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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의 대선 후보중에는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가 있었다. 그는 1996년 이후 2008년까지 네번 대통령 후보로 나왔고, 네번 다 고배를 마셨다. 심지어 2004년 부시와 고어의 투표 전쟁(얼마 안 되는 차이로 부시에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긴)때 그의 지지율 3%가 고어에게서 갔더라면 미국정치는 더 이상 네오콘에 휘둘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나라 똘기자들은 2008년 미대선후보들을 소개하는 자리에 랠프 네이더가 또 나왔다며 그를 비웃으며 까는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사실 그 찌라시 기자들이 그의 이력을 위키피디아에서 잠시만이라도 살펴봤다면, 그의 대선 참가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랠프 네이더는 낯선 인물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미대선에 4번이나 나왔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선 그러니깐 듣보잡한 그가 미국 대통령 후보에 4번이나 나왔을까? 호기일까 아니면 신념일까? 한번 떨어졌으면 될껄? 뭘 번번히 도전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이력을 잠시 살펴보면 1934년 레바논에서 온 이민자 아랍계 부모밑에서 태어났으며 타고난 머리로 1955년 프린스톤 대학을,1965년에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똑똑한 머리를 타고 났지만, 그 좋은 머리를 사악하게 쓰지 않았다. 그러니깐 내 말은 변호사나 뭐 그런 좋은 직업을 가지고 약자를 등쳐 먹지 않았다는 말.
그를 돈 잘 버는 변호사가 아닌 활동가로 만든 것은 Automobile safety activism 이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는 hardvard law school지에 소비자의 안정성에 대한 첫 기사를 쓰면서부터인데, 1959년 Nation지에 당신이 살 수 없는 안전한 차(The safe car you can't buy)라는 자동차 안전에 관한 비판하는 기사를 쓰게 된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실제 사람들이 자동차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수 많은 미국자동차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내는 연구를 해서 그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라는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은 GM motor의 컨베어 자동차의 사고에 대해 소비자 잘못이 아닌 차 부품 문제로 인한 속력조절이 문제였다는 것을 제기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고무되어 GM를 상대로 법정으로 그 문제를 끌고 가게 되었다.
이 글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시민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그는 마침내 National Traffic and Motor Vehicle Safety Act 을 제정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그는 그 이후로도 생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화학물질로 오염된 미국의 강이나 호수의 정화운동에 많은 심혈을 기울린다. 그의 이러한 사회적 활동은 수 많은 단체를 양산해 내고 감시의 기능을 넓혀 나가는데 초석이 되었다. 미국의 시민활동역사에서 랠프 네이더의 영향력은 엄청나며 그의 영향력과 지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 그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단체들을 보시길.http://en.wikipedia.org/wiki/Ralph_nader
자, 그렇다면 시민운동가로서 존경받는 그가 왜 대통령 선거에 네번씩이나 나온 것일까? 시민운동가로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쳤다면 그는 더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텐데.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미국 양당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3의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의 양당제가 우리보다 세련돼 보이고 격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뿌리깊은 지엽적인 양당제 선호는 우리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눠졌다면 그들 또한 남부와 북부로, 백인과 유색인종으로 당이 갈라져 있다. 지들끼리 똘똘 뭉치며 이익집단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마 우리의 정치 지형이 지역감정으로 몰아가 권력화 되듯이, 미국의 정치 지형 또한 마찬가지란 말.
유권자라면 누구나 다 정치적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신념이나 원칙이 현재 지배하고 있는 다수당과 맞지 않을 수 있으며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네이더의 이력으로 보면 그는 사사로운 이익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나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랍계 이민자의 아들로서 소수의 차별과 불이익이 그 어떤 정치적 루트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대통령 후보에 뛰어든 것인지 모른다. 무지개처럼 여러 빛깔의 색이 함께 존재하고 같이 어울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말이다.
물론 네이더의 표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아무리 시민운동가로서 존경받은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존경과 표몰이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내 지지율 3%. 하지만 나는 미국 민주당에서 특히나 고어가 몇 표 차이로 부시에게 떨어졌을 때 고어의 표를 뺏어갔다는 비난의 글을,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민주당은(안으로는 비난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내고 있는 소수의 색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까.
노회찬은 우리 사회의 랠프 네이더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철학과 신념대로 걸어왔으며 소신껏 일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정치인다운 정치인이다. 그도 시장 후보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무모하기는 것이긴해도 소수당의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야권 통합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정치적 블록을 쓰려뜨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세훈이 정 싫다면 그리고 강남에 돌을 던지고 싶다면, 차라리 그에게 후원금을 던져달라. 정치적 후원금이야말로 소수 정당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되고 그 기반은, 독단적인 파시즘은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선후원금 후욕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