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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의 일곱 번째 오렌지를 가지고 있나요? [마술 라디오_ 정혜윤]

 

 

 

 

 

언제부턴가 나는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을까. 외부로 많이 돌아다니는 일을 하면서 뭔가 진득하게 앉아 들을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나 스스로 생각할 때쯤, 아마도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집중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독서실에서 몰래 들었던 음악도시와 인연이 끊긴 후 라디오가 아직도 나오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 마치 나는 디지털 세대로 모든 세상이 끝이 났다고 생각했었나보다.

 

 

한 일 년쯤 퇴근을 같이 했던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오는 시간은 약 40여분이 걸렸다. 그때 늦은 밤 틀어 놓은 라디오 속에 흘러나오는 추억의 가요를 들으면서 우리는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곤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눈이 내리면 그날의 향수대로 흘러 나왔던 지나간 가요가 모두 나의 추억의 한편을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드라마틱한 기분에 취해 그날은 라디오를 끄고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라디오는 사람들에게 이렇듯 지나간 향수를 불러오는 것 같다. 저자이며 라디오 피디인 정혜윤이 그동안 다큐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어쩌면 지나간 시간의 향수와 추억의 한편을 들춰내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만난 사람들의 열 네 명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은 가슴이 뜨거워 졌다가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가 이내 긴 한숨을 토해 낸 곳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나에게 너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즉 나의 괴로움, 내 삶의 무게, 나의 성장, 나의 미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한 게 아니라 자아에 헌신 중이었던 거지. 그러느라고 24시간 내내 무척 바빴어. 내게도 제3의 밧줄이 있었던 셈이야. 소득 + 지출+ 자아. 로맹가리의 행복한 세상과는 반대였지.”P 32

 

 

 

로맹가리는 친구들 앞에서 여섯 개의 오렌지를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늘 일곱 개의 오렌지로 보여 주고 싶어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그 어떤 이상보다 일곱 개의 오렌지가 필요 했던 것이다. 일곱 개의 오렌지를 곡예를 하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로맹가리의 욕망의 일곱 개의 그 오렌지를 떠 올리며 나 또한 내가 필요했던 오렌지가 어떤 것이었나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자신에게만 오로지 집중하며 살았던 그 시간에 나도 모르게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라디오를 틀어 놓으면 오랫동안 음악만 틀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라디오 디제이가 게스트들과 잡담을 하며 웃는 코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렇게 한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노래를 10곡정도 틀어주는 코너를 가지고 있는 어떤 한 채널을 알아 가끔 시간이 맞으면 그 프로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라디오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알아서 틀어 놓은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가끔 나의 발목을 잡는 음악이 흐를 때는 주저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도 어쩌면 길가다가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버섯을 파는 한 상인이 사람들을 버섯 종류를 비유하며 말하는 부분에서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고 반성하게 될 것이다.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마지막 잎새의 생각은 나도 반성하게 된 부분이 많다. 누구나 나를 위해 누군가 마지막 잎새의 그림을 그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누군가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려줄 대상을 찾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힘을 내서 병실의 그녀를 살리려 그려 냈던 마지막 잎새의 화가는 어쩌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희생을 할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유난히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라디오 속의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마음이 훈훈하다. 시골로 귀향을 하여 살게 된 부부의 얘기는 더 그렇다. 그 두 부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낼 방법을 찾다가 집마다 있는 [논어] 읽기를 하며 마을에서 책모임을 가졌다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아날로그 모습인가. 그리고 아내를 먼저 세상에서 보내고 아내를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읽은 [논어]를 새로 써서 아내의 영전에 바쳤다는 부분에서는 어찌나 마음이 울렁거리던지.

 

 

 

 

“나는 이제 오로지 내 가슴속에만 살아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서 들려주려고 해. 나는 이 이야기들의 마술에 도취되어 살았던 것도 같아.” P53

 

 

 

그녀가 마술에 도취되어 들려줬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간 나만 바라보며 살았던 삶의 마술에서 깨어 난 것 같다. 이제 나도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누군가를 만나 마술을 부리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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