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쨌거나 소설은 다양한 삶의 풍경을 지면 위에 옮겨놓음으로써 해답이 없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읽는 소설을 지도 삼아 자신에게 맞는 존재의 이유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설 읽기는 평생 동안 계속된다. 소설이 아니라면 결코 밟아볼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을 원할 때면 언제든 무시로 드나들 수도 있으며, 이번 삶에서는 결코 내가 가볼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다른 삶을 소설 속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소설이 있다. 매트 헤이그가 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노라를 통해 '완벽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파혼, 해고, 반려묘 볼츠의 죽음 등 실망과 좌절감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노라.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초록색 책들로 가득한 자정의 도서관이었다. 그 넓은 도서관을 안내하는 사서는 학창 시절 노라가 학교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너무도 큰 충격에 빠졌을 때 진심으로 위로해 준 학교 도서관의 사서 엘름 부인이었다. 서가에 가득한 책들은 모두 노라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여러 삶들을 담고 있었다. 노라는 그렇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이미 과거로 변한 후회의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다른 선택을 했던 삶을 살아본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기록한 <후회의 책>을 펼쳐서.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p.276)


노라는 그렇게 이번 삶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다양한 후회의 순간들과 만나고 다른 선택의 삶을 살아본다. 남자친구였던 댄과 결혼하여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며 살기도 하고, 절친이었던 이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모험적인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어 순회강연을 하며 화려한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빙하학자가 되어 북극을 탐험하기도 하고, 결성했던 음악 밴드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동물 보호센터에서 일하며 틈틈이 포도밭을 돌보는 편안한 삶을 살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아주 흥미진진하거나 가치 있어 보이는 삶조차 결국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른다.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세상이 되어 지켜보는 것."  (p.200)


그러나 노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고 후회했던 다른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번번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 돌아오곤 한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았던 삶도 직접 살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삶은 이러해서, 저 삶은 저러해서 계속 살아갈 수 없었다.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p.258)


노라가 마지막으로 돌아왔을 때 엘름 부인은 말한다. 그녀가 여기 돌아온 건 죽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제 노라의 다양한 삶이 산재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노라는 무너지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노라는 엘름 부인으로부터 받은 만년필과 그녀의 미래를 기록할 백지의 책 한 권을 들고 죽음과 삶의 중간 지점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통과한다. 그녀는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가끔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느 세상에 서 있든지 간에 머리 위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p.392)


모든 삶에는 부산물처럼 온갖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일말의 후회도 없는 완벽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삶은 그렇게 불완전한 선택의 연속이자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뒤뚱뒤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기에 한번 최선을 다해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매번 중심을 잃고 뒤뚱뒤뚱 불안해보일 수는 있지만 금세 자리를 잡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미래를 향해 꿋꿋이 나아갈 수 있다. '할 수 있어. 잘될 거야.' 마음속으로 다독이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미래를 몸으로 읽어가는 과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