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희궁에서 시작해 월암공원, 홍난파 기념관, 딜쿠샤, 사직단 등으로 이어지는 나무 해설을 들었습니다. 중간 중간 정동(貞洞)의 분위기도, 부암동(付岩洞)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제가 골목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열매와 꽃, 잎 모양 등의 세부 설명에서 더 나아가 나무와 인간, 지구의 총체적 상관성을 함께 고려한 해설이어서 좋았고 은행(銀杏)과 공룡(恐龍)의 관계는 물론 이산화탄소와 산소 즉 지구 자정(自淨) 시스템과 멸종(滅種) 가능성의 상관관계도 논의해 깊은 인상도 받고 글쓰기에 필요한 영감(靈感)도 얻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에서 목련에 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목련꽃 필 때/ 길 떠나는 사람 많으네./ 행락인파 행려인파 가출인파에 섞여/ 고요히 출가 입산하는/ 죽은 사람들 위에/ 목련은 순결한 면죄부 같은/ 희고 탐스런 꽃잎/ 아끼지 않고 너그러이 나누어 주어/ 봄잠을 덮네...”로 시작하는 김승희 시인의 목련꽃 필 때를 외우는 제게 자연과학자의 설명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목련이 1억년 전 백악기 시대에 최초로 꽃 피는 속씨식물로 등장한 것을 일러 식물세계의 빅뱅이라 합니다. 목련을 찾은 곤충은 벌이나 나비들의 선배격인 딱정벌레들이었습니다. 딱정벌레는 날개가 두껍고 딱딱하며 큰턱이 발달해 씹기에 좋은 입을 가졌습니다.

 

딱정벌레들이 다녀간 꽃은 상처를 입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목련은 암술과 수술을 견고하게 만들고 펼친 꽃잎은 딱정벌레가 머물 수 있도록 위를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목련은 나비나 벌이 좋아하는 꿀을 형성하지 않았는데 이는 딱정벌레가 꿀보다 꽃잎을 먹는 곤충이기 때문입니다.

 

목련은 이 생존방식을 유지해 지금도 딱정벌레를 매개자로 불러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목련은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립니다. “때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음을 목련의 진화사가 보여준다.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60 페이지)

 

목련은 붓 모양의 겨울눈 끝이 마치 나침반이라도 되듯 북쪽 방향(군주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합니다. 즉 배북남면(背北南面합니다.)을 향하는 까닭에 북향화(北向花)라고 불리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피어난다고 충절을 상징하는 꽃으로도 불립니다.(62 페이지)

 

자연자원 보존학을 전공한 작가 샤먼 앱트 러셀은 우리에겐 꽃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꽃의 유혹참고) 러셀은 흥미로운 말을 합니다. “당신은 겉씨식물이다. 당신에게는 꽃이나 열매가 없다. 당신은 이미 지니고 있는 영예에 그저 만족한다. 그것은 아직도 진화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184 페이지)

 

당신은 속씨식물(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당신은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거대한 충돌을 겪고도 살아남았다. 당신은 생명체에 더 많은 의미가 있음을 발견했다.”(197 페이지) 꽃이 다시 보입니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고 만들기는 더욱 어렵지만 그 어려운 길을 함께 오래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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