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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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같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철학서를 읽어왔다. 철학서 탐독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과 함께 자취 생활을 시작했던 중학교 2학년 무렵,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나는 수면 시간을 하루 3시간으로 줄였다.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결정이었다. 단순한 치기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덤으로 주어진 깨어 있는 시간을 도대체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자신의 방을 꾸미듯 길어진 하루를 뭔가 의미 있는 일로 채우고 싶었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철학서 읽기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되는 서양 철학자들의 저서를 역사적 순서대로 모조리 읽어보겠다는 게 나의 일차적인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플라톤의 저서 <향연>, <국가>를 필두로 구하는 족족 마구잡이로 읽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머리를 지끈지끈 옥죄어 왔지만 언젠가 이 모든 걸 환하게 깨닫는 순간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았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철학서 탐독을 그만두었다. 그해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었다. 철학서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철저하게 금욕주의자로 살았던 나는 그해 그마저도 그만두었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내가 읽었던 수많은 철학자의 저서를 통해 내가 깨달았던 것은 "철학의 효용은 인간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자맥질하듯 나타났다가 순간적으로 스러지는 가변적인 불안이 아니라 삶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 이를테면 죽음이나 질병 등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마주할 때의 불안조차 철학을 통해 우리가 불변의 진리와 마주함으로써 그와 같은 불안 역시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쓰려고 하는 백종현 교수의 저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무슨 연관이 있으며, '칸트 3대 비판서 특강'인 이 책의 내용과는 또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철학서 탐독을 멈춘 후에도 칸트는 각별한 인물이었다. 움베르트 에코의 <칸트와 오리너구리>를 읽었던 것도,  미코시바 요시유키의 <그렇다면, 칸트를 추천합니다>를 읽었던 것도 칸트 철학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과 여전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의 세계관 때문이었다. 칸트 3대 비판서 특강인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다.

 

"어떤 이들은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 사상이 칸트에 모였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 사상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칸트를 추종하거나 비판하면서 철학할 수는 있어도, 칸트를 모르고서는 철학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로써 사람들은 칸트 철학이 철학사의 중심에 놓여 있음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p.25)

 

1강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강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3강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를 통하여 저자는 칸트의 저서『순수이성 비판』,『실천이성 비판』,『판단력 비판』을 요약하고, 저자의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독자들의 칸트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칸트는 인간을 인과적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적 존재인 동시에 모든 행위에 있어서 늘 자신의 자발적 의지를 인식하는 이성적 존재로 파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적이고 자발적으로 보편적 도덕 법칙에 따라 행위할 때만 도덕적이라고 보았다. 정언명법으로 표현되는 보편적 도덕 법칙은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칙으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로 대변되는 그의 준칙에 의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의 이성 비판은 이로써 우리가 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은 인식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뿐이지만, 인간에게 가치 있는 일은 논리적 사고 활동뿐만 아니라,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도덕적 완전성, 그리고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 실현된다는 희망 내지 확신을 가지고 역행(力行)하는 일임을 일깨워준다." (p238)

 

어찌 보면 칸트는 인간 존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음으로써 낭만적인 철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까닭에 그의 사상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칸트를 읽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칸트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질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고민한다면, 궁극적으로 확실한 정답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정답에 유사한 어떤 결론에 이르지 않겠는가. 어려운 수학 문제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느냐에 따라 정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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