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제어(獺祭魚)란 수달이 고기를 잡아 제사를 지내듯 늘어놓는다는 의미의 말이다.

비유적으로는 글을 짓는 사람이 많은 참고서적을 좌우에 어수선하게 늘어놓는 것을 뜻한다.

종묘(宗廟)의 소목제(昭穆制)를 보고 달제어란 말을 생각하게 된다. 불경(不敬)일지도 모르겠다.
소목제(昭穆制)는 신위(神位) 및 묘실(廟室)을 배치하는 순서에 대한 규정이다.

소목(昭穆)에서 소(昭)는 원래 존경하다, 밝다는 뜻이었고, 목(穆)은 순종하다, 어둡다는 뜻이었다. 소는 좌(左)의 의미, 목은 우(右)의 의미이다.

왜 밝음과 어두움으로 대비되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중앙의 시조를 중심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후왕들의 신주를 받아들여 정전이나 영녕전에 배치하는 것이 달제어란 단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문화해설 공부에서 달제어라 할 현상이 나타난다. 능이든 종묘든 궁이든 공부할 때 그런 제도들의 뿌리가 되는 중국의 제도나 의례에 관한 규정들을 번역, 설명한 책들을 참고하는(늘어놓는) 것이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왕실의 왕릉조성‘, 이현진 교수의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 한국고전번역원 기획의 ‘종묘의궤 1, 2‘, 이현진, 강문식의 ‘종묘와 사직‘, 임석재 교수의 ‘예(禮)로 지은 경복궁‘, 근원 김용준의 ‘조선시대 회화와 화가들‘ 등을 늘어놓고 있는 내 모습이 바로 달제어라 할 수 있다.

학식도 미천(微賤)하고 영민하지도 못한 내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스타일의 책보다 이런 책들을 선호하는 것은 그 책들이 근본(根本) 또는 시원(始原)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들을 공부하지 않고 대중적인 책들을 공부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사정을 잘 모르거나 급할 때는 대중적인 책들을 공부하는 것이 맞지만 어느 정도 익숙하고 적응된 상태라면 논문들이나 논문을 수정, 보완한 책들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다.

언급한 ‘조선후기 종묘전례 연구‘도 연구자 이현진(李賢珍)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수정, 보완서이다.(이 분은 후에 ‘종묘와 사직‘이라는 비교적 쉬운 책을 썼다.)

‘조선 후기 종묘전례 연구‘에는 한문이 참 많이 나온다. ‘종묘(宗廟)‘식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것이 아니라 宗廟식으로 쓴 많은 한자들이 불편을 가중시킨다.

翼室, 移祔, 祧遷, 追諡, 享祀, 獻議, 殿謁, 褒贈, 虞主, 練主, 祥主, 親盡, 遞遷, 禫祭...

그건 그렇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어 두 차례나 지도교수를 찾았었다는 저자는 학위논문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전공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한다.

나를 포함해 지금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이현진 교수처럼 후에 선택을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참 좋겠다.

* 어제 대화중 미처 제시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후대의 관점이나 가치관의 변화, 새로운 사료의 발견 등에 따라 변하는 생물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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