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효과 - 프루스트를 사랑한 작가들의 글쓰기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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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호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모르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그 제목 만큼은 들어서 알고 있지 않을까. 시간을 들여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 역시 두어 번 도전한 적은 있으나 끝까지 읽는 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불행한 일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려면 중병이 들거나 한쪽 다리가 부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귀족들이 모이는 사교계에 출입하며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소설 속 주인공 마르셀은 어느 날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고, 의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소설 속 명장면이다. 우리가 그 장면만 따로 떼어 '마들렌 장면'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비의도적인 기억과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져가고 그런 방식으로 우리의 삶이 완성된다는 걸 작가는 말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유예진 교수는 자신의 책 <프루스트 효과>에서 프루스트를 사랑한 여덟 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와 사뮈엘 베게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탈리 사로트, 질 들뢰즈, 제라르 주네트, 롤랑 바르트, 아니 에르노가 그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지만 프루스트를 흠모하였던 이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은 또 프루스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작가 개개인의 저서와 기록을 통하여 비교 분석하고 있다.

 

"프루스트 읽기에 심취해 있던 시기에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울프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하였기에『 등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공통된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점에서 울프와 프루스트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사 기법만으로 묶기에는 무리가 있다." (p.45)

 

유에진 교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갖고 있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사 기법, 시간 안에서의 주체와 객체, 기억과 습관의 이중구조,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술 기법,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지닌 독립적 요소로서의 문체, 기호 체계가 구성하는 통일성, 간접 언어, 주관성의 법칙을 보편적 이론으로 설명하기, '문학적 고귀함 입히기' 등 프루스트를 사랑했던 작가들이 그의 텍스트에서 발견한 여러 특성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프랑수아즈의 이러한 양면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에르노가 프랑수아즈를 프루스트의 작품에 절대적으로 찬사를 보낼 수 없는 유일한 요소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는 프루스트가 언급한 바 있는 독서의 주관적인 기능에서 찾아보았다. 독서는 그것을 쓴 작가보다는 그것을 읽는 독자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경험, 기억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p.262)

 

프루스트의 작품은 '탄탄한 구조의 부재,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에피소드들의 나열'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예기치 않은 우연과 의도하지 않은 기억들의 총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소설이라는 평면 구조 속에 현실의 삶을 프루스트만큼 완벽하게 구현한 작가도 드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한편 자신들이 발견했던 여러 프루스트적 특성이나 요소들을 자신의 소설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유예진 교수는 자신의 책 <프루스트 효과>를 통하여 증명하고 있다.

 

현실의 경험과 그것을 매개로 한 의도하지 않은 기억이 합쳐져서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가정은 모든 인간의 삶이 완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현실의 경험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생각이 하나의 새로운 기억으로 축적되는 한편 또 다른 행동을 촉발하지 않던가.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파편과 같은 여러 경험들이 합쳐지고 새로운 경험들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쉬지 않고 변화한다.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자각하게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길을 느작느작 걷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지 않을까. 모든 행복은 과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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