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락시아 - 정현진 사진집
정현진 지음 / 파랑새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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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억지가 있겠지만 사진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본다기보다는 오히려 읽는 것에 가깝다. 사진을 읽는다?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느껴지지만 시간을 두고 찬찬히 곱씹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진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하곤 한다. 그날 날씨는 어땠을까, 구름은 많았나? 바람은? 주변에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지? 조금 추웠을까? 주변 도로에는 개미가 몇 마리쯤 이동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갑작스런 카메라 렌즈에 놀란 어린 새가 푸드득 날아가지는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 장의 사진을 놓고 웬만한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진을 그리 한다는 건 아니다. 예컨데 여행 책자에 실린 선명하고 화려한 사진은 오히려 섬뜩한 기분마저 들곤 한다. 아무런 상상을 할 수 없는, 이 세상의 풍경에서 한쪽 귀퉁이를 도려낸 듯한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의 사진은 오랫동안 보고싶은 기분이 영 들지 않는 것이다.

 

사진가 정현진의 사진집 <아타락시아>를 나는 정말 공을 들여 보았다. 아니, 읽었다.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피사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피사체를 둘러싼 배경 스토리, 한 컷의 사진에 담기지 않은 그 순간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 영속하는 시간의 경과에서 무한히 정들었던 대상 속에 작가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중에는 '후지와라 신야'가 있다. 여행작가이기도 한 그의 사진에는 '상상 금지'의 팻말이 붙은 여느 여행작가의 사진처럼 선명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고, 다가갈 수 없는 그리움이, 아련한 향수가, 그리고 시간의 경과와 삶의 무상함이 담겨 있다. 내게 무슨 심미안이 있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니다. 예술적인 방면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다만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내가 정현진의 사진집 <아타락시아>를 보고 리뷰를 남기게 된 계기는 그의 사진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상', '사유', '동심', '사랑', '행로', '장면' 등으로 소제목을 달아 분류된 그의 사진집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는 평면의 일상에서 시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한계 저편의 세계로 공간이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된다.

모래 위에 남겨진 피서객들의 발자국에서, 도로의 갈라진 틈새에서, 겨울을 견디는 나목에서, 사선으로 흩날리는 빗줄기에서,어느 음식점의 물컵에서, 때로는 나뭇잎 위의 이슬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상상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사진마다 촬영 동기가 몇 줄의 짧은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철학적 사유나 현학적 글귀를 써 넣음으로써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저 단순하고 깔끔하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것에 대한 관심과 무한한 상상력, 지워지지 않은 동심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은 적어도 수십 명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정현진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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