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이따금 부지런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자랑같지만 정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지만 일단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려 하지 않는다. 재차 고집스럽게 우기는 것이다. 마치 우기는 사람이 언제나 이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럴라치면 나는 '내가 정말 그런가?'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정말 그럴까?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좋아하여 열정을 갖고 임한다'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자신을 꾸미는 일을 무엇보다 좋아하여 밤잠을 줄여가며 동대문 상가 새벽시장에 나간다거나 별을 관찰하는 걸 즐겨 하여 매주 토요일마다 천문대를 찾는다거나 산새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거나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아, 그렇구나!' 하고 감탄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는 끄덕여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밤이고 낮이고 밭에 나가시는 어머니는?'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이 있을까봐 하는 말이지만 어머니는 농사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거두는 일을 좋아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가꾸고 키운 곡식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입히고 먹이는 게 무엇보다 좋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이따금 착각하는 이유는 대상을 잘못 짚는 데 있다. 우리 어머니는 농사일을 정말 좋아하셔, 라고 말하는 불효막심의 자식이 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제2탄(속편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허구한 날 책을 사대면서도 나는 매번 비슷한 이유의 핑계를 대곤 한다. 이제는 질릴 만도 한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웅현의 책을 읽고 공감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깊이 있는 독서 습관에 있을 텐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읽는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치 입에 든 음식을 씹는 것처럼 꼭꼭 씹어 삼킨다. 바쁜 현대인들의 방식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게다가 자신이 읽은 책의 권수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게 좋은 것이다.

 

"1강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어떤 구절을 깨우치는 것은요, 그저 읽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아는 것과 느낀 것은 달라요. 제가 앞서서 불혹이라는 단어를 느꼈다고 말씀드렸지요. 정말 피부로 느꼈어요. 그런데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은 못 느꼈어요. 이 깨달음이 한꺼번에 오진 않겠죠.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아, 이거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다음엔 비로소 내 몸의 일부가 되겠죠."    (p.117)

 

전편을 읽어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이 깨달았던 것들, 이른바 삶의 태도나 창의력 등에 중점을 두고 말하였지만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는 그가 선택한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마치 현미경을 통하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어떤 것들을 새로이 발견하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나는 저자가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선택한 책이 다양한 장르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1강에서 쇼펜하우어의 '문장론'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라는 쉽지 않은 책을 선보이더니 2강에서는 '곽재구의 포구 기행', '길귀신의 노래'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법인 스님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등 다소 부드럽고 문학적인 책들을 선택함으로써 1강에서 경직되었던 사고의 틀을 2강에서는 다시 노곤노곤하게 만든다. 이렇게 8강까지 이어진다. 8강에서는 그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룬다.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에 대해 말하는 4강도 좋았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다룬 5강이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해변을 가만히 산책하다가 어느 순간 아주 행복해졌어요. 영적인 순간 같았죠. 완벽했어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었고,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었어요. 그거 같아요. 순간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순간 자체가 완벽해야 해요.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하죠. 어차피 부족함이 있는 상태에서 원하는 것들은 비합리적인 것들일 가능성이 커요. 지금보다 젊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잘났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들 처럼요. 그런 마음을 정리하면 어느 순간 바라는 것 없이 완벽한 순간이 옵니다. 희망을 극복하면 만날 수 있는 순간이지요. '희망의 극복'이라는 말, 이 또한 카잔차키스입니다. 희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봤다는 것은 순간에 온전하겠다는 의지예요."     (p.210~p.211)

 

오늘 아침에도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올랐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내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은은히 전해져 오는 솔향기와 온 산으로 울려퍼지는 매미 소리와 사색에 빠져들수록 더욱 고즈넉해지는 숲의 적막감. 나는 그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과 흐트러지려는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약간의 시차와 메울 수 없는 그 틈새를 뚫고 샘물처럼 솟아나는 생각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면 듬성듬성 내 마음의 틈새가 메꾸어지는 듯 보이고 어느 정도 내 실존에 대해 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현재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한 듯 보였다. 그리고 내 속에 존재하는 희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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