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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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후유증은 비단 육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수선했던 긴 연휴를 보내고 나면 육체의 휴식과 더불어 정신의 안정을 갈구하게 된다.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들었던 어떤 상념들이 머릿속의 여러 공간을 가득 채운 까닭에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절이 지나고 나면 세 살배기 꼬마들이 저질러 놓은 난장판의 집안을 정리하듯, 나는 내 머릿속의 상념과 어질러진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여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고 잊어야 할 것과 오래도록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따로 간추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말하자면 그것은 머릿속 대청소인 셈인데, 방청소에 빗자루와 걸레가 필요한 것처럼 머릿속 청소에도 도구가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흩어진 생각을 갈무리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는 데에는 인문학 서적만 한 게 없다는 한결같은 생각을 나는 지금껏 신줏단지처럼 믿어왔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피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내가 이번 명절에 선택한 책이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동시에 다독가로도 널리 알려진 장석주 작가의 글은 공들여 빗어 넘긴 여인네 머릿결처럼 단아하고 정갈하였다. 사계절 동안 책을 읽고 자신이 읽었던 책과 함께 빚어낸 사색의 향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 한다. 혹여 다치거나 상처받았을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조용히 위무하는 듯도 하였다.

 

"대개의 삶이란 결핍이고 누추함 자체인데, 그 결핍을 채우고 누추함을 벗으려는 욕망 때문에 책을 읽는다. 이때 욕망은 나로서 동일성을 유지하고 존속하려는 본성과 더 나은 '나'로 충만해지려는 열망의 합이다. 앎, 지적인 발견, 창조적 생각들의 발현을 위해 책을 읽을 때, 책은 숨은 욕망들을 비춰주고 성찰적 사유로 이끈다. 어떤 책들은 살아 있는 기쁨과 행복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책을 읽는 일은 지복이다." (p.451)

 

'글쎄, 그럴까?' 하는 의문은 책의 어느 문장에나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사유라기보다 건강검진에서 간과하고 빼놓은 영혼의 검진을 다시 하는 듯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하나 묻고 대답한다. 작가가 읽었던 책은 문학, 철학, 미술, 영화, 건축, 여행, 종교, 경제, 야구, 축구 등 분야가 너무나 다양하여 내 어설픈 지식의 발걸음으로는 감히 따라갈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떼고 그때마다 "휴우!" 하고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억척스러운 현실은 인간을 얼마나 메마르고 혼탁하게 하는지...

 

"깨어 있는 것은 불면을 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싼 밤이다. 그 밤에 불면을 앓는 사람들은 벌거숭이가 되어 표류한다. 움직이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흘러가는데, 흘러가면서 존재의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마침내 불면은 우리의 의식을 거의 찢어놓는다. 불면이 남기는 것은 육체라는 고독의 응고, 그 속에 깃든 정신의 피폐함이다." (p.153)

 

작가는 책에서 130여 권의 책을 읽고 300권에 이르는 책을 언급한다. 작가에게 책은 그야말로 사유의 통로인 동시에 삶의 귀착점인 셈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책은 어수선한 생각들을 거듬거듬 주워 모으는 도구이자 흐느적거리는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 지주대로서의 역할만 겨우 할 뿐 우리가 사는 세상 너머의 세상, 말하자면 고차원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출입증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내가 작가를 부러워하는 까닭도 그래서이다.

 

"나는 양식을 구하듯 책을 구해다 읽고 문장 몇 줄씩을 끼적이며. 음악, 바다, 지평성, 아삭하는 소리로 씹히는 사과들, 이빨 아래 물컹하게 으깨지는 붉은 토마토들, 풍부한 즙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오렌지들, 고요히 대지를 두드리는 봄비, 해마다 돌아오는 여름의 눈부심, 신록이 주는 기쁨과 위안, 내 안의 단단한 얼음마저 녹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들 속에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수액과 꿀을 구하며 '고독의 상상계' 속에 한참 더 머물 참이다." (p.348~p.349)

 

우리가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까닭은 모름지기 자신이 가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일 터, 살면서 가장 소원해야 할 일은 언제든 자신이 가는 길을 훤히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명절에 듣는 가슴 아픈 소식들, 이를테면 '안골 살던 김아무개가 죽었다더라.', '샘말 살던 오아무개가 아프다더라'하는 말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미망과 고뇌 속에서 헤매고 있음이다. 마음 속에서 불면의 등불 하나 밝히지 못한 까닭이다. 소원을 빌기 전에 마음 속 사유의 밭을 먼저 일굴 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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