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휴가 기간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은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처제 가족과 함께 봉평으로 여행을 떠났다.  같이 가자고 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약이 있었던 탓에 나 혼자 집에 남기로 한 것인데, 마음 한켠에는 홀로 있을 때의 "자유"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던 아내와 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집안에는 괴괴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 정돈되지 않은 게으름이 유혹하듯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흐트러진 옷가지며 먹고 난 그릇들을 거듬거듬 치우고 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등줄기에 땀이 밴다.  야마오 산세이의 산문집 <어제를 향해 걷다>를 읽었다.  법정스님의 추천도서였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통하여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글에 홀딱 반했던 나는  그간 몇 번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그때 뿐,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야마오 산세이의 글은 싱그런 바닷바람을 가득 머금은 듯 청량한 기운이 머리를 맑게 한다.  좋은 책은 다 읽은 후의 느낌이 맑다.  독서를 마쳤을 때,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라면 그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그래서 좋다.  "물기를 머금은 따뜻한 흙, 맑고 찬 물, 숲을 건너가는 풍요로운 바람, 깊은 숲, 황금색 궁전인 불. 그것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것"이라 믿고 따른 시인, 농부 겸 철학자였던 야마오 산세이.  땅에서 태어나고, 땅 위에 아무 것도 세우지 않고, 다만 땅과 함께 살고, 땅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전 생애 동안 추구했던 작가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도쿄에서 아주 먼 남쪽 작은 섬 야쿠시마의 폐촌으로 이주하여 2001년 8월 예순셋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상과 수행으로 일관하며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오후가 되자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봉평은 초가을 날씨처럼 덥지도 않고 환상적이란다.  아들녀석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단다.  아내의 들뜬 표정이 눈에 선하다.  여기 걱정하지 말고 맘껏 놀다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봉평은 내가 태어난 횡성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가 오가던 봉평장 과 대화장 진부장 등은 부모님으로부터 늘 듣고 자랐던 탓에 고향처럼 느껴진다.
 

"본래 고향이란 산이 있고, 강이 있고, 평지가 있고, 바다가 있고, 거기에 사람이 끝없이 이어서 사는 것을 이르는 말에 다름없다. 어느 곳에서든 깊게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일 또한 물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며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또 하나의 물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물은 흐르고 있다는 진실이다. 그 진실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의 글에선 주인 없는 미래를 향해 성마르게 초인종을 눌러대는 현대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 존재의 본질인 자연, 그것을 하루라도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작가의 확고한 신념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부드러운 땅을 딛고 섰을 때 아내도, 아들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선심쓰듯 산과 강, 자연의 얼굴을 선을 뵈어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직무유기랄 수밖에.  아들은 지금 아비의 고향 어드메쯤에서 영혼의 숨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어제를 향해서 걸을 수 있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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