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4
박홍규 지음 / 푸른들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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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교수의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를 읽었습니다. 헤세가 주관적인 영역에 사로잡혀 세상일에 무심한 채 사춘기적 고뇌를 작품화한 작가라는 세평이 잘못되었음을 40세가 다 되어서야 깨달았고 50이 넘어서야 그를 더욱 뜨겁게 좋아하게 되었다는 박홍규 교수의 책입니다.

 

우리의 철학이 얼마 전까지 2차대전시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독일의 철학이었던 것처럼 헤세의 데미안도 그런 내력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엽 일본이 극단적인 군국주의하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할 때 일본에서 많이 읽혀 우리나라에서도 읽힌 책이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물론 저자가 헤세를 완전히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헤세에 공감하는 만큼 회의합니다. 헤세를 비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헤세가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가졌었다는 점입니다. 헤세가 바라본 인도나 중국의 종교는 카스트제도나 봉건제도를 정당화하는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40 페이지)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헤세가 대단히 반사회적인 음양사(陰陽師)나 점쟁이 도사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화가 나서입니다.(음양사는 천문天文, 역수曆數, 풍수지리 등을 연구하여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사람입니다.)

 

헤세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니지만 그가 평생 맞서 싸운 시민적 삶은 자본주의적 삶이고 추구한 예술가의 삶은 반자본주의적 삶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요 논지입니다. 저자는 헤세를 반국가주의적 아나키스트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헤세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헤세가 스승이나 친구들을 나름으로 이해하면서도 언제나 그들을 뛰어넘으려 했다는 점입니다.(34, 35 페이지)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부처마저 떠났고 세상에 맞서기 위한 반항 체험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41 페이지)

 

헤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고뇌를 극복하기보다 고뇌 때문에 죽습니다. 대부분 교양적 시민이 아니라 비교양적인 본능에 충실한 반시민적 인간상을 지향했습니다.(46 페이지) 저자는 전혜린의 헤세 해석을 비판합니다. 헤세 작품에 통틀어 나타나는 주제는 자아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참된 자아로 가는 길이었으며 이 모토에 그는 끝없이 충실했다는 전혜린의 말에 대해 자아로부터의 해방은 무엇이고 참된 자아는 무엇인가 묻는 것입니다.(47 페이지)

 

그러고 보니 자아로부터의 해방과 참된 자아라는 말은 너무 막연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그런 난해한 자아론보다 독일의 현실에 저항하는 개인의 자아, 즉 개성이라는 것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억압적인 현실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자는 헤세가 말한 자아란 사회나 역사, 정치 등에 의해 파괴된 자아이지 추상적인 형이상학적 자아가 아니라고 봅니다. 헤세는 줄곧 규격에 맞추어지지 않은 자연아 개인이었고 그것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50 페이지) 헤세의 제도권 교육은 중 2 중퇴로 끝났고 그 이후 그는 철저히 독학을 했습니다.

 

까닭 모를 외로움이나 알프스를 향한 향수가 아닌 역사나 민족, 대중으로부터 고독을 느낀 헤세는 현 사회를 부정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었지만 유토피아적 공동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삶을 강력하게 추구했기에 누구보다 사회적입니다.(53 페이지) 저자는 헤세를 독일문학의 가장 우직한 반항아라 부른 라니츠키를 예로 들며 헤세는 니체의 유일한 제자라 말합니다.(56 페이지)

 

헤세는 니체에 심취했습니다.(87 페이지) 저자는 괴테 이래 독일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고독한 자아성장이라는 주제는 독일사회 특히 교육제도에 대한 고뇌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88 페이지) 헤세는 예수와 톨스토이의 가르침을 따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삶을 꿈꾸었습니다.(99 페이지)

 

저자는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단순한 청춘의 애가(哀歌)가 아니라 체제 비판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가정과 학교와 직장이라는 체제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어느 10대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기서 정치와 경제는 구체적인 체제로 등장하지 않지만 10대의 생활을 지배하는 권위주의적인 가정, 학교, 직장은 이미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전제하는 것입니다.(121 페이지)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적인 소설이자 사회비판적인 작품이었지만 다른 작가들과 같이 1900년 전후에 유행한 학교 소설의 유형을 따른 것입니다.(123 페이지) 저자는 헤세가 역사소설이든 시대소설이든 환상소설이든 그 어떤 픽션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예 소설가로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57 페이지)

 

이 말에 맞게 저자는 헤세의 작품들 속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을 예시하며 헤세의 심리나 상황을 설명합니다. 가령 1910년 작품인 게르트루트에 나오는 나의 내적인 운명은 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며 달든 쓰든 간에 그것은 당연히 내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책임지려고 생각하는 것이다.”란 구절을 보고 저자는 이처럼 운명을 수용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태도는 그 전의 헤세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가졌던 방황이 어느 정도 극복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작중 두 음악가의 대립은 여전히 헤세 마음의 대립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153 페이지)

 

1916년 헤세는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쟁의 충격과 포로들을 위한 격무, 막내 아들 마르틴의 중병, 부부관계의 위기 등의 탓이었습니다. 헤세를 심리치료해준 사람은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입니다. 헤세는 랑을 통해 융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들과의 만남 덕분에 헤세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자신 속에 있던 무의식의 세계는 막연하고 단편적인 것이었으나 정신분석에 의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181 페이지) 저자는 전쟁이 한창인 1916년부터 쓰여진 데미안을 통해 헤세가 강조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란 말을 예시하며 데미안은 무더기 총알받이로 죽는 비인간적인 전쟁에 대한 거부이자 이를 초래한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지 추상적인 한 인간의 성장사라는 교육학적인 도식에 의해 쓰인 성장소설이 아니라 말합니다.(18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데미안에서 말해진 깨어나야 할 알은 낡은 유럽입니다.(191 페이지) 헤세는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이었고 평생 종교적이었지만 그의 종교성은 특정 종단이나 종파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헤세 안에 종교적 감성이 자리했다는 의미입니다.(219 페이지) 헤세에게 모든 종교는 같았습니다. 그의 그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싯다르타입니다.(221 페이지)

 

황야의 이리1960년대에 히피 열풍 속에서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유명한데 헤세 소설 중 가장 자서전적인 작품입니다.(234 페이지) 저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니체류의 아폴론적 인간상과 디오니소스적 인간상의 대비가 아닌 정신과 자연의 불일치가 초래한 체제와 시대의 문제를 풍자한 작품으로 봅니다.(256 페이지)

 

1931년 무렵 헤세는 히틀러에 반대하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라는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과거부터 공산주의를 지지했으나 정당 소속이란 그에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파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이 무렵 헤세는 유리알 유희를 쓰기 시작합니다.(274 페이지)

 

1945년 이후 유리알 유희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함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시즘과 니체를 비판한 파우스트 박사는 문명비판과 근대비판인 동시에 사회현실로부터의 추상화라는 점에서 유리알 유희와 공통점을 보입니다.(275 페이지) ‘유리알 유희2400년경 어느 전기 작가가 자기보다 200년 앞선 시대인 2200년경의 전설적 유리알 유희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 되어 있는 미래 소설입니다.(280 페이지)

 

헤세는 정신적으로 억압받는 시대에 정신적으로 해방된 가상의 미래를 빌려 그런 정신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여 현실을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씁니다.(281 페이지) ‘유리알 유희의 집필 시기는 1931년에서 1943년으로 나치의 집권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유리알 유희에서 주목할 부분은 헤세가 평생 추구한 개인화나 개성화가 그가 속한 집단과 조화를 이루는 이상사회의 묘사 부분입니다. 헤세는 이단을 중시했습니다.(283 페이지) 피타고라스파, 그노시스파, 중세 스콜라 철학...

 

헤세는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혐오하고 자기 책을 통해 고집쟁이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304 페이지) 헤세는 사랑이 없는 독서, 경외감 없는 지식, 따스한 마음이 없는 교육 등을 정신세계에 있어서 최악의 적으로 간주했습니다.(304 페이지) 저자는 헤세에게서 체 게바라를 봅니다. 헤세의 삶과 문학은 개인의 독립선언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309 페이지) 헤세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반항할 것을 주문했습니다.(311 페이지) 저자는 말합니다. 반항하기에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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