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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평전 - 실존과 구원의 글쓰기 서강인문정신 16
이주동 지음 / 소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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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씀으로써,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을 텍스트의 서사 안으로 끌고 들어온 카프카였다. 그리고 남들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카프카 평전』을 집어 들었을 땐 '평전'이란 단어가 주는 시간과 압력에서였는지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카프카란 인물 자체도 꼭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에 미쳐 이 두꺼운 평전에 빠져들었다. 초인 혹은 거인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를 비롯해 사회와 세상이란 굴레 속에서 그를 존재하게 한 건 언제나 글쓰기였다.

 

 

불행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했다. 한밤중이다 (...) 불이 켜져 타오르는 램프, 조용한 집 안, 어두운 바깥, 깨어 있는 마지막 순간들, 그것은 나에게 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비록 가장 불행한 권리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권리를 서둘러 이용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자꾸만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처럼 극히 자연스런 귀결. 물론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윤리(도덕)적 문제로 간주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상상 속에서도 가능하기 쉽지 않은 부조리함을 활자화하면서 그것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통 또한 보여주었다 ㅡ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열린 해석'으로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변신」을 보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 말이다. 부조리한 데포르메의 충격이 주는 섬뜩함은 언제 읽어도 우리로 하여금 질겁하게 한다. 게다가 그와 함께 조직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들이 벌레로 변한 주인공보다도 낯설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러니까 당연히 당시 사회체제와 맞물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여기서 '함몰된 개인'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ㅡ 어찌 「변신」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하고 느껴지긴 하지만.

 

 

그는 1922년 (두 번째)유언장을 쓰는데 그 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되 자신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가 키르케고르의 책을 자주 반복해서 읽은 것은 그의 삶이 아버지와의 갈등, 약혼자와의 파혼, 여러 번의 졸도, 세속적이고 범속한 것에 대한 거부, 소외된 삶, 부족한 신앙심에서 오는 불안,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다가온 인간적인 절망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카프카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p.761). 후두결핵으로 죽기 전 카프카는 그를 따랐던 클롭슈토크에게 모르핀을 놓아달라고 소리쳤고, 그는 카프카의 분노에 마취제인 판토폰을 투여했다. 그러자 카프카는 이렇게 외쳤다. 「속이지 말게. 자네는 내게 해독제를 주고 있잖아! 나를 죽여주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살인자야.」 그리고 클롭슈토크가 주사기를 씻으로 침대에서 멀어져 가자 그는 떠나가지 말라고 했고, 클롭슈토크는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카프카는 내처 말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가네.」

 

 

「변신」 · 『소송』 등을 쓴 그가 죽었다는 것은 ㅡ 그의 글쓰기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가 그렇겠지만)이제 글로만 카프카를 만날 수 있는 나는 멀리 있는 그에게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했던 말로 찬사 아닌 찬사를 하려 한다. 「이리 좀 와 보세요! 그것이 뒈졌어요. 저기 누워서 완전히 뒈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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