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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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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질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 장정일 <보트 하우스> 중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소설속의 중인공이 가지고 싶던 그 뭉크 화질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나이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미술책에 소개된 뭉크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그의 그림이 소개된 화질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한동안 수능을 앞두고도 도서관을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의 불안한 그 모습에 불길하게만 뻗어나가는 내 청춘의 마침표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나는 뭉크의 화질을 가질 수 없었고 나의 우울했던 십대는 사라졌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뭉크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은 생각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림속에 표현된 불안과 절망이 나와 닮아 있을지 터무니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고흐의 그림보다 고흐의 일생 때문에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클림트의 황금빛 때문에 클림트의 일생이 궁금해졌었다. 마네와 모네의 차이를 알기위해 두 그림들을 비교 해가며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작가를 알게 되면 그림을 알게 되고, 그림을 알게 되면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으로 차츰 그림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고흐와 동생 태오의 편지가 수록된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흐의 지난 일생이 더 애잔했고 그의 말 때문에 용기도 얻기도 했다. 그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일인 것도 같다.

 

작년에 우연치 않게 아동도서 전시관에서 획득한 화가 전집이 있었는데 10권짜리 전집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생애를 살피는 것은 또 다른 역사공부가 되어서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1명의 화가의 얘기를 다 볼 수 있는 앙증맞은 책을 받아들고 살피면서 10권짜리 전집보다 더 알차게 준비되어 있는 짜임이 괜찮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101명의 화가라는 것에 101마리의 달마시안도 아니고 제목이 왜 이럴까 했는데 다소 아쉬운 101명의 선택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에곤 실레의 얘기가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워홀이나 후지타같은 작가들 빼면 서양미술사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괜찮은 역사책같은 느낌이다. 다만 궁금했던 몇몇이 빠져있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작가가 선별해 놓은 작가들중 사실 절반은 들어는 봤지만 대표작을 모르겠는 작가들도 많았는데 작가의 대표작을 표시해 놓은 부분에 간혹 그에 따른 그림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수고가 있었기는 했지만 그렇게 또 수고를 한번 하므로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두 페이지로 작가의 일대기를 모두 담아내는 것이 어찌 보면 작가의 욕심일 수 있지만 괜찮은 읽을거리인 듯하다.

 

가장 눈에 담아 두었던 두 화가가 있었다.

한명은 프리다 칼로다. 그녀의 얘기는 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과 그녀의 일대기에 이미 많이 알고는 있었는데 다시 그녀의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이 허전했다. 언젠가 읽은 책에 체코의 체 게바라가 프리다 칼로를 만났다면 근사한 예술가가 되었을 것 같다는 얘기에 수긍이 가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녀의 불운한 몸을 사랑해주며 더 오래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내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화가, 피카소. 나는 화가 중에 피카소를 제일 싫어했다. 이유는 참 간단하다. 보통의 화가들은 살아생전에 예술가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은 경우가 허다하고 혹은 인정을 받았다고 한들 모두 요절하였다. 고흐는 평생 그림 한편 팔아 본 것이 전부였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피카소는 살면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하며 살았던 화가였다. 그 이유가 내가 피카소가 싫었던 아주 간단한 허접한 이유였다. 그런데 그의 절친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의 그림이 바뀌게 된 것과 파리 생활이 그에게 화려하지만은 않았다는 것. 잠잘 수 있는 침대가 한 개라 친구와 밤낮을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에 천재였고, 너무도 쉽게 인정을 받은 화가라는 고정관념이 좀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80세에도 결혼을 하고 91세까지 살다간 정말 화려한 노후가 있었으니 젊은 시절의 고생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내게 이런 저런 고정관념을 조금 깨준 이 작고 귀여운 책은 아마도 오랫동안 책상 위에 머무를 것 같다. 다 읽고도 화가가 생각나면 다시 들쳐보게 되는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에곤 쉴레의 얘기가 빠진 것이 영 섭섭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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