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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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이 지속될 때에는 이런저런 생각도 없이 지내다가도 조금 여유가 있다 싶으면 종종 생각나는 것이 시간이다.  특히 요즘처럼 해(年)가 바뀌는 시기에는 더더구나.  우스개 소리로 시간은 20대에는 시속 20km로, 30대에는 30km로, 40대에는 40km로 흐른다던가.  일견 맞는 말인 듯도 싶다.  내가 책을 읽고 시간에 대해 곰곰 생각했던 적은 많지 않지만 무사 앗사리드의 <사막별 여행자>를 읽었을 때, 익숙했던 시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구절을 옮겨보자.

  

"문명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 투아레그인들은 다르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은 잃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삶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모두가 시간에 쫓겨, 일에 쫓겨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 부족에게 이런 말이 있다. "서두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관조할 시간도 없이 소멸을 향해 내달리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내심은 시간과 짝이 되어 여유있는 행동을 하게 해줌으로써 자신에게 충실하도록 도와준다."

 

"나는 오랫동안 궁금했다.  어떻게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일에 아무런 여지도 남겨 두지 않고 일을 미리 빈틈없이 짜려고들 하는지.  삶을 앞서 계획하면서, 어떻게 삶을 창조하려 하는 것일까?  나는 내 수첩 속에 우연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 둔다.  예기치 않은 것을 위해 숨 쉴 자리를.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우리를 도울 줄 아는 삶의 무한한 다양성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싶다."

                         <무사 앗사리드의 "사막별 여행자" 中에서>

 

그리고 지난해 말쯤 지금은 고인이 된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읽었을 때 시간 좌표에서의 내 위치를 생각하며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골똘히 궁리했었다.

 

나는 그동안 불투명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았다.  저당 잡혔던 그 무수한 '오늘'들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中에서>

 

김선영 작가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었다.  제목은 그럴듯해도 청소년을 근간으로 하는 성장소설은 다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조금은 얕잡아 보는 심정으로 책을 잡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 될수록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런 시시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 온조는 인터넷 카페에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열고 장사(?)를 시작한다.  소방대원으로서 젊은 나이에 죽은 아빠를 대신해 자신의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자는 의도였다.  그에 걸맞게 그녀의 닉네임도 '크로노스'(시간의 신)다.  이야기는 훔친 PMP를 도난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장소로 옮겨달라는 의뢰로 시작된다작년에 온조네 학교에서는 MP3 도난사건이 있었고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었다.  이 사건을 경험한 의뢰인은 또 다른 희생을 막고자 온조에게 부탁한 것이다.

 

두번째 의뢰인인 강토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맛있게' 식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강토네.  한국에 남은 강토의 할머니가 자식을 기다리며 외롭게 죽었음에도 강토의 아버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는다.  아들의 행동에 분노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주었던 돈을 돌려달라고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던 강토는 자신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맛있는 식사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외에도 천국의 우편배달부가 되어달라는 의뢰, 친구가 되어달라는 의뢰가 이어지고 중간중간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온조의 어머니와 온조의 담임인 불곰 선생님과의 로맨스도 책의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PMP를 훔쳤던 아이가 자살을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위기가 찾아온다.  결국에는 그 아이도 자살을 포기하고 온조는 친구들과의 우정, 삶의 무게, 시간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온조는 지금 맞이할 이 순간을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맡겨두려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시간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시간을 놓지 않는다면."    (P.219) 

 

우리는 모두 동시대를 사는 시간 여행자일 뿐이다.  시간 여행자는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차창 밖으로 흐르는 시간과 순간순간 주어지는 풍광을 감상하며 느낄 뿐.  혹시 아는가.  어느 순간 18세의 온조와 같은 당찬 소녀가 '우연'이라는 빛나는 보석을 건네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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