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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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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제대로 읽었다면 오웰의 문학과 정치적 태도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문학과 예술을 정치와 한데 모아 버무리든 갈라놓든 상관없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는 장소성은 중요하다. 물론 책에서는 아토포스를 끄집어내고 있으나, 비장소성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그 비장소성이 가능한 공론장의 성격이 중요하다. 정말이지 아이러니한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온갖 고유명사가 난립하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입말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찾게 된다. 개개의 명사를 좋아하는 전문가나 평론가들이라면 모르나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친절함이 없는 글(문학, 예술)은 헛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보자면, 내가 보기엔 당분간은 정치적 사건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데려오기는 힘들다. 반대도 마찬가지(앞서 언급한 '당분간'은 '잠시'를 뜻하는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인즉슨 바로 장소성 때문이다. 이 도전은 광장을 광장 그대로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실패에 다가설 것이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누락되고 말 것이다. 물론 예술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러나 언제나 예술은 정치에 도전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며 정치는 그것을 쉬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에 제대로 된 장(場)이 개입되지 않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둘의 연애는 잘 이루어질 리 없는 거다. 실험 혹은 침입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는 이 논의가 더욱 더 활발해지기를 소원한다. 문학적이라고 한 번도 규정되지 않았던 공간에 틈입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꾸는 일. 하지만 그것은 진실로 가능한가? 정치는 없고 정치적인 것들만 가능한 장소에서 그와 어깨동무를 하는 일이? 그것이 가능하다손치더라도 입맞춤은 할 수 없을 터다. 정치에게 문학은 불온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미 불순물에 대한 예비를 마친 까닭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휘발성을 띠게 된다. 내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려는 장소성. 당연히 논의 자체에서 주의를 돌리고 싶지는 않다. 이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라 훗날을 도모하려는 것이므로. 문학이 정치에 파고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경계선을 넘을 수 있는가'와 같은 말이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지만 결코 그러지 않아서도 안 된다. 여기서는 어떤 정당성도 찾아볼 수 없다. 책은 문학과 정치의 허망한 관계를 입증하지 않고서 까발리고 깨부수려는 시도를 한다. 사회가 보수 일변일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어려운 과제다. 전자라면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후자라면 대중의 피로와 연계된다. 어쨌거나 조금만 편하게 접근하고 쉽게 풀어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책은 꽤 공들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굳이 독자된 입장에서 랑시에르를 풀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나 문학과 정치의 연애 혹은 공공의 미(美)라는 것을 심화시킬만한 증거로 삼을 수는 있겠다.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얘기해보고 싶다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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