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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영을 위하여.

 

 

 

 

1.

 

 

  이 책의 첫 부분, 프롤로그의 첫 장을 넘기며 저는 솔직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2011년에 어느 대학에 강의를 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시를 낭송합니다. ‘김일성 만세’. 그 후 강연장을 훑어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이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고 느끼고는 다음과 같이 사유를 펼칩니다. 김수영이 시를 쓴 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은 곧 50년 전의 화장만 바꾼 체제 논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들 내면에 ‘모종의 검열 체계가 작동’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아직도 ‘정권을 공격하면 북한 정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여기고 있다고 저자 강신주는 단언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렇게 주장하기에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이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라는 말은 일단 저자 본인이 느낀 주관적인 감정이고 실제로 설문조사를 익명으로 진행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인 근거는 될 수 없겠지요. 여기서 저자는 상당한 비약을 저지릅니다. 백번 양보해서 김일성 만세, 라는 말을 듣고 불쾌하게 느꼈다고 합시다. 그럼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일성 만세, 라는 말이 불쾌하게 들렸다. 체제 논리가 여전히 청중들 속에 숨어있다. 청중들은 내면의 검열을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와 같은 흐름을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김일성 만세, 라는 말을 듣고 실제로 내면의 검열 체계가 작동했는가, 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김일성이 실제로 싫어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내면의 검열 체계의 문제다, 라고 보아야 할까요? 우리가 만들어진 이미지를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면 검열 체계의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실제 나쁘게 볼 만한 상황을 겪고 난 뒤에 느끼는 감정은 내면의 검열과는 상관없는 부분이 분명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처음부터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글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저자가 김수영을 좋아하는, 아니 ‘사랑’ 하는 것은 잘 알겠지만, 그 사랑이라는 것이 굳이 다른 시인들과의 비교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저자에게 있어서 다른 시인들, 서정주나 노천명은 ‘인문정신의 차원에서는 구원될 수 없’ 으며 반면에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자유를 깨달은’ 성자와 같은 시인입니다. (물론 서정주가 권력의 편에 서서 안위를 도모한 것이 잘했다, 라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김수영과 동시대에 글을 썼던 모더니즘의 기수들, 김춘수나 박인환도 강신주의 화살을 비켜가지 못합니다. 강신주에게 있어서 그들은 ‘내용 없이 이미지의 시만 남발하는 테크니션’에 지나지 않으며 김수영은 ‘혼자서 도는 힘을 획득한’ 존재입니다. ‘시의 모더니티가 시적 테크닉이 된 것이’ 과오로 여기는 사람이지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날 선 비판을 하면서 김수영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감추지 않습니다. 김수영의 트라우마로 아내 김현경을 지목하면서, 김현경이 김수영을 ‘배반’ 한 뒤(김수영이 죽은 줄 알고 김수영의 친구와 살림을 꾸린 일, 그리고 다시 합치자는 김수영의 말을 거절한 것 등)에는 더 이상 김수영은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김수영의 ‘아내에 대한 폭행’ 이나 ‘건강한 연애를 못’ 하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앞의 김춘수나 박인환을 비판한 것은 그들의 시를 비판한 것이지, 그들의 삶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반론을 들을 수 있겠습니다만, 시인에게 트라우마는 그의 시작(詩作)에 있어서 큰 사건입니다. 그 트라우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데 어찌 제대로 된 시의 평가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저 옹호글만 남을 뿐이지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언어의 위상, 이라는 말이 중간에 나옵니다. 모든 저작이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엄마를 부탁해, 와 같은 가벼운 소설, 무소유, 와 같은 수필 등이 바로 읽히는 작품이며, 카프카와 같은 소설가의 작품이나 진정한 시인의 대부분 시와 같은 작품이 바로 읽히지 않는 작품들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폐가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소유, 의 저자인 법정 스님이나 엄마를 부탁해, 의 저자 신경숙은 진정한 수필가나 소설가가 아니란 말일까요? 위상이라는 말은 본디 높낮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실은 격, 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지요. 보통은 한 사물이 다른 사물간의 관계에서 가지는 위치나 상태를 뜻하는 경우가 많으며 좀 더 확장된 의미를 살펴보아도 수학적으로는 어떤 국면에서의 상태라는 의미를 가지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책에서 쓴 ‘이런 작품들은(앞서의 카프카의 작품이나 진정한 시인들의 시) 이해는 힘들지만 내면을 뒤흔든다’ 와 같은 서술은 마치 그 이전에 언급된 무소유, 와 같은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위상, 낮은 격을 가지는 것처럼 읽히게 만듭니다. 엄마를 부탁해, 나 무소유, 에 실린 수필을 읽고 분명 내면이 뒤흔들린 사람들도 있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이 책은 이런 연유로 감히 말하건대, 그동안 강신주가 그의 저작들(철학 대 철학,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에서 보여 왔던 많은 오류들의 집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하지만 이런 당황스러움이 극적으로 반전하게 된 것은 부록으로 나누어준 시의 김수영의 사진을 본 뒤였습니다. 보통 글을 쓰면서 사진이나 다른 매체를 함께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김수영의 이 사진만은 이 글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의 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먼저 눈부터 살펴볼까요.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눈길입니다. 그러나 저 눈빛은 망상에 빠진 사람의 눈빛이 아닙니다. 의지를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무엇인가를 지상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결의가 담긴 눈빛이지요.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온 코는 저 코의 소유자가 고집이 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듭니다. 한 쪽 귀는 열려있지만 다른 쪽 귀 부분에는 손을 괴고 있지요. 손을 괸 부분과 얼굴이 만나 이루는 주름은 복합적인 감정, 짜증이 될 수도 있겠고, 고난을 뜻할 수도 있는, 혹은 타협하지 않는 성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아래의 팔자주름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깎지 않은 사자수염은 그 소유자가 자신의 외모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그리고 어쩌면 사납기까지 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듯 한 느낌을 줍니다. 전체적으로 저 사진에서 볼 때 이렇게 말하는 듯 합니다. '너는 한 번 그렇게 살아봐라, 내가 지금 널 지켜보고 있다.' 라고 말이지요. 남자는 40을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된다는 말이 있던가요, 실제로 저 사진을 찍을 때 김수영이 40이었든 아니든, 자신의 외모에는 자신의 삶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 사진에서 드러나듯이 김수영은 진실로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굳건히 살아간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는 먼 곳을 쳐다본 것 처럼 자유라는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동시에 그 자유를 거짓된 자유가 만연하는 이 지상에 끌어내리겠다고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김수영은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주위의 다른 시인들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완성해나갈 때, 김수영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온몸으로 밀고 나갑' 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코처럼, 그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실천적 전망을 찾아나서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동시대 문인들에게 때로는 사나워 보이는 표정 그대로 비판도 가하며 정권과도 끝끝내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 그에게는 그의 시 폭포, 에서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시어인 '나타와 안정' 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저 사진의 입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웃음을 짓는 듯 합니다. 비웃는 웃음과는 다른 건강한 웃음이 입가에 걸려있지요. 이는 자신처럼 스스로의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격려가 아닐까요. 그리고 여기에 김수영을 닮아 그 자신의 힘으로 돌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발버둥을 쳐왔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강신주이지요.

 

 

4.

 

 

  이 저작을 김수영에 대한 평전과 같은 종류의 책으로 본다면 분명 저자로서의 강신주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우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저작이 김수영에 대한 저자 강신주의 일종의 고백, 자신의 삶을 맡겨왔던 존재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고뇌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면 앞서 보였던 많은 오류들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그 수많은 오류를 이제 털어버리겠다, 라는 지향점의 표명이라고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김수영 혼자가 아닙니다. 시인 김수영과 그를 멘토로 생각해왔던 저자 강신주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지요. 강신주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에 김수영을 그동안 투영해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철학과 대학원 생활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담은 글이 좋은 평가를' 받는 생활이었고 자신이 생각을 말하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실제로 강신주의 삶이 그랬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한 자기 위안으로 그치기 전에 강신주는 자신과 김수영의 공통점을 가져옵니다. 문단에서 벗어나 꼿꼿히 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주었던 김수영을 말이지요. 이 때 김수영은 강신주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지금 너는 스스로 도는 힘을 기르는 기로에 서' 있다고. 거기에 용기를 받은 강신주는 이 책의 끝마무리,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김수영을 만나지 못했다면 철학도, 글쓰기도 접었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강신주의 김수영에 대한 일견 지나칠 정도로 보이는 사랑은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끌어안음이며, 김수영의 트라우마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그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지금에 이르러서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증명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김수영이 막상 지금의 강신주의 이 책을 본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신주가 스스로 생각한 것 처럼 그를 보고 자신의 길을 잘 따르고 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거릴지는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치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큰 바위 얼굴, 과 같이, 꿈을 오랫동안 쫓아온 사람이 얼마나 그 꿈에 가까워 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겠지요. 큰 바위 얼굴, 의 어니스트가 이윽고 큰 바위 얼굴에 가까워졌듯이, 강신주도 이윽고 스스로의 발로 딛고 서게 된 것이지요. 그렇기에 강신주가 지금에 이르러 김수영를 떠나보내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올바른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자신의 멘토였고, 스승이었고, 닮은 꼴이었던 그를 떠나보냄으로서 이제야말로 저자 강신주는 온전하게 자신의 힘만으로 몇 번이고 이 책에서 그 스스로가 강조했던 단독성을 획득하게 된 것일테니 말입니다. 앞으로 혼자서 자전하게 된, 그리고 이윽고 혼자가 됨으로써 대가에 이르게 된 강신주의 다른 책들이 어떤 씨앗을 품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강신주가 에필로그에서 굿바이, 라고 말할 때 저도 함께 같이 나직히 발음해보았습니다. 강신주에게는 굿바이 김수영이었으며, 저에게는 제가 의지하는, 그리고 스스로를 투영해보는 존재에게 언젠가 굿바이라고 말할 날이 올 테니.

 

굿바이, 굿바이.

 

 

 

 

 

 

 

 

 

 

 

 

 

 

 

 

p. s. 김수영 사진의 출처는 로쟈님 블로그.

       구글에서 검색했는데 마침 로쟈님 알라딘 서재가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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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29 18:40   좋아요 0 | URL
와- 정말 근사한 리뷰에요.

가연 2012-05-29 19: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꾸벅. 사실 방금전까지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있던 터라, 아하하.. 부끄럽네요, 풋.

웽스북스 2012-05-29 21:07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가연 2012-05-31 08:44   좋아요 0 | URL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괜찮게 쓸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일개미 2012-06-03 04:00   좋아요 0 | URL
많은면에서 공감합니다. 굿굿!

가연 2012-06-03 13:18   좋아요 0 | URL
ㅎㅎ 아하하.. 부끄럽습니다. 일개미님께서는 어떤 리뷰를 쓰실지 궁금하네요.

꽃도둑 2012-06-18 13:50   좋아요 0 | URL
가연님. 아니 대장님!
저 리뷰 연장신청합니다~~ 무기한은 안되겠죠?...ㅋㅋ
이번 주는 도저히 시간 내기가 힘들 것 같고요 다음 주중에 올릴게요.
수욜이나 목요일 까지는 꼬~오~옥!(혹시 메일을 써야하는 건가?....)

아 그리고 리뷰 정말 디테일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6월 선정도서 어쩌다가....가 되었네요....ㅎㅎㅎㅎ

가연 2012-06-18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메일쓰셔도 좋지만 여기다가 달아주셔도 괜찮죠. 그냥 가연이라고 불러주셔도 되는데ㅋㅋ 대장님이라니깐 기분이 묘하구먼요, 푸하하.

꽃도둑 2012-06-26 23:13   좋아요 0 | URL
대장님,ㅎㅎㅎ 리뷰 올렸어요..
늦어도 목요일 까지는 올리려고 했는데 오늘 필 받는 바람에...
대장, 수고가 많삼~ ^^

가연 2012-06-28 10:57   좋아요 0 | URL
확인했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