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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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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성실함으로 중무장한 맹신자들. 굳이 러셀의 그것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호퍼의 아포리즘은 궁극의 그것이며 그의 출신과 뗄 수 없어서 더욱 밀도 높게 다가온다. 호퍼가 이 책에서 종교운동, 사회혁명운동, 민족 운동 등 여러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밝히고자 했다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심도 있게 '까발리는' 것이며 또 그렇게 귀결되고 있다. 그래서 호퍼는 죽었지만 그의 아포리즘은 죽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맹신자들' 역시 아직 존재하며 유효하다.

「우리의 열의가 증오심, 잔혹성, 야망, 탐욕, 비방하기 좋아하는 성향, 저항하는 성향을 촉진할 때 기적을 만들어낸다.」 ㅡ p.183 

『맹신자들』에 등장하는 여러 대중운동의 특성은 바로 '맹신'과 '광신'이란 단어와 조우하게 된다. 이따금씩 'ㅡ신자' 혹은 'ㅡ주의자'로 대변되는 그(우리)들 말이다. 최근 ㅡ 이랄 것도 없지만 ㅡ 행해진 선거 등에서 나타나듯 내가 한 표를 행사하면(이 대중운동에 참여하면) 내가 원하고 바랐던 삶이 일순 변할 것만 같은 전망(그들만의 희망)에 유혹되고 또 선동된다. 실제로 책에서는 '좌절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이 단어를 듣자마자 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바로 종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ㅡ 맹신자는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한) 열정과 맺어져 있다. 

「맹신자들의 눈에 숭고한 대의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줏대도 성질도 없는 사람, 말하자면 신념가의 봉이다. 반면에 서로 다른 경향의 맹신자들은 서로를 도덕적으로 경멸하며 언제든 상대의 급소를 공격할 태세이긴 하지만 상대의 강점을 인정하며 존중한다.」 ㅡ p.234 

분명 호퍼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고 비난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① 대중운동의 토대를 닦는 것은 지식인, ② 대중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③ 대중운동을 굳건히 다지는 것은 실천적인 행동가여야 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를테면 광신자 없이는 투쟁적 지식인들이 만들어놓은 불만이 방향을 잃고 무의미하게 발산되어 무질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쉽게 제압되고 말며, 그들 없이는 이미 시작된 개혁이 아주 극적으로 전개된다 해도 기존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체제에 변화가 생기더라도 보통 한 무리의 행동가에서 다른 무리로 권력이 이양되는 것 이상은 되지 못할 거라고 덧붙인다. 광신자 없이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없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p.208). 그러나 궁극적으로 『맹신자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행동 강령을 맹종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판단과 경험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기획하는 인간의 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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