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사는 즐거움 - 시인으로 농부로 구도자로 섬 생활 25년
야마오 산세이 지음, 이반 옮김 / 도솔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면서 야쿠 섬을 방문했던 것도  ’인연’이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999년 2월 재팬텍스(Japantex)의 관람을 목적으로 일주일간 일본 여행을 떠났었다.
이런 여행이 대개는 그렇지만 관람 후의 남은 일정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우리 일행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많지 않은 여행 경험을 종합하여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 경비를 계산하고, 숙소와 준비물 등을 준비하며 부산을 떨었었다.   그렇게 급조된 여행지가 야쿠 섬이었다.  도쿄에서 가고시마까지, 다시 가고시마에서 야쿠 섬까지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며 그 먼 곳까지 갔던 이유는 그곳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여행 정보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특별한 목적도 없었던 우리 일행에게 미끄러운 비탈길을 걷는 자체로도 여행자의 의지를 꺾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수령 7200년의 조몬 삼나무를 보지도 못한채 안락한 숙소의 유혹에 못이겨 길을 돌려야만 했었다.  스치듯 지나쳤던 그 섬의 원시림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잘 보존된 그들의 자연 경관은 우리 나라의 여러 여행지에 들를 때마다 내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섬에 들렀을 때도 저자는 아마 그곳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를 몰랐고, 지금 그가 기록한 삶의 자취는  나의 손에서 유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야마오 산세이가 1996년 7월 호부터 98년 6월 호까지 만 2년에 걸쳐서 월간 '아웃도어'지에 연재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현대의 미야자와 켄지'로 불리는 저자는 많은 시와 산문을 쓴 시인이자 농부이며, 실천하는 사회 운동가이자 구도자였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도쿄에서 야쿠 섬으로 들어와 손수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냈던 25년의 섬 생활은 저자가 그토록 바랬던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어준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2000년 11월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2001년 8월에 조용한 죽음을 맞기까지 저자의 부인이 발문에 언급하듯이 그의 삶은 '여기에 사는 슬픔'이고 '여기에 사는 괴로움'인 동시에 '여기에 사는 기쁨'이자 그것들을 넘어서 '모든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삶에 대한 찬가와 같았다.
이 책의 표지에 실린 부부의 사진처럼 이 책의 내용은 담담하고 소박하게 사는 가족의 일상을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조용히 써내려 가고 있다.  저자가 지향했던 '아웃도어 라이프'는 수렵과 채집의 석기시대 문화를 현실에서 즐기는 것이요, 삼라만상의 신성함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요, 지구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지역생명주의'였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필름은 바깥 세계의 온갖 대상에 감응하며 기쁨과 분노와 슬픔과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감정은 생명의 가장 깊은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는 '공명 현상'이란 본질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에는 우리가 식물이었던 때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꽃 한 송이가 피면 이웃 가지의 꽃도 동시에 피는 것처럼 우리도 절로 꽃 피워지는 것이다.(P.253)
우리 모두가 농부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가 파괴한 이 자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땅에 우리는 두 발을 딛고 서있다는 것을.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찾았던 삼척의 무릉계곡이나 지리산 칠성계곡의 모습은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것을 몹시 그리워 하는 간절한 향수는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줘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될 것임을 나는 막연히 느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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