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결성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과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총학생회가 지은 ‘비참한 대학생활‘(원서 출간 50년만인 2016년 11월 번역, 출간)의 문제의식은 반 세기가 넘은 지금에도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심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의 문제의식이란 오늘날 대학은 사회를 선도하는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취업 기관의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걸러 들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타당한 지적이다.

지금 읽고 있는 이은선(세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2016년 1월 출간)에서 내가 접한 부분은 교육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여겨지던 평생교육도 또 하나의 스펙 쌓기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으며(111 페이지) 요즘은 교회조차도 일종의 학교로 변해 그 과정을 모두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113 페이지)

학생으로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교수로서 거의 40년 가까이 대학과 관계했으나 그런 인연이 그렇지 않은 것과 과연 어떤 차이 또는 효과가 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저자는 현대 사회가 과잉 계획되어 있다는 이반 일리치의 말을 인용한다.

일리치는 사회가 그렇게 과잉 계획될수록 사람들은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배움의 균형이 깨져 교육비의 지출은 늘어가지만 자신감은 한 없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비참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지난 해 여기 저기 열심히 배우러 다닌 나는 올해는 예의 그 열정(인지 아집인지 모르겠지만)이 줄어든 것을 느낀다. 현대의 많은 담론들은, 난해한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겠지만 극히 난해하다. 물론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고 뭐 이렇게 어려운 책이 있냐고 한 중국의 임어당식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전망 부재, 혈행장애(stasis)의 현실이 반영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어떻든 난해 탓(난해하기에 열심히 배우려 하는 면)도 있지만 스스로 사유하는 데 서툴고 게으른 결과가 이런 저런 수업, 특강, 출간 기념 강연 등을 쇼핑하듯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출간 기념 강연은 거의 대부분 책 내용을 요약, 압축해 말하는 수준일 뿐이니 참여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우리문화역사연구소 김용만 소장은 ‘조선이 가지 않은 길‘(2017년 4월 출간)에서 한국인의 교육 열망이 2000년대 들어 대한민국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지나친 사교육비 문제, 청년 실업자 문제로 나타나게 된 원인을, 남들보다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우월욕망을 지닌 자들이 (선한 공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간신히 마련한 사다리마저 걷어차 버리거나 또 다른 신분의 벽을 만들어 버림으로써 백성들이 지닌 배움의 열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조선에서 찾는다.(170 페이지)

역사 천문학 개척자인 김일권 교수가 조선이 고구려의 자주적인 천문학을 계승하기는커녕 천문학을 사대적인 학문으로 만들었다고 지적(‘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참고)했듯 조선은 15세기 초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 최고의 지도를 만들었으나 그 이후에 만들어진 조선의 지도들은 현저히 퇴보했다.(‘조선이 가지 않은 길‘ 참고)

문화유산 해설을 배우면서 알게 된 조선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교, 기독교, 페미니즘의 대화를 통한 21세기 포스트모던 생물 영성을 추구하는 이은선 교수의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를 읽게 한 것은 그런 내 의문과 답답함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공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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