의 민중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충분히 애쓴 수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국 예술을 감정 전달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모호함과 약점이 드러난다. 왼쪽 그림이 비싸게 팔린 것은 또한 왼쪽 그림을 산 사람이 충분히 화가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감염되어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면, 그 누가 그에게 머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감정이란 극히 주관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기에, 우리는 그 누구의 감정도 비난할 수 없고 그 어떤 예술 작품도 폄하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 모든 예술작품을 감정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드러내려 한 점에서 - 톨스토이가 왜 종교에 심취하고 종교적인 작품을 많이 써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감염시키길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인을 하나의 감정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수단이야말로 종교적 자각으로 인한 감정, 즉 인간은 누구나 신의 자녀이고 똑같은 동포라는 자각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임을 믿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고전이 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러한 감정을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은 아닌 것 같지만..)

아직도 그를 알고 이해하기에는 먼 길이 남아 있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조금은 그에게 다가간 느낌이 든다. 나도 그가 남긴 예술 작품들을 통해 그의 감정을 더 진실히 느끼고 싶고, 그와 오래도록 소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더욱 간절히 톨스토이-되기를 원한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예술의 직업화(職業化)를 피할 수 있을까? 예술이 직업을 벗어났을 때 그것은 단지 취미에 불과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한번도 무료 전시회나 음악회, 공짜로 전하는 책을 보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만행 친구들의 시도는 대단!)

2. 만인을 하나의 감정으로 결합시키는 수단은 꼭 종교적 자각의 감정 하나만 있는가? 톨스토이의 생각에 동의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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