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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있었던 직장으로 다시 복직을 하면서 나는 그때처럼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어영부영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에 이번만큼은 정말로 열심히 일해서 그만 뒀을 때 나 자신을 터득시킬 그런 성과를 얻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갔지만 그런 야망 따위는 첫 출근을 하고 팀장과 한판 싸우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지내다가 또 어영부영 세월이 흘러 갈 것이라는 생각에 읽은 이 책은 울고 싶은 내 촉수를 건드렸고 어디쯤 부분에서는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슬프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참 사노 요코 할머니의 수다가 좋았던 것뿐이다. 그녀가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누구에게나 있는 소소한 일상이 모여 그녀의 나이를 만들어 냈고, 그녀의 삶이 즐거워 보였던 것뿐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그녀의 일상이 내게는 있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한창 빠져 있는 드라마 [또! 오해영]을 보면서 감정이입에 빠져 드라마 주인공 에릭에 홀릭 되었다. 대체로 텔레비전에 몰입하지 않고 조용히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나도 그녀처럼 너무 평범했고 그녀처럼 비교되었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평범한 여자 주인공(하지만 그녀는 너무 예쁘고)과 나를 일치 시키는 억지도 만들면서 남자 주인공의 행동에 설렘을 갖게 되었다.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주책없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때로는 같은 공감대를 갖은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의 그 반짝거리는 순간을 사노 요코의 글에서 찾았다.

 

이런 나의 요즘 생활은 사노 요코의 일화를 읽으면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사노 요코가 삼촌과 함께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러가서 삼촌이 주교를 욕할 때 그녀는 자신의 평범함을 함께 생각하며 주교의 사랑을 이해했다고 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두지 않고 그저 주변 인물로 생각했던 부분들이 훨씬 많았던 그녀의 얘기들에 나는 그것에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다.

 

 

 

“나에겐 드라마란 것이 일어날 수 없다. 드라마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며, 연애는 미남 미녀만이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P133

 

 

자신이 미녀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속의 연애 같은 사랑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드라마속의 또 평범한 인물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오버랩 시켜 안쓰러워하는 그녀의 그 마음이 또 얼마나 귀여운지. 자신의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면서 행복은 현실 생활 속에 어쩌다 등장해야 하는 거라며 고양이의 행동에 뿌듯해 하는 그녀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은 또 익살스럽다.

 

 

사노 요코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그 개의 품종도 범상치 않다. 그 개는 시바견인줄 알고 키웠더니 얼굴만 시바견이고 몸은 닥스훈트처럼 길고 다리가 짧아 얼굴과 모습만 보기만 해도 우스꽝스러워서 매번 비웃듯이 식구들이 대했다. 누가 저런 개와 짝이 되겠냐며 점차 불러오는 배를 의심했다. 사실 배가 불러도 다리가 짧아 늘 땅과 배의 공간이 없어 그냥 좀 뭘좀 많이 먹었나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개가 글쎄, 새끼를 낳은 것이다. 그 우스꽝스러운 개가 새끼를 낳고 누워 있는 모습에 그녀는 자신이 예외로 여겼던 인생의 다른 단면을 느꼈다고 했다. 새끼를 낳고 누워 있는 모습에도 인생이 있다.

 

 

 

“ 부산스럽고 어수선해서 몇 년이 지나도 이 어린 것아 했던 개가, 졸지에 인생의 슬픔과 체념을 받아들인 무섭게 고요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인가. 이 눈을 보고 누가 웃을 수 있을까. 게다가 훌륭하기까지 하다. 남자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무 불평하지 않으니” P199

 

 

2급주를 마시며 자신과 형제들에게 훈시를 했던 아버지의 그 말들이 아버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훈시가 아버지 술안주로 함께 얻어먹었던 그 톳조림과 함께 자신의 살 속에 녹아 있었다는 얘기가 이 에세이 중에 가장 오래 기억이 남는 부분이다. 아버지의 저녁시간에 옹기종이 앉아 아버지의 반찬을 탐하였던 네 명의 남매들에게 들려줬던 얘기들은 이 에세이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인쇄된 글로 된 것을 의심해라” 라는 아버지의 얘기에 그녀는 남의 얘기를 듣고 섣불리 믿지 않게 되었고, 정보의 바다에서 쏟아지는 얘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소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1938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전쟁이 끝난 후 보모의 고향인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가난했고 힘들었다. 이렇게 보면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평탄한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냥 일본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독일 조형대학에서 공부하고 스페인과 다른 나라들을 다니며 살았던 생활들을 보면 또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토대를 걸어 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을 그렸던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기까지의 삶은 사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이 소소한 글이 때로는 밋밋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차오를 순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때로는 옆집 아줌마처럼, 때로는 전화로 서너 시간을 떠들고 나서도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는 친구 같은 기분이다. 이런 그녀의 재미있는 얘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 살았다면 70세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주책없는 얘기라도 좋을 텐데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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