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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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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카메라가 출현한 이래, 기술의 발달로 점점 그 보급이 확대되어 핸드폰의 카메라도, 카메라의 범주에 넣는다면 거의 1인 1카메라 시대에 도달한 지금,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분명, 카메라의 보급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일반인들도 '예술'의 영역에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차곡차곡 쌓이는 터치가 아닌, 프레임 수백만장 쌓이는 영화필름이 아닌, 단 한순간의 손짓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매체는, 분명 가장 보편화된, 그리고 큰 파급력과 필요성을 지닌 예술적, 기록적 재료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DSLR의 보급은 '장비로써의' 전문가와의 차이를 거의 없게 만들었다. 사실상 전문가가 사용하는 물감과 붓을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고, 35mm (영화용)필름카메라나 RED ONE(추노, 국가대표 등을 촬영한 디지털 영상 카메라) 같은 카메라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이제 DSLR로도 영화촬영이 가능한 시대다. 렌즈군과 기타 장비가 보편화되진 않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렌즈군으로도 심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한 DSLR 같은 경우는 전문가의 흉내를 내기 딱 좋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전문가로 부르진 않는다. DSLR 의 보급은, 기술적인 사진의 수준이 향상되는 길을 좀더 넓혀놨지만, 그렇다고 기술적 수준의 향상이, 질적, 미적으로 향상된 사진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처럼. 가능성이 조금 향상되었다고 해서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은 아니다. 솔직히 사진의 미덕중에 '우연'이라는 요소가 다른 매체보다 두드러지긴 하지만, 그것을 무기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듯이 말이다.
결국, 장비가 다가 아니다..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놨다. 하지만, 솔직히 좋은 장비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때로는 그 차이가 클 때도 있고, 미묘할 때도 있다. 사실 장비의 가치에 대한 허상, 허울 같은 얘기는, 필요성과 투자비용을 고려한 차이가 아니겠는가. 만약 동급 수준의 예술가들이 (사실 이런 가정은 터무니없긴 하지만) 큰 차이의 장비를 사용한다면, 결과 또한 다르지 않겠는가? 좀 바보같은 예이지만, 결국 하고싶은 얘기는, 더 좋은 장비는, 그 장비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발휘한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서 잘찍는 사람과 못찍는 사람은 나뉠 수 있지만, 출중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가의 장비를 쓰던 고가의 장비를 쓰던 분명 다른이들보다 뛰어난, 제 실력만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니깐.
카메라 매커니즘의 이해는 사실 좋은 실력이 아니라, 일반적인 실력을 쌓기위한 코스일 뿐이다. 결국 좋은 실력, 좋은 사진을 위해서는 매커니즘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사진철학의 풍경들>의 저자 진동선이 전하는 이야기다.
"사진은 인접 시각매체들과 달리 이중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다. 영원히 변함없을 양면성이다. (35p)
저자인 진동선이 전하는 이야기는 사실 사진의 매커니즘, 혹은 기술적 스킬의 향상과는 직접적인 큰 관계가 없다고 보기에 무방할 정도다. 없다고 말하진 않지만, 그만큼 언급을 삼가한다. 아니, 그런 기술적 설명이 끼어들 틈이 없다. 기껏해야 빛, 어둠, 프레임, 구도 정도? 하지만 사진작가인 그에게 사진의 매커니즘, 스킬에 대한 지식을 의심할 정도로 심심한 독자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는 살짝 뒤로 감쳐놨을 지라도 일련의 사유들 사이에서의 카메라 및 사진과 관련한 역사, 일화 등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많진 않다. 배경설명에 필요할때 언급하는 경우니깐). 분명한 것은, 이미 그것을 뛰어넘은 사진가가 하는, '결과물로서의 우수한 사진' 이 아닌, 피사체에 대한 인지부터,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사유, 그리고 다시 또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는 법에 이르기까지의 긴 호흡이 담겨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는 매커니즘이 가진 규칙과 틀을 넘어서는, '정말로' 좋은 사진을 만들기위한 방법들을 '철학'을 통해서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사진은 만연한 사회적 실천이고 유희다. 철학이 없어도, 미학이 없어도,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 무언가를 찾고 간구하고 묻는다면 진리의 문 앞에 선 것이다." (234p)
개인적으로는 사실, 저자의 사유에 푹 빠져서 페이지를 넘기느라 (실은 그냥 내 실력이 이정도이기에) 크게 인지하거나 신경쓰고 읽지는 않았지만, 순서를 보면, /인식의 풍경/ 사유의 풍경/ 표현의 풍경/ 감상의 풍경/ 마음의 풍경 에 이르른다. 크게 보자면, 어떤 사물을, 어떻게 인지할 것이지에 대한 판단에서 부터, 결과물이 된 사진을 넘어, 가장 이상적인 사진을 꿈꾸기 위한 사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으로 보여진다. 분명 저자 또한 어느 행위의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어떤 사유가 필요함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순서를 정해놨을 테지만, 사실 그 순서라는 것이 '전원을 켜려면 / 전원 스위치를 돌려라' 처럼 A를 하기 위해 B라는 사유를 해야한다는 것이 '반드시'는 아니기에, 사진이라는 것의 시작과 끝에 전반적으로 모두 닿아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의 철학적 지식을 보면, 그동안 그가 스스로에게, 또 사진을 향해 던졌을 질문들의 질량이 어마어마 했었을 것이란게 자명해보인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부터, 사진작가부터, 조금은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까지, 현재의 그를 존재케하는 사진에 관한 온갖 철학들이, 그저 허투루 나온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온갖 철학자와 사진작가의 말과 행동이 인용되고, 그에 따른 그의 생각들이 합쳐지며 사진에 관한 철학이 하나씩 만들어질때마다 저자의 통찰력에 놀랄 따름이다. 게다가 물론 아주 어려운 개념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타의 철학자, 사진작가들의 이론이나 사유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사유들을 심플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다고 하는 것은 감각의 작용이다. 모든 사진가들이 항상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은지 갈등한다. 그러면서 이 갈등은 궁극적으로 사진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된다. 갈등을 해결해줄 구세주가 사진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30p)
실제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진이기에 필수적인 '인식'에서부터 저자는 미술과 미학, 철학, 문학, 인문에 이르기까지 사진에 관한 사유가 과연 거기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싶은 부분까지 사진을 위한 철학으로 차용한다. 오히려 사진을 위한 말들 보다는, 존재에 대한, 인식에 대한, 시간에 대한 사유처럼 으레 사람들에게 사진과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을법한 철학적 개념들도 모두 이곳에서 사진철학으로 탄생한다. 사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지배해온 그림의 영역을 벗어나, 가장 닮은 '재현' 의 영역의 탄생은 어쩌면 회화보다 더 복잡한 사유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사진은 피사체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하는 '발견된' 오브제 미학이다. 창조된 오브제 미학이 아니다."(62p)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상투적으로 칭찬하진 않는다. 겸허히 돌아본다. 얕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애정과 확신, 의지는 어디에서건 느껴진다. 기록의 도구로써, 진실의 대변자이기도 한 반면에,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처지로 전락하기도 했던 사진,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해 '빚진' 사진 등 이런저런 사진의 한계성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더불어 그 한계의 극복 가능성과, 또 그 한계의 이면이 지닌 다른 매체와 차별화된 가능성을 이야기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사진, 혹은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 그리고 꺾이지 않는 의지가 서로 한데 뒤엉켜 각 순서의 말미엔 결국 한가지씩 사유를 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법."(328p)
이책은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진을 중심으로한 철학적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곧 삶과 연관되어 있기도 일쑤고, 문체 또한 부담없이 읽기 좋게 되어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전방위 적인 태도는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어떤 태도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정교하고 끈질기다. 어쩌면, 너무 단(맛이 나는) 약이다. 그래서 오히려 에세이 같은 분야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였다. 첫번째는, '앞으로,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는 전과 다른 어떤 중압감이 실릴 것이고' 두번째는 '더이상 사진에 대한 어떤 사유를 하더라도 이 책에서 읽고 느낀것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같은 걱정 아닌 걱정 이랄까. 물론 나는 이 책의 내용 또한 결국 망각속으로 던져버릴테지만, 작가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부딪혔던,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넓고 깊은 사유의 느낌은 쉬이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예술과, 삶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어쩌면 실재와 가장 '닮은' 매체의 특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갖가지 사유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맞닿는 지점이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표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모호한 문제들도 있었고, 그만큼 계속해서 밀고나간 사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자신의 일이 되지 않는 이상, 한장의 사진을 찍는데 이와 같은 사유들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읽은 한가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다행일거다. 취미로 하는 사진찍는 행위가 이와 같은 사유를 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앞으로 또다시,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움직이기 전 그러니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지닌 가치가.
"보고 새기고 마주하고 돌아보는 모든 것들은 전적으로 사진가의 몫이다. 때문에 한 장의 사진은 사진가의 모든 것이다. 지나온 삶의 시선이면서 그 순간 세상과 호흡했던 생의 감정, 세상을 바라본 거울과 창이다. (32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