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기생충 - 엽기의학탐정소설
서민 지음 / 청년의사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마태우스님의 서재엘 들어갔다가, 무슨 생각이 발동했는지, 나는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고 리플을 단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리플에 설마 응답을 할까 반신반의 했었다. 왜냐하면, 정말 용기를 내서 어떤 개기를 만들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를 직접들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이 현재 고정 출연하고 있는 모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면서, 한번 들어보라는 리플을 달아 주셨다. 앗!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그 방송 프로그램의 저명한 인사라고 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느 방송인지는 몰라도.

그때 난 정말 그 프로그램을 기쁜 마음으로 들어었다. 그리고 외모와 달리 그의 풋풋한 목소리에, 도무지 기생충이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평소 그의 글은 얼마나 귀엽고, 능청스러우며, 종횡무진, 최첨단을 달리던가. 그런데 의외로 목소리는 풋풋하고 차분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내용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어떤 게 진실을 말하고 있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잘 가려 들어야 한다.

오늘도, 우리가 비타민 C를 너무 많이 먹어 한강에 뛰놀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위기에 놓여있다며,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그럴 듯한 가설을 내놓던지. 이글을 읽는 사람 중 그 방송을 못 들은 사람은, 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본인한테 그 대답을 직접 듣길 바란다.

이처럼 그의 책도 횡당하기 그지없는 상상의 나래를 마구 마구 쏟아낸다.  도무지 저자의 상상의 끝은 어딜까? 배를 부여잡으리만치 웃으며 그 책을 읽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오늘 날 <대통령과 기생충>을 읽으며 이토록 좋아라 할 줄은!

정말 제목부터 너무 언밸런스해, 나 같이 고상한 책만 좋아하는 사람은 두 팔 끝을 다 벌려, 당장 읽고 싶은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을 한아름 안는다 해도, 이 책은 순위에 포함되지 않을 성 싶은 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슴에 포~옥 끌어안고 함박 웃음 지어주고 싶은 건, 저자의 친필 사인에 말그림을 그려 준 탓도 조금은 있으리라.

내가 기생충에 관한 책을 읽고 이토록이나 좋아라하면, 이 책을 모르는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감염력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엽기, 발랄함을 이용해서 그토록이나 재밌게 전해 줄 수 있을까? 아마 저자와 같은 의학도가 이 책을 읽은 거보다, 일반 대중이 더 많이 읽지 않았을까란 추측을 해 본다. 그만큼 이 책은 감염력이 있다는 말이다.

퓨전이 좋은 것은, 너무 한우물만 파려는 전문가적 성향 때문에 자칫 시야가 좁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일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언급한 바있지만, 기생충 감염 사실을 모르고 무려 1년 동안 설사를 하며 가산을 탕진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를 담당했던 의사가 기생충에 관해 조금만 상식이 있었더라도 과연 그렇게 허무하게 가산을 탕진했을까? 그 많은 의사들 중, 이 책을 읽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아, 그때 내가,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책을 읽어보니까 말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실력있는 의사라고 칭찬 받았을텐데... 

한 사람이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 최고가 되는 건 좋지만,  크게 놓고 볼 때 그 사람은 그 분야만 아는 거지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인간의 앎이란 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편벽된 존재다. 아무리 독서광이어도 편식을 한다지 않는가. 

저자가 아무리 기생충학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역설한다해도, 학적인 지식으로만, 시각적 효과에만 의존에서 징그러운 기생충들을 도판으로 보여줬더라면, 이 책은 정말 이만큼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끌여들여 거기에 기생충들의 향연을 펼쳐 보일 수 있었을까? 게다가 현세태를 꼬집고, 비꼬는 저자의 이야기 솜씨란 기히 상상을 불허한다.

나는 왜, 이 책의 제목이 <대통령과 기생충>일까 궁금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쳅터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겨가며, 저자의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히 압권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학이 의학분야에서 얼마나 대접을 받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기생충이 아직도 있냐고 반문하는 이 시대에, 정말 인간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음에도 그 분야는 너무도 그늘져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도 보건데, 어느 한 분야가 발전하려면 최고 권력자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난 정말 대통령이 기생충에 걸려서라도 이 분야가 발전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의학분야 중, 항문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나,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 분야를 택하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산부인과는 인기과목이라고는 하지만, 아기를 받을 때의 신비감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여자들의 자궁이나 들여다 보는 그것이 과연 좋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분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날 생명을 연장하며 잘 살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 같이 우매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저자는 자기식의 대답을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기생충에 걸려 죽은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 교통 사고를 당해 죽는 사람이 해마다 1만 명인데 그렇다고 네가 차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 않는냐, 기생충 보다는 뱀이나 지렁이, 지네 따위가 더 징그럽지 않는냐, 외모가 처진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내 서재 대문에 걸린 글 귀가, '그럴 법한 인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책을 애독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겠는데, 저자는, 저자가 말한 저 의도를 설득하는데 또 한 사람을 성공시켰다고 일러주고 싶다.

나를 아는 사람이, "너는 왜 그런 기생충에 관한 책을 읽고 실실거리고 웃느냐?"고 묻는다면 두말 않고, 한번 읽어 보라고고 그의 코 앞에 내밀어 주고 싶다.

그만치 이 책은 잘 쓴 책이고, 동시에 재미있는 책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nda78 2004-07-2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태님이 보시면 참 기뻐하시겠네요. ^^
요즘 스텔라님과 마태님 사이가 심상치가 않아요-

stella.K 2004-07-20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은 게 안 떠올라서 좀 그래요.^^

갈대 2004-07-2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이 필독서를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마태님이 리뷰 보시면 좋아히시겠네요^^

메시지 2004-07-2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저녁에 다 읽었습니다. 리뷰쓰려고 했더니 이렇게 스텔라님께서.... 추천
대단한 발상과 엄청난 재미, 그리고 기생충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stella.K 2004-07-2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메시지님, 어서 리뷰 쓰시지요. 그리고 추천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04-07-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좋은 리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제 방송 들으셨군요! 둘다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커서 꼭 님께 은혜를 갚겠습니다.

stella.K 2004-07-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더 이상 클 때가 어딨다고? 여기서 더 크면 늙습니다.^^
글구 부끄럽단 말 이제 하지 마셨으면 해요. 제가 마태님한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럼 다음에 마태님한테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연극이 뭐예요?
김성진 지음 / 북갤럽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나도 얼떨결에 교회에서부터 연극이란 걸 하게 됐지만,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가면 갈수록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본래 연극과 출신도 아니고, 단지 글쓰는 거 하나에 관심을 갖다 매어버린 일. 이젠 벗어나기도 뭐하고 매달리기에도 어정쩡하다.

그러던 중, 운이 좋아 이 책의 저자와 만날 수 있었고, 남자 쳐놓고 자그마하고 다부진 그는 한번도 연극을 택한 것을 후회 안하고 정말 미쳐서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 역시도 연극에 갈등한다는 알았을 때, 아, 그도 역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세상에 연극에 관한 무수히 많은 책들 특별히 개론서에 관한 책들이 많은데 굳이 자기도 그런 책을 써야할까란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연극의 길로 이끌어 줬던 저자의 옛 애인과 이메일을 주고 받게되고, 그 애인의 13살 난 딸에게 연극을 가르쳐 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드라마란 무엇인가? 구성이란? 인물은? 대사란 무엇이고, 연출가와 배우란 무엇인가 등등을 조목 조목 삼촌이 조카에게 설명해 주듯 들려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민(저자 옛 애인의 딸)은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아마도 저자는 13살, 즉 청소년 그 나이 또래에 맞는 연극에 관한 책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면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던가. 그만큼 쉽게 쓸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고 실제로 연극 실기엔 어느 정도 경험은 많으나 멋모르고 뛰어든 나 같은 비전공자에게 상당히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 또한 애초부터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민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끄집어 낸다. 그 중의 한 대목을 보면,

...바로 이 '본다'는 것의 결여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생사를 걸고 가르치는 태반이 '읽다'와 '쓰다'일 수 밖에요.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이성적인 교육에 해당하는 것이죠. '본다', '듣는다', '만진다'와 같은 감성 교육 또한 이성 못지 않게 인간을 바르게 성장시키는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등한시하고 있죠.

맞는 얘기다. 교육이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도 안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성적이고 주입식에 지나치게 경도되어있다. 만일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음미하게 하고 연극을 배우게 한다면 이 아이의 감성이 얼마나 풍부해질 것이며 학교가 얼마나 부드럽고 신나는 것이 될 것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연극'은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조차 있을까? 물어 볼 정도다.

내가 또 눈여겨 본 것은 저자가 말미쯤에 가서 다루어 놓은 '배우'에 관한 부분이다. 나는 연극을 하면서 배우에 대해 그렇게 크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냥 배우는 작품 전체를 빛나게 해 주는 장식이라는 개념 정도였다. 연극은 당연 종합 예술로서 여러 많은 분야가 합친 것이니까 배우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라만큼(물론 이 말은 저자가 직접한 얘기는 아니다. 인용했을 것이다.) 비중있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나는 정말 연극 전공자도 만나고 정말 왕초보 군단도 만났는데, 그들이 하나 같이 '배우'에 대해 진지한 인상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왕초보 군단은 차치하고라도, 연극 전공자들은 기술적으론 나름대로 기량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느낌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아직 그것 이상의 사람을 못 만난 것일게다. 즉 다시 말하면 내가 만난 배우들은 어느 일정 수준에 서면 그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어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야에 눈을 떠서일까? 요즘 배우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 배우가 그 연극적 상황에서 그 대사를 재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에 의문을 가져본다. 전에는 작가가 연극에서 비중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성 싶다.

내가 왜 연극 개론서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와 저자의 옛 애인 그리고 그 애인의 딸에 관한 이야기가 연극을 풀어가는데 있어서 당의정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뒤로 가면 갈수록 저자의 이야기가 아릿하게 가슴에 와 밖힌다. 나는 오늘 저자에게 이메일이라도 써야 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시지 2004-07-0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론서를 여러권 읽은지라 또 개론서를 읽는 일이 조금은 고민이 되어서 보관함에 담아만 두고 있는 책이네요. 새로운 형식이라는 점에서 읽어지고 싶네요.

stella.K 2004-07-0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책은 우수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네요.^^

메시지 2004-07-02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읽고 싶어지네요.^^*

stella.K 2004-07-0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개인적으론 개론서를 이미 읽으셨다면 굳이 권해드리고 싶진 않네요. 그 당의정이란 부분이 끌리긴 하지만...그런데 만약에 메시지님의 아드님이 어느 날, "아빠, 연극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그때를 대비해서 읽어 두시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이 책 보다 더 재밌고 입체적인 개론서를 메시지님이 쓰시는 겁니다. 어때요, 제 생각? ^^
 
갈대상자 - 하나님의 산 역사 갈대상자
김영애 지음 / 두란노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대학 하나가 세워지고 그것을 운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 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물론 적지않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쯤이야 가늠하기 어려운 건 아니겠지만, 그것 때문에 대학의 총장이 취임 때부터 그토록이나 시달림을 받게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표현이 좀 진부하긴 하지만) 김영길 박사가 명예와 어찌보면 노후까지도 보장된 좋은 길(카이스트 교수의 길)을 버리고, 한동대학 초대 총장이 되면서의 대학의 재대로된 모습을 갖추기까지(외형적으로나 실력으로나) 파란 많은 과정을 그의 아내 김영애씨가 쓴 책이다.
  사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누시울이 느꺼워지고, 울지 않을려고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마음이 아파서, 때로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사실, 가장 어렵고 힘든 직업을 얘기할 때 보통 ‘3D업종’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마도 어느 때부턴가 이 3D업종에 ‘대학 총장’도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총장이란 직함이 명예롭긴 하지만 꽤나 힘든 일인가 보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나중에 김영길 총장은 이 돈 때문에 교도소에까지 부총장과 함께 들어가게 된다. 
  나는 그들의 고난도 눈물겹지만, 그러면서도 저자가 전하여주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가지만 적어보자면, 한동대는 무감독 시험으로도 유명한 대학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을 길러내고자 하는 대학 이념을 반영한 것으로서, 실제로 내가 주일학교 교사시절 내가 가르치던 몇몇 학생이 그 학교를 들어갔는데 그들은 그 점에 적지 않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곳 학생들이 감동이었다. 몇부분만 소개를 해 보면,
어느 날 대학내 물과 전기를 내보내는 시설이 갑자기 고장이 났단다. 그로인해 모든 것이 마비가 되고 며칠을 학생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 보다, 물이 안 나와 학교는 화장실 조차 쓸 수가 없었는데 이대로 뒀다간 전염병이 돌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것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이를 대처해 나갔고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기계제어학과 학생들은 몇 개의 조를 짜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점검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태어나서 한번도 학교를 사랑해 본적이 없는 나로선 그들이 학교에 대한 애교심(愛校心)이 부러울 따름이다.
  또, 지금도 온누리 교회를 가면 ‘한동홀’이란 곳이 있는데, 그다지 화려하거나 멋드러진 곳은 아니다. 그냥 온누리 교회와 한동대학과 관련히 깊어서 그렇게 지었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는 중에 그 대학 학생 중에 두명이 피지에 선교를 갔다가 사고로 아까운 목숨을 잃고 그것을 기념해 지은 거라고 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국엔 김영길 총장과 부총장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때 마침 스승의 날을 맞았다고 한다. 그때 학생들이 경찰에 자진해서 집회신고를 하고 총장과 부총장이 있는 교도소로 가 그들을 위로했다고 했을 때, 읽는 나로서도 정말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 적고 읽어보면 어찌보면 뭐가 감동이었을까 싶기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 학생들이 보여준 감동의 에피소드들과 총장과 저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어떠한 포퍼먼스 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이 책은 글 자체로 보았을 땐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연구 성과가 담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별 다섯 개를 주는 건, 인간이 고귀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결코 별점으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줄 수 밖에 없는 건 별을 주지 않으면 리뷰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4-06-30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대, 전 실험을 아주 잘하는 대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이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별을 주지 않으면 리뷰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님의 말씀에서 웃었어요. 잔잔한 미소!

stella.K 2004-06-3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2004-07-06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4-07-06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야기는 건립 초기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다룬 것 같고, 본인이 직접 격고 체험한 것과 보고 들은 것의 차이는 항상 있을 수 있죠.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저자가 격은 일들을 격하시킬 수는 없지 않을까요? 본인은 본인이 더 잘 아는 거니까.
그렇다면 기도해야죠. 우주님도 교회 다니시니까.^^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탐 크라우터 지음, 이종환 옮김 / 예수전도단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예배를 드리는데, '내가 과연 예배를 재대로 드리고 있는 것일까?'란 물음에 사로잡히고 그래서 그 예배 후 거의 충동처럼 교회 구내서점에서 사 버린 책이다.

오늘 날의 예배는 그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다. 예배 중에 뭔가가(그것이 설교든, 찬양이든 아니면 다른 특별한 순서든) 나를 사로잡지 않으면 도저히 내 뜻과 의지로는 집중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예배를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배가 어떠니 저떠니 불평하고 비판하는 게 보편화 되버린 세대해서, 한번쯤 나의 예배 자세는 어떠한가를 점검해 보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듯 싶다.

그러나 이 책은 평신도를 위해 썼다기 보단, 끊임없이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액면 그대로 보면, 저자가 음악 목사라는 점에서 찬양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만한)을 위해 썼기 때문에 얼핏 예배를 드리기만 하는 사람에겐 어필이 잘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은 매우 평이하게 써졌기 때문에 그냥 누구나가 가벼운 마음 읽고 생각하고, 점검해 보기에 그리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사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배가 진정한 의미에서 과연 '드리는 것'일까? 우린 너무나 흔하게 일상어처럼 '예배를 봤냐'고 한다. 교회가 무슨 콘서트 공연장에 가는 것도 아니고, 예배가 공연자의 포퍼먼스를 보는 것도 아닐진데, 우린 어느센가 보는 개념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는 주일에 한번만 드리는 것이 아니며, 매번 매순간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본을 보였던 사람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의 로렌스 형제였다. 그는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는 주님을 생각하므로 늘 예배 드리는 삶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사실 예배를 그냥 '보기만'하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배를 능동적으로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찬양, 연주, 안내 등등으로. 그런 사람은 낮아진 마음을 갖기가 참 어렵다.  특히 리더의 입장에 서면 일은 더 심각해 진다. 자꾸만 시야가 좁아지고, 권위를 앞세우려고 하며, 사람을 쉽게 비판하거나 정죄하기 쉽다. 그 점에 있어서 이 책에서는 다윗의 예를 들으면서 도전한다.

다윗은 그가 섬기던 왕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번씩 주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그 왕위를 찬탈해도 오히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위치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께서 기름부은 자를 자신이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사울을 드대로 죽였다면 또 다른 피의 역사는 계속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리더를 보는 눈은 늘 곱지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됐던, 한 학급의 반장이 됐건, 교회 청년회 회장이 됐건 간에 말이다.

나도 어느틈엔가 그런 시야를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확히 내가 교회에서 나름대로 독보적인 일을 맡기 시작하면서 였다. 난 이 책에서 그 부분을 읽었을 때(이 책 말미에 나온다) 나는 예배를 섬기는 자였지만 진정으로 드리는 사람은 못되었다는 걸 절감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아픔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면, 같이하는 사람이 어떤 류의 사람인가를 빨리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성경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말한다. 결국 나는 예배에 그리 성공한 사람은 못됐던 것 같다. 

예배를 섬긴다는 것은 예배 시간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완벽히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 그 분의 임재와 은혜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예배학에 관한 개론서 같은 것은 아니다. 그냥 예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도록 독려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같이  '과연 내가 예배를 재대로 드리고 있는 것일까?'를 점검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 한번쯤 권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질그릇에도 - 설우특선 2
미우라 아야꼬 지음 / 설우사 / 197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인 미우라 아야꼬는 크리스챤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수필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 게으름뱅이에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하고도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그러니까. 

하지만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으면 '호기심 천국'을 보는 것 같다. 집 지을 땅을 구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내고,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지을 때까지 잠시 목사관에서 지내던 일,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이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것이 마치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느 엉뚱한 과학자의 실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그런 것에 특별한 어려움 없어 보인다. 질투나리만큼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남편 미우라와 결혼해서의 일상의 모습과 그에 대한 단상들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가끔, 남들이 흔히 말하는 그 '혼기(婚期)'에 적당한 짝을 만나 남들 사는 것만큼 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또 남들 사는 것만큼 사는 것도, 다 그렇고 그건 틀에 박힌 삶이 아닐까?

그러나 어찌보면 필자는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고방식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사상이 심오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을 얻었고, 긴 투병생활 끝에 서른 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그것도 2살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했다. 더구나 남자는 그녀의 병이 낫기까지 무려 5년을 기다렸다 결혼을 했다. 그러니 이 어찌 결혼 후의 삶이 평범한 이들의 삶과 같을 수 있을까? 건강을 잃어 본 사람만이 건강을 되찾은 후에 그 삶이 소중하듯, 그녀의 삶은 애틋하고 애정 가득한 삶이었으리라.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란 어떻겠는가? 그녀의 복이라는 건, 부자가 되어서 명예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임을 하루 하루 실감하며 사는 삶인 것이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나도 이 질문에 오래도록 답을 달지 못했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으로써 이 질문에 답을 달기는 더 막막하다. 또한 실제로 우리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주위의 결혼했다는 아는 친구들, 친지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은 나에게 결혼에 대한 이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결혼의  실상을 다룬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봐도 다 고만 고만하다. 결혼에 대해 다룰 것이 이것 밖에 없을까?

얼마 전 뉴스 보도에 따르면, 카드빚을 청산하기 위해 결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고 한다. 공급이 있으면 수효가 있다고, 실제로 상대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그 액수가 크지 않고 조건만 웬만치 맞으면 선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이 만약 결혼을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나라가 경제적으로 이상징후를 보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이 가정인 것 같다. 지난 IMF 이후 얼마나 많은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많이했던가? 이렇게 돈 때문에 결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달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성(性)'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일간지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어느 처녀 비뇨기과 의사의 '성 칼럼'을 실어었다. 그것이 얼마나 적나라했던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꼭 부부관계에 있어서 꼭 저렇게 해야하나 거부감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다행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그 칼럼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있다. 부부관계의 문제를 지나치게 성으로만 규정하고 몰아가는 세태가 문제라고. 부부관계란 동물처럼 교미의 관계로만 파악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부부문제가 이토록 해결이 안되고 불륜이 여전히 난무한단 말인가?

흔히들 결혼은 홀로있는 것이 두려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고독의 문제를 피해 갈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음미해 보라. '고독이 두렵거든 결혼하지 말아라.' 체홉의 말이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나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의 사랑하고자 하는 또는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를 무참히 짓밟는다면 그 얼마나 이기적인가.

남들이 말하는 그 '때가되면 인연도 만나지게 된다'는 그 운명론 같은 '만남'도 어떤 사람에겐 더디 오기만 하고, 어떤 사람에겐 아예 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우라 아야꼬는, "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대개는 일생의 초년기가 아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의 바탕이 정해졌을 때, 그런 삶의 방식에 동조하는 상대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나의 삶의 뿌리가 단단해지고 준비되지 않으면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일게다.

결혼을 안 해 본 사람은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그 조건이 인간 외적인 경우가 종종 많이 있다. 상대의 학력은 어떻고, 뭐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연봉은 얼마며, 성격은 어때야 하느니...하는 것들. 설사 그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면 그것으로 다 인가? 그러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은 그것 대로 꿈꾼다.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되고 불완전한 존재인가? 그리고 그런 사람 내편으로 만들기가 관심을 끈다. 사람은 그렇게 유치한 존재가 아니다. 결혼은 결혼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도우며, 배우며, 성숙으로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친구로부터 결혼생활의 어려움, 부조리한 하소연들을 많이 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들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말에 놀라고,  속으로 '어머, 그렇게 어려운 결혼을 왜 하는 거지?' 의문을 품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결혼 안 했을 때 보다 결혼하고나서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하거니와, 하나님은 결혼을 가리켜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결혼 얘기는 많이 들어서 이론적으론 많이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해 보지도 않은 결혼을 뭐라고 판단하는 건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나도 결혼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은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만큼 상대가 원하는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결국 미우라 아야꼬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혼했던 것처럼(그녀는 나이도 먾고, 몸도 약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기독교에선 '은혜'라고 하는데,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그 비밀이 얼마나 귀하고 클까?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설박사 2004-05-25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번에 제가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깜박했습니다.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은 별로 안해봤습니다. 나름대로 생각만 조금 해봤구요. 결혼하면 어떤 면에서는 삶이 좀 더 복잡해지고 피곤해지는게 사실인 듯 합니다. 아직 결론내리기에는 이르지만요.. 사랑이라는 마약을 맞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stella.K 2004-05-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은 그럴지 몰라도 인류애에 많은 공헌을 하는 것 같아요. 결혼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을 비교해 볼 때, 물론 꼭 그렇지는 않아도 대체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마음 씀씀이가 좀 다르더라구요. 좀 넓다고나 할까? 전, 지구상에서 <결혼>과 <가정>이란 말이 사라지거나 파괴됐을 때 가져 올 인류의 엄청난 파탄을 상상해 보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설박사님을 비롯한 가정을 건재하게 이끌어 가시는 분들, 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Hanna 2004-05-25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삶의 바탕이 단단해진 후에 그 삶에 동조해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말, 너무 멋지네요. 정말, 그런것 같아요! 그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사회의 어떤 편견에도 흔들리지 말고, 차근차근 내 삶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저도 합니다. 삶에 정답이란 없잖아요!

stella.K 2004-05-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브리즈 2004-05-2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다가 보면, "혼자"가 어려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혼자"가 "같이"보다 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가끔씩 드는 생각은 고독도 친구, 행복도 친구라는 평범한 진리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 허영이랄까 욕심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같아요..

stella.K 2004-05-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옴표 안의 말에 브리즈님 말씀이 함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혼자 있는 고독도 벗하고, 혼자 있는 편안함도 벗하며, 같이 있는 즐거움도 벗하고, 같이 있는 불편함도 벗하며 사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이를테면 중용의 도. 뭐 그런 거 아닐까 합니다. ㅎㅎ.

카를 2004-06-0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독신도 결혼도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을 꼭 해야한다는건 어쩌면 우리 자신의 집착인지도 모르죠....어느날 제가 [원하시면 독신의 은사라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지금의 배우자가 나타났다면 믿으시겠어요?

stella.K 2004-06-0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카를님, 정말 신실하시군요!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셨을 때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셨다면 독신의 은사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떻게 배우자를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 자신을 생각해 보면 전, 독신의 은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도 그렇게 말하구요. 단지 전 결혼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용기도 없이 어정쩡한 독신을 유지해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독신보다 결혼하는 것이 몇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언듯 드네요. 이것도 위에 계신 분이 정하신 뜻이라면 순명으로 받아 들이고 그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가능하다면 카를님과 이런 얘기 더 나누고 싶은데 어렵겠지요. 제가 아는 카를님은 필요 이상의 말씀은 안 하시는 분 같아요.

카를 2004-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더 많이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고, 독신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이겠지요.

stella.K 2004-06-0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요. 독신하는 사람은 실상 자기 밖에 모르고, 결혼한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안다구요. 이를테면 부모된 마음도 알고 자녀 사랑하는 마음도 알고. 하지만 결혼한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우는, 자기 자녀만 아는 거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래요. 결혼을 하든, 독신을 하든 그 모든 것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면 카를님 말씀처럼 섬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확장에 이르는 것이 될거구요.
전 자꾸만 위에 계신 분을 축소시키고 나에게 맞게 제단하려고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네요.

2021-04-13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