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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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대설주의보>를 읽었다.  3월에 내리는 눈처럼 깊은 슬픔이 갈비뼈까지 차오르는 소설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인생은 마치 실컷 놀고 한쪽으로 내팽겨쳐진 장난감처럼 내 손길이 닿지 않는 아득함으로 다가오곤 했다.  아니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생각해보면 인생은 언제나 똘망한 눈으로 응시하는 세살배기 아이처럼 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마치 한 권의 장편소설인 양 7편의 단편이 묶인 이 소설집은 그 주제가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사람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연.  어차피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끝내 만나지고야 만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인식하는 관계란 그리 복잡하거나 세밀하지 않다.  경험상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대개의 사내들은 둘 중 하나일 확률이 크다.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앞뒤 가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부류와 남의 일인 듯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다가 관계가 끊어진 이후에나 결과에 집착하는 부류.

 

그것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여자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꼼꼼이 되짚고 그 인과관계를 살피는 반면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것은 어쩌면 여러 개의 직함을 갖고 살아가는 남자의 운명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진 사내들이라 할지라도 관계를 그닥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  과정을 즐기는 부류는 관계가 끝나는 시점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의 과거를 까맣게 잊는다.  그에게 있어 자신이 지나온 과정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반면 결과에 집착하는 부류는 성긴 눈처럼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멀뚱멀뚱 바라만 보며 시간의 표면에 뻥뻥 구멍을 뚫어놓고는 인연이 다 끝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이미 과거로 바뀐 관계를 되돌아 본다.

 

대체로 일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여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남자는 참으로 이해불가의 동물이 아닐 수 없다.  관계를 살피는 일이 직업인 철학자나 사회학자라면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개의 직함을 들고 그때마다 낯을 바꾸어야 하는 남자의 속성상 어떤 관계를 끝까지 면밀하게 살피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남자의 이런 속성을 여성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때로는 그것이 비열하게 보일 수도 있고, 안타까운 심정이 들 수도 있겠으나 다만 그것은 삶의 모순으로 이해할 문제이지 분석하거나 잘잘못을 따져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책의 첫머리에 놓인 ‘보리’라는 단편에서는 주인공 수경이 등장한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수경은 남자에게 몸을 준다.  그리고 수경은 유부남인 그 남자가 원할 때마다 1년에 몇 번 만나는데, 청명(淸明) 때만은 반드시 온천에 내려가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을 7년째 수행했다.  남자는 수경을 '보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수경은 유방암에 걸린 자신이 남자와 더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 그와 만나던 온천에서 그를 기다린다.  수경은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며 청명(淸明)의 풍경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풀밭 위의 점심'에 나오는 나는 대학시절 연우, 수연과 함께 연인처럼 붙어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취직한 나는 수연에게 청혼하지만 수연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연우에게로 간다.  그러나 둘은 결국 이혼하고 연우는 자신의 딸과 함께 귀국한다.  나의 결혼기념일이었던 날 나는 연우의 전시회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딸을 데리러 왔던 수연과 조우한다.  독일인과 결혼하여 독일에 사는 수연은 나에게 한번만 안아달라고 부탁한다.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수연, 연우와 찍었던 풀밭 위의 사진을 보았었다고 말한다.

 

표제작인 '대설주의보'의 해란은 오해 때문에 윤수와 헤어진 뒤 직업 군인의 다른 남자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로 살고 있다.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는 해란은 시간을 두고 한 번씩 윤수를 만난다.  해란을 만나기 위해 백담사로 가던 윤수는 백담사 인근 소읍에서 폭설에 발이 묶이고 해란과는 목소리로만 교류하는 상황. 끝내 윤수는 하룻밤을 더 기다릴 수 없어 그 지역의 지리에 밝은 대리기사를 불러 폭설을 뚫고 백담사로 향한다.  윤수가 백담사 인근에 어렵사리 도착했을 무렵, 해란도 절집에서 무모하게 눈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에 등장하는 은주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 앞에서 딸 하나 데리고 카페를 운영하며 술을 파는 여인이다.  나보다 6년이나 연상이었던 그녀를 좋아하게 된 나는 파괴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살던 삼촌에게 그녀를 소개한다.  술집을 하며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살던 삼촌은 어려운 형편의 은주에게 동업을 제의하고 급기야는 그녀를 가져가버렸다. 젊은 시절 ‘꿈은 사라지고’를 열창하던 삼촌,  삼촌때문에 '꿈은 사라지고'를 흥얼거렸던 나.  삼촌은 후일 자신의 여자가 조카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방황하다가 죽는다.  삼촌과 결별하여 딸과 함께 캐나다에서 살던 은주는 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나와 다시 만난다.   

‘오대산 하늘 구경’ 에서는 연미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사람을 만나다보면 변하지 않는 관계가 있고 또한 변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169쪽)고 되뇌인다. 아내를 포함하여 처가집 식구 모두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후 때맞춰 연미에게서 연락이 온다.  상원사 동종을 취재할 일이 있었던 나는 연미와 동행한다.  삼촌과 조카 사이처럼 뜨뜨미지근한 사이였던 나와 연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유령처럼 부유하는 연미는 오대산 월정사 암자에서 밤새 통곡하다 새벽에 석탄 같은 눈빛을 띠고 내 곁을 지나 떠나간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에서의 혜경은 ‘미쓰강’으로 불리던 여자였다.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였던 그녀는 친구 유석의 도움으로 소설 집필 차 서해 도비도로 내려간다.  시를 포기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고 있던 나와 유석은 도비도에서 그녀와 어울린다.  소설을 완성했지만 출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혜경은 도비도에서 사고사로 발견된다.  그녀가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녀의 신원을 알게 된 유석과 나.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심하게 만났다 헤어지는 관계의 설정을 기반으로 하는 이 작품은 “사는 게 모두 어리석고 잔인한 속임수”라는 지문처럼 현대인의 표면적인 만남을 질타하고 있다.

 

남자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위의 작품에서는 모두 여자 주인공에게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마직막 작품인 '여행, 여름'에서는 남자와 남자의 만남을 쓰고 있다.  남자의 속성과 관계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작가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화장품가게 여인이 잠깐 등장하지만 그것은 단지 이야기 구조에 필요한 장치였을 뿐 Y라는 극작가와 나의 여행담을 주로 쓰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식탁 위에 엎질러진 물처럼 봄이 오고 있다.'  생명이 갈맷빛으로 부풀어오르는 계절.  그 속에서 우리는 습관처럼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고, 잊혀져가는 사람을 또 그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영속하는 한 무질서한 삶의 계율을 우리는 그저 묵묵히 바라볼 것이다.  윤대녕의 소설은 마치 시처럼, 또는 오래 전의 노래처럼 그렇게 읽힌다.

 

"늘 그리워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그런 관계가 있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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