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김형경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를 위하여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읽었을 때는 김형경이라는 작가를 알아 즐거웠었다. 하지만 [세월]를 통해 그녀의 소설이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잊고 있다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나왔을 때 겁이 났던 마음을 다 잡고 읽었다가 앞으로 그녀의 소설을 읽는 날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은비령]의 작가 순원은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자신의 얘기를 풀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내가 겪어온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녀의 몇몇 소설을 통해 수동적인 사랑으로 인한 그녀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 사랑의 불편한 감정을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그녀의 이름이 붙는 소설이나 에세이도 읽기 힘들었던 몇 년을 지나 [남자를 위하여]라는 책읽게 되었다. 조금 놀랐다. 그녀에게서 남자란, 그녀의 젊은 날을 아프게 했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 물론 이것은 내가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이긴 하다. 책을 읽기 전에 그녀의 전작 소설들의 힘들었던 경험을 지우는 것이 먼저였는데, 막상 읽고 나니 [남자를 위하여]를 통해 나는 작가 김형경이라는 사람을 다시 얻었다.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이제는 그녀가 자신의 아픈 과거로만 열거된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세상이 변하듯 나약하기만 해 보였던 그녀도 단단한 돌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김형경이 쓴 [남자를 위하여]는 그녀의 소개처럼 네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다. 남자의 관계 맺기, 남자의 열정 사용법, 남자의 위험한 감정, 남자의 삶과 변화란 구성으로 그간 그녀가 읽어온 많은 독서의 배경 지식이 담아져 있다. 오디세이부터 신간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남자들의 모습까지 예로 들고 있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여자가 모르는 남자의 얘기, 남자가 모르는 여자의 얘기를 다룬 책들은 그 동안 많이 나왔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남자와 여자가 미처 몰랐던, 혹은 오해하고 있었던 얘기들을 다루고 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작가가 쓴 [그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도 서로가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들을 재미있게 풀어 내고 있다. 우리 나라 책에서도 많겠지만 내가 읽은 김태훈의 책 [내일도 나를 사랑할건가요?]에서도 여자들이 몰랐던 남자들의 얘기가 나온다. 특히 여자들이 남자들에 대한 오해의 예들은 너무 적절하고 놀라웠다.한국적 정서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지구상의 남자들은 모두 다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도 들었다.  특히 편하게 밥만 먹고 만나는 여자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와는 손만 잡고 절대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를 위하여]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나온다. 시골로 내려온 어느 화가가 도움을 받았던 이장이 어느 날은 술에 취해 밤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있었다는 얘기를 통해 여자와 남자의 친절에도 다른 속뜻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생각하는 친절은 그냥 친절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남자의 친절에는 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이 꼭 남자, 여자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자의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이 책이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김형경의 얘기보다 나는 다른 부분에서 그녀에게 애정이 느껴졌다.

 

 

 

삼십대 내내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태도를 취할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상냥하고 온순하고 순종적이고 등등의 모습을 갖출 수 없었다. 차선택으로 내가 선택한 생존법은 가만히 있기였다. 문단 행사나 뒤풀이 자리에 가면 입에 지퍼를 닫고 구석 자리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느끼고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P78

 

 

그녀가 선택한 차선책, 가만히 있기를 지키기 위해 정말 가만히 앉아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안면근육을 찌그러트리며 웃으며 앉아 있다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자리에 한번쯤 앉아 봤다면 그 가만히 있기가 형벌 수준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자리를 버티며 그녀가 문단에서 가장 재미없는 여자 베스트 3위에 들었다니, 얼마나 많은 자리에 그러고 앉아 있었을까.

 

 

얼마 전, 단체 회식에 결혼하지 못한 혹은 안 한, 혼기 꽉 찬 대리를 시집을 보내자며 담당 팀장과 상무가 옆에 나란히 앉아 난리를 비웠다. 나와 같은 여자들은 그녀에게 결혼을 권하지 않는다. 결혼이 좋은 점도 있지만 결혼을 해보니 혼자인 그녀가 부러울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달랐다. 짝짓기를 하듯 꼭 누군가 옆에 붙어 있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열띤 토론을 보니, 내가 김형경이 된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를 하고 있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면 참 즐거운 세상인데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다 알고 나면 이제 세상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이제, 작가 김형경의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참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