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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 년이 다 나와 있는 큰 달력을 펴 놓고 2박 이상 여행을 갈 수 있는 연휴들에 색칠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보는 직장 동료들은 늘 “참 재미있게 산다”고 말을 했다. 세상에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저렇게 적극적으로 다닐 수 있는 에너지가 부럽다고도 했다.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몇 개월 전부터 비행기를 알아보고 예약을 해 놓고 준비하는 나의 지극정성은 아마도 주변 사람들에게 신나는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나쁜지는 않지만 사실 여행에 미쳤던 것은 삶이 우울했기 때문이고 사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녀온 유럽여행에 처음으로 여행에 내가 왜 그동안 재미없는 하루들을 보내 왔던가 후회를 했다. 좋아했던 클림트의 그림들을 책이 아닌 반짝이는 황금색이 칠해진 실물 그림을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던 그날은 하루 종일 걸어 발톱이 빠져 고통스러웠던 일도 잊을 수 있었고, 늘 이름만 들어도 애잔한 빈센트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날은 정말로 가슴이 울컥해서 작은 액자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왜 나는 그토록 작은 일이 흥분하며 하루를 망치고 때로는 그 일로 일주일동안 괴로워했었나 싶은 것도 여행 중 기차를 타면서 많이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여름휴가를 위해 수개월 전에 비행기 표를 끊어 놓고 여행지의 책을 읽으면서 설레어하고 여행 루트를 짜는 동안에는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지만 여행을 하고 오면 그런 시간들도 다 재미났었던 어느 해의 추억이 되어 있었다. 사는 게 매일 재밌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며칠을 위해 그동안 나는 참 애를 쓰며 살았었다.



언젠가 읽은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느낌을 받았던 저자 김혜남의 새로운 책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일 년 중 일주일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 애썼던 나의 지난날들도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왜 그토록 며칠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은 참는다는 생각을 했을까.




정신과 의사,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 가족들을 구성한 며느리로 바쁘게 살아 왔던 그녀에게 생긴 파키슨병은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해줬다.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바쁜 생활 때문에 결혼이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그녀의 이력에 나는 그녀를 다시 한 번 존경하게 됐지만, 그 존경이라는 표현위에 그녀에게는 참는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옷장 서랍을 뒤지고 매번 참견을 한다면 그 갑갑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녀의 시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에게 해 줬듯이 옷장 서랍을 뒤져 정리를 해 놓고 잠을 자다가도 아들 걱정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느 프로에 나왔던 그런 시어머니였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나도 피곤하다며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눕는 남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 그녀가 한때는 이혼도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신이 없어도 잘 살라며 눈물을 흘렸던 그 날들이 그녀가 지금 말하는 그 “재미”라는 것에 해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병을 얻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진료 시간이 아닌데 전화로 혹은 면담으로 괴롭히는 환자들을 만나더라도 직업이 있다는 것이 소중해지고 내가 벌어서 내 치료비를 낼 수 있는 그 떳떳함이 자랑스러워지는 것이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이제는 직업이 있다는 것,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소중한 가족이 내 옆에 있다는 것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파킨슨병으로 어느 날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 고통스러운 그때 5분이 지나서야 화장실 앞으로 딱 한 발짝 움직이면서 이제는 몸이 내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여 주는 것, 그 소중한 시간이 자신에게 허락되는 것, 그 삶이 얼마나 즐거운 것이고 가치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P24

그런 그녀가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남기듯 얘기하는 이 마흔 두 가지의 얘기가 나이든 꼰대의 참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그녀의 딸과 아들에게 전달하듯 썼지만 그 얘기 또한 가르침을 주기 위한 얘기들은 아니었다. 뭔가 권유하지만 내가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이런 일도 있었더라, 이런 얘기는 한번 참고해봐, 라는 듯 얘기하는 그의 얘기들은 선하고 부드럽다. 아마도 파킨슨병은 그녀를 바람에 불면 몸을 다 내어주고 흔들리는 풀과 같은 존재로 만들었나보다. 그래서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에서 그녀는 자신의 맘처럼 행동해주지 않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행동을 그냥 외워버리라고 한다. 남편과 자신의 쓰는 장롱과 서랍장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를 어느 순간 어차피 고쳐지지 않으실 테니 원래 저런 분이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저러실 수 있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사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알아가는 순간에 오는 가슴 답답함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내공이 쌓여야만 가능한 얘기인 것이다. 그 내공을 쌓기 위해 하루를 재미있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생]에서 김대리가 장그래에게 했던 얘기 중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문을 열고 닫는 일이라는 대사가 생각이 난다. 인턴사원에서 정식 직원으로 가기위해 애쓰면서 이 문을 통과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인생의 수많은 문중에 하나의 문을 열어 봤을 뿐인 것이다. 저자 또한 지금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 끝이 나면 다 좋아질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것은 그냥 하나의 문이 열고 닫혀졌을 뿐이라고 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이 나면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한 학기가 끝이 나면 2학기가 시작되고, 졸업을 하면 다른 입학이 있고, 다시 졸업을 하면 이제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또 열어야 하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니 지금 고민을 하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비록 이 생각이 가슴까지 전달되는 깨달음이 없을지라도 입 밖으로 한번 내보면서 살아가고 싶기는 하다. 아, 오늘 하루 소풍처럼 참 즐겁구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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