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6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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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타니 고진의 대담집이다. 대담집이기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지만 일본의 현대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전공투가 무엇인지, 일본의 사회주의 노선이 어떻게 되는지, 68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1부는 읽기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인 것 같다.  

  몇년 전 한미 FTA협상 중에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뛰쳐나왔다. 촛불을 손에 들고 정부의 한미 FTA 협상안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유모차를 밀고 나온 어머니, 야자를 땡땡이 치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 등록금이 너무 과하다고 대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고 다시 할 것을 요구하는 일반 시민들을 빨갱이의 사주를 받아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는 불순분자로 몰아붙이면서 떼를쓰는 떼쟁이라고 비하했다. 천민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뻘소리를 해대시는 쭈모의원을 바라보면서 정치인들의 밑바닥을 보면서 좌절했었다. 비난 나뿐만 아닐 것이다. 알라딘에서 놀고 계시는 알라디너들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좌절감에 열심히 읽기 시작했던 책이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행동"이다. 아직도 다 읽지 못해서 뭐라 말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책도 직접행동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가 필요하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발칙한 빨갱이적 사고이다. 그렇지만 직접 실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기득권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확고불변한 진리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하여 이렇게 고찰한다. 

  내가 말하는 반복은 구조적인 것입니다. 자본주의에는 반복적인 구조가 있습니다. 경기순환이 그렇습니다. 공황, 불황, 호황, 공황 -. 왜 이런 순환이 존재하느냐 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발전하면서 공황과 불황을 통해 폭력적인 도태와 정리를 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반복은 반복강박적인 것입니다.(117p)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주인이 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자본의 지속 가능을 위해서라면 다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는 체제이다. 이런 체제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미묘하게 결합된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체제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특성을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나는 평등과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자유 경쟁과 사유 재산 보호를, 민주주의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분배와 평등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하는 서구에서도 경쟁과 분배라는 두 가지 가치관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자본주의, 시장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등 모든 정치체제는 두 가치관 사이에서 중심을 어느 정도에서 잡는가에 따라 그 형태와 추구하는 점이 달라진다. 쉽게 말해 좌냐 우냐가 여기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 부분을 분명히 깨닫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가치관에서 좀더 좌측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좌측으로 옮기는 동력은 데모이다. 

  고진은 일본에 데모가 없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너무나 빠른 시기에 정체가 바뀌어 시민이 시민계급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국가에 흡수되어 네이션이라는 모습을 갖춘 것이 일본에서 데모가 없어진 이유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몰락을 전공투보더 더 앞에 있었던 1960년에서 찾고 있다. 안보세대든, 전공투 세대든, 이유가 어디에 있든 간에 시민의 직접행동을 막은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 고진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고진이 주목한 것은 단독자이다. 고진의 단독자 개념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존재가 아니다. 고진은 단독자를 이렇게 규정한다. 

  단독자란 홀로 있는 개인도 아니며 원자적인 상태의 개인도 아닌, 타인과 연대가 가능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다.(150p) 

  데모란 무엇인가? 데모란 단순하게 국가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데모란 단독자가 원자적 상태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다른 단독자와 연대하는 것이다. 단독자의 연대는 민의를 만들어 내고 사회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모가 없는 사회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만인의 만인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살벌한 공간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닌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친구나 동료라는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력 투구하는 진흙밭이 우리 사회이며, 우리 교육의 현주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나선 것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민주주의는 데모가 필요하다. 우리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이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ps.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데모 없는 모습을 비판하면서 한국의 4.19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민주화 운동을 지적한다. 일본의 지식인의 부러움을 사는 그 모습이 정작 한국에서는 빨갱이들의 선동을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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