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비밀
자현 스님 지음 / 담앤북스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자현 스님 책을 세 권 읽었다. '스님의 공부법', '스님의 논문법'에 이어 '사찰의 비밀'을 읽는다. 목차를 눈여겨 보게 된다. 1'산문이 열리고 이름이 생기다'는 세 챕터, 2'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여섯 챕터, 3'전각의 배치와 장엄'은 아홉 챕터, 4'안에서 본 법당'은 열한 챕터, 5'수행과 의식의 상징들'은 네 챕터이다. 조금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사찰은 기도 및 수행처이지만 비보(裨補) 사찰, 역참(驛站) 사찰, 능침(陵寢) 사찰도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세운 화성 용주사가 대표적 능침사찰이다. ()이란 이름이 들어간 곳은 능침사찰이 많고 원()이란 이름이 들어간 곳은 역참 기능을 한 곳이 많다. 사고(史庫) 역할을 한 사찰도 있다. 오대산 월정사가 그에 해당한다.

 

사찰을 나타내는 많은 명칭들 중 가장 상위 개념이 절과 가람(伽藍)이다. 절은 절하는 곳이란 의미에서 나온 말이고 가람은 인도 불교에서 절을 가리키던 상가라마에서 온 말이다. 애초 불교와 무관했던 하마비가 절에까지 확대된 것은 조선의 불교 탄압과 관련이 있다. 문정왕후가 절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의 큰 사찰 입구에 다수의 하마비를 세우도록 했다.

 

불교, 하면 화장(火葬) 즉 다비를 생각하게 된다. 화장은 유목문화의 전통이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들어왔을 때 화장 문화에 대한 저항이 오래 지속되었다. 수백년간 승려들도 화장을 하지 않았다. 사리는 화장의 결과 나오는 결정물이다. 뼈는 화장하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 단서이다. 초분이나 가묘(假墓) 후 뼈를 추려 골호(骨壺)에 담는 문화로 인해 성스러운 뼈<성골>와 진짜 뼈<진골>라는 인식이 생겼다.

 

사찰의 첫 번째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 이후 천왕문, 해탈문이 이어진다. 일주문이란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기둥의 문이란 의미이다. 일주문부터 수미산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사찰은 전체적으로 수미산의 구조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불교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제석천(帝釋天)을 정점으로 하는 신들의 세계를 갖추고 있다. 수미산 중턱의 사왕(동방 지국, 서방 광목, 남방 증장, 북방 다문)천을 상징하는 것이 천왕문이다. 해탈문은 수미산 정상 입구를 상징한다. 동아시아 탑은 위아래로는 홀수, 좌우로는 짝수이다. 10층의 10은 완전수이다.

 

사찰의 중심은 금당(金堂; 주불전; 主佛殿)이다. 예전에는 금당에서 함부로 법을 설할 수 없었다. 부처님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법을 설하는 강당이 만들어졌다. 강당은 금당의 부속 건물이다.

 

대부분의 종파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존(主尊)으로 모셨다. 그러나 불교에는 여러 부처가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왕실과 조정에 의해 불교 종파들이 강제로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되면서 대웅전(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신 법당) 중심의 사찰 구조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계신 곳은 대웅전, 사리를 모신 곳은 적멸보궁임을 감안하면 부처님이 군왕급 예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찰은 99칸 제한을 받지 않았고 궁궐 건축에만 할 수 있었던 단청도 할 수 있었다. 법당은 꽃으로 장엄한 궁전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출처는 여불위의 '여씨춘추'이다.

 

궁궐도 사찰도 정전(正殿; 궁궐), 불보살을 모신 곳(본당; 사찰)은 둥근 기둥, 편전(便殿; 궁궐), 요사채(사찰)은 네모 기둥을 사용했다. 저자에 의하면 현존 고려시대 건축물들이 일곱채이다.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 경북 안동 봉정사 극락전,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조사당, 강원도 강릉 객사문, 황해도의 성불사 응진전, 심원사 보광전 등이다.

 

그런데 왜 유독 불교 건물들만 남았을까? 조선시대 유교와 불교의 경제력 차이를 이유로 들 수 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유교는 오래된 건물을 유지하기보다 새 건물을 짓고 확장하는데 전력했을 것이다. 사찰은 궁핍한 경제력 때문에 건설하기보다 보존하는데 주력했을 것이다.

 

이익대영(以杙代楹)이란 말이 있다. 말뚝으로 기둥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잘못된 인사(人事)를 비유해 쓴다. ()은 기둥을 의미한다. 주련의 주()도 기둥을 의미한다. 주련(柱聯)은 영련(楹聯)이라고 한다. 주련 문화는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었다. 성리학자들이 스스로를 경계해 쓴 잠()이 확대되어 기둥에까지 쓰인 것이 주련이다.

 

잠은 혼자 보려는 의미의 것이라면 주련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보여주려는 용도의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보게 하는 주련을 한문 흘림체로 쓰는 것도, 한글로 쓰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불교는 다불보살(多佛菩薩)의 종교이다. 가섭불(과거불), 미륵불(미래불)처럼 시간적으로도 많고 약사여래(동방 약사 유리광세계 거주), 아미타불(서방 극락세계 거주) 등 공간적으로도 많다.

 

대웅전과 대웅보전은 다르다. 대웅전은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대웅보전은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 좌우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자리한다. 대웅보전의 경우 중앙, , 우 존재 모두 부처이다. 이때는 위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구분된다.

 

삼세불은 연등불(과거) - 석가모니불(현재) - 미륵불(미래)로 나뉜다. 삼신불은 석가모니불(작용) - 비로자나불(본체) - 노사나불(현상)로 나뉜다. 삼존불은 아미타불(서쪽) - 석가모니불(중앙) - 약사여래불(동쪽)로 나뉜다. , , , 과일, , 차를 여섯 가지 공양물이라 한다.

 

인도에서는 날씨가 더워 음식이 부패하기 쉬웠다. 그래서 정오 이후 공양은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사시불공은 이로 인한 현상이다. 향은 더위 때문에 냄새가 심한 인도의 기후 조건과 관계가 깊다. 향을 피워 냄새를 없앤 것이다. 반면 더위로 인해 꽃과 과일은 사철 풍부했다. 이런 문화가 종교와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 육법공양이다.

 

신라(新羅)는 계를 의미하는 실라(sila)에서, 서라벌은 부처님 당시 코살라국의 수도 슈라바스티에서, 가야(伽耶)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서 유래했다. 아궁이는 인도의 불의 신 아그니(agni)에서 유래했다. 부처님은 시간적으로 여러 부처들이 순차적으로 계시지만 공간적으로는 한 공간에 한 부처님만 있어야 한다. 한 부처님의 구역이 삼천대천세계(10억 세계).

 

나한 또는 아라한은 산스크리트어 아르하트(arhat)를 음차한 것이다. 초기불교와 부파불교의 이상적 인격에 해당한다. 초기불교의 부처님의 제자를 성문(聲聞)이라 한다. 인도에서는 기원 전후가 되어서야 경전이 글로 옮겨졌기에 그 이전의 공부 방법은 듣는 것 뿐이었다.

 

성문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들어 터득한 분이란 의미이다. 이 성문 제자들은 성취 정도에 따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으로 나뉜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격은 보살이다. 아라한은 작은 배로 제도하고 보살은 큰 배로 제도한다고 말해진다.

 

사찰의 의식구(儀式具)들은 필연의 이유로 발전했지만 단체 생활을 한 승려들의 생활과도 관계가 있다. 과거 사찰에는 수백의 스님들이 살았기에 소리를 질러 의사를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신호 용구들이 발달했다. 목탁은 대표적 의식구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수행 도구이다. 과거 불교에서 징과 꽹과리도 의식구로 사용했다. 죽비는 선종의 도구이다. 죽비삼성은 죽비 예불은 간댜해서 세 번의 소리만으로 모두 끝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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