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 아마 지어낸 이야기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쌀밥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다섯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맷돌에 간 옥수수와 감자를 섞어 지은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었다.  지금이야 그렇게 먹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쌀밥만 먹던 사람들은 건강식이라고 부러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옥수수밥이라는 것이 워낙 소화가 빨리 되는지라 할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배 꺼진다며 뛰지 말라는 당부를 입에 달고 사셨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뛰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는 늘 잔소리로 들렸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우리집은 저녁만 먹으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었다.  산촌의 해는 유난히 일찍 진다.  그렇게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는 허기로 잠이 깨곤 했었다.
간혹 간식으로 고구마를 삶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없을 때에는 주린 배를 쓸어내리며 해가 뜰 때까지 달아난 잠을 원망하며 이리 저리 몸을 뒤척여야 했었다.
그 첩첩산중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고 나는 처음으로 쌀밥을 먹어 보았다.  반찬이라고는 왜간장 하나였지만 나는 반찬 없는 맨밥으로도 그 하얀 쌀밥을 다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로 배를 곯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도 제 시간에 끼니를 챙기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그런 나의 모습을 아내는 어른이 되어서 괜한 일로 짜증을 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배고픔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 지글러에 의해 씌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로 발생하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오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비극적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지구의 한쪽편에서는 비만으로 죽어가고, 단른 한쪽편에서는 부족한 식량으로 생명을 선별하는 현실, 삼림파괴로 메말라 가는 농토와  기아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국제기업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존을 갈망하는 그 사람들의 배고픔을 테러의 도구나 전쟁의 잔해 쯤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 소는 배불리게 먹이면서 사람은 굶어 죽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행태를 우리는 맬서스적 자연도태로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 구제는 임금님도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들의 배고픔을 먼 나라 이야기로 눈 감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기아로 죽어가는 끔찍한 현실을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대화 형식으로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지배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P.162)
저자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하고 연대하여, 기아를 극복하고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데 힘쓰자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P.169)
우리는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밝힌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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