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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스위스의 스펙트럼으로 한국을 쪼개보니 제목과도 같은 그들의 따뜻함과 코리안 패러독스의 그늘이 동시에 보인다. 그 중에서도 나와 같은 2, 30대가 가장 억울해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스위스 패러독스로 대변되는 대학진학과 취업에 관한 것이리라. 비교대상이 되는 건 사람이나 국가나 참 씁쓸한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역시 저자가 외치는 <따뜻한 경쟁>일까. 사실 어떤 시스템이든 경쟁이란 걸 피할 도리는 없으니, 한국식 무한 경쟁이 아닌 따뜻한 경쟁을 통해 공존의 틀을 조율할 줄 아는 법을 체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국은 전체의 성과를 엘리트가 독식하고 소위 인생의 성패라는 것이 타자에 의해 좌우되는 세계가 아니던가. 경쟁을 하기도 전에 나라는 인간이 판가름 난다면 맥 빠지고 허탈한 감정을 넘어서 화가 치밀 일이다. 나는 특히 이 『따뜻한 경쟁』을 읽으며 시민 참여, 시위, 소통의 이야기를 들을 때 『호모 레지스탕스』(해피스토리, 2011)라는 책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기본관이면서도 기본권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권(그 중에서도 파업을 할 수 있는 단체행동권)과 집회, 시위의 자유라 생각한다(『호모 레지스탕스』). 한국의 헌법 제21조는 집회에 대한 모든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하면 국가는 당연히 자신에 반대하는 집회에 대해 허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대 집시법 제10조는 또 어떤가. 일몰 후의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나. 그러니까 결국, 이미 있는 다른 규정에 의해 집회의 자유를 거의 전면적으로 제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간집회에 대해 또 다른 제한을 두는 건 과잉금지다. 그럼 여기서 스위스의 얘기를 해볼까. 스위스 최대 도시이자 유럽 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취리히에서는 2011년 9월 젊은이들이 주말 밤 거리에서 불법으로 파티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을 빚는 일이 잦았다. 9월 10일 밤에는 약 1000명의 젊은이들이 취리히 호수 주변의 광장에 모여 <상업적인 이벤트 대신 젊은이를 위한 자유 공간을 허용하라>며 노상 파티와 시위를 병행하다 경찰과 마찰을 일으켰고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쏘며 진압했다. 놀라운 것은 다음 일이다. 취리히 경찰이 신선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완벽한 밤 문화>를 위한 제안과 젊은이를 화나게 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접수하기로 한 것이다. 또 의견을 얘기해주면 적절한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단다 ― 실제로 성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심야 도심시위는 없어졌다고 한다. 어떤가. 앞서 말한, 정확히 말하자면 스위스와 한국을 비교하기 위해 예로 든 두 가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스위스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드는지 어떤지. 물론 나도 한국 사회가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따뜻한 경쟁』이 단순히 양국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독자들을 고뇌의 심연으로 빠뜨리려는 의도에서 집필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의 몇몇 장면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이미 흘러든 거대한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을 쏨과 동시에 그 전환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실천과 (따뜻한)경쟁이 필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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