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삶 자체가 한 폭의 풍경화요 서정시였다.
지난 과거는 언제나 아름답게 채색되어 기억 속에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주위에는 하시라도 풍경화보다 더 눈부신 자연의 풍광이 있었고, 유명 가수의 노래보다 더 고운 자연의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사는 인간도 생산자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즉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구멍난 양은 냄비를 메우고, 부족한 찬거리를 보충할 요량으로 온 산을 헤매기도 하고......

그 고단한 삶 속에서도 행복의 척도라 말할 수 있는 안락과 쾌락은 늘 존재했었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획기적인 발달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풍요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비록 과거에 비해 소비가 늘어남으로써 안락함은 더해졌다고 할지라도 고단한 노동 뒤에 누릴 수 있는 달콤한 휴식과 어느 여름날 집 앞의 시냇물에 제 몸을 담금으로써 맛보던 짜릿한 쾌락은 더 이상 느끼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쾌락은 욕망의 절제, 그 최고조의 한계점 이후에나 맛볼 수 있는, 욕망의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일본 마이니치(每日) 신문의 사회부 기자인 후쿠오카 켄세이가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르포형식의 글이다.   「소비 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타인의 강요나 압박이 아닌, 전적으로 저자 자신의 자발적 시도와 1년간의 실천 경험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엄청난 주제를 안고 있는 꽤나 심각한 르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일단 책장을 넘기면 술술 잘 읽혀지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유서를 읽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유서는 자신은 세상에 있어 짐 같은 존재며,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자책의 말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병이나 노화, 실직이나 도산 등의 경제적 좌절은 "악(惡)"이며, 배제해야 할 존재라는 심리가 사회 전반에 감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비문명으로 잃어버렸던 것들 중에 더 없이 소중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할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36세의 저자가 초등학교 4학년의 딸과 5살인 둘째딸, 그리고 두 살 연상의 부인과 함께 각종 불편을 감수하면서 1년을 살아온 기록이며, 그가 1년간 실천한 불편은 다음과 같다.

① 자전거로 통근하기
② 자동 판매기에서 음료수 사 먹지 않기
③ 외식하지 않기
④ 제철 채소나 과일이 아닌 것은 먹지 않기
⑤ 목욕하고 남은 물은 전동펌프가 아닌 대야로 세탁기에 퍼 담기
⑥ 설거지할 때 뜨거운 물 안 쓰기(고무장갑 끼기)
⑦ 전기 청소기 쓰지 않기 (아이들 방 카펫 청소는 예외)
⑧ 티슈 사용하지 않기 (콧물도 손수건으로 해결)
⑨ 다리미 쓰지 않기
⑩ 음식 찌꺼기는 퇴비로 사용하기
⑪ 도시락 갖고 다니기
⑫ 밭을 빌려 채소와 야채를 직접 키우기
⑬ 엘리베이터, 샴푸, 린스, 세제 사용하지 않기
⑭ 커피, 홍차 마시지 않기
⑮ 된장, 짱아찌 등을 집에서 만들어 먹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더 있지만, 이 불편 중에 백미는 바로 무논에서 오리 농법을 이용하여 직접 쌀을 재배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이웃과 거래 관계가 아닌 마음으로 교제하는 과거 선조의 생활 방식을 직접 몸으로 체득했노라고 적었다.
결국 우리 앞에 쏟아 놓아진 이 많은 물건은 사실 없어도 그만인 것이며,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비의 유혹을 이겨낼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이 불편은 즐거운 것이 될 터이며, 그럼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밝은 미래와 환경을 물려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현대 물질문명을 걱정하는 사람들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저자 야마오 산세이와의 대담도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일정 나이가 되면 성장을 멈추고 노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늘 목격하면서도 현대의 과학기술이나 물질문명의 성장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 사회가 부동산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이 끝나면, 비록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물질문명의 성장은 이제 최종 목적지에 근접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문화적, 정신적 성장을 통하여 성숙한 사회로 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성장의 끝자락에서도 1년에 7%의 고성장을 자신했던 어느 정치가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진실인 양 믿을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실은 광고나 선동을 통하여 가려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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