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포스팅을 보고 ‘in vino veritas.. 저는 vino(wine) 대신 vinegar입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요즘 마시는 와송 식초는 발효주 같다. 술 분위기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이 말을 한 것은 식초를 만들려면 우선 술부터 만들어야 하기에 술과 식초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알콜 도수 12도 이하의 술을 오래 보관하면 식초가 된다.: 구관모 지음 ‘내 몸을 살리는 천연 식초’ 40 페이지)

술 속에 진리가 있다고 알고 있었던 저 말을 내가 처음 안 것은 작고한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의 책에서였다.

새삼 그 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산책’, ‘노동가치이론 연구’ 등 가지고 있었던 책들도 생각난다.

지금 그 책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는 바이지만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보다 술을 마시면(취하면) 진담을 발설하게 된다는 의미가 더 타당할 것이라 보인다.

이는 전이(轉移)에 관한 이야기에도 적용할 말이 아닌가 싶다.

즉 전이라는 착각이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 사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슐라르는 말을 운반하는 매개체인 술을 불의 물(뜨거운 물)이라 불렀다.

에덴 동산에 둘러쳐진 불 모양의 칼(라하트 하헤렙) 즉 화염검(火焰劍)을 칼 모양의 불이라 불렀던 습으로 보면 술을 물의 불이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고종석은 ‘기자들’이란 소설에서 “..그 공유된 과거가 우리를 술자리로, (그리고 바슐라르가 주장하는 호프만 콤플렉스에 의해) 수다로 이끌었다...”는 말을 했다.(고종석 작가가 ‘기자들’에서 묘사한 김현 선생 생각도 난다.)

호프만 콤플렉스는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불의 물이란 말은 절묘하다. 불과 물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불은 집중하고 파고들고 무엇보다 수직으로 자신을 태우며 상승하고 물은 흐르고 고이며 비추기 때문이다.

“..독한 술잔에 기울은/ 도시의 지붕 위에/ 바람에 너펄거리는 철조망/ 철조망 같은 상처/ 그 자국마다에/ 어느 보초의 칼 끝 같은/ 노여움이 내린다..”(박이문 시 ‘상처’ 중에서)란 구절을 음미한다.

모두 술처럼 술술 풀리는 날들을 맞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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