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실력은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어휘도, 문법도, 발음도 한참 부족하지만 나의 피드백은 나 ‘이길보라‘만이 줄 수 있었다. 아시아, 한국에서 자라 작업 경험을 쌓아온 나만이 줄 수 있는 의견과 코멘트. 그것이 유용한지 아닌지는상대방이 결정할 몫이었다. 물론 나의 의견이 토론을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 역시 고민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죠. 그런데 꼭 습관을 버리고 뜯어고쳐야만 할까요? 훌륭한 습관이 있다면 그걸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자신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과 방법론에는 분명히 장점이존재해요. 그걸 취해서 관점을 바꿔 다르게 접근하면 또다른 방법론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방법론을그냥 버리려고 하는 거죠?"
그는 내가 해온 이전 작업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나는 그작업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미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건 ‘성과물‘과 ‘결과물‘이 되어 마침표를 찍은 거라고,
그러니 새로운 프로젝트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교수는 예술적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했다. 당신이 제일 관심 있는 건 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걸 어떤고민으로부터 시작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었는지에 대한과정이라고 말이다.
나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들여다보기. 그는 어쩌면 그 주제가 나에게는 ‘침묵‘일 수 있다고 했다.

영과 관련한 홍보 글을 올려야 하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희생자 및 생존자 유가족들을 비롯해 모든 국민들이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영화 만들었다고, 영화관에서 상영하니 보러 오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이야기 역시 중요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장애 문제 역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월호 참사 사건과 관련하여 어떤 일도 하지 못했다는생각은 역시 나를 괴롭게했다. 광화문 부근에서 일이 생길 때면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탔다.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추모 부스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국가가 구하지 못한 혹은 구하지 않은이들을 위해 슬픔과 아픔을 딛고 그곳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농성과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국가‘란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곳에 갈 용기조차 쉽게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럽고 죄송했다.
몇 달 후 내게 그곳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계속해서 제작해야할 이유가 생긴 장소가 되었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1960년대 미국의 동맹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을 다룬다. 한국은 이 전쟁을 통해 막대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 학살 사건들이 존

재한다.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오빠와 단둘이 살아남았던 응우옌티 탄은 그때의 기억을 증언하고 한국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 영화는 그의 용기 있는 여정을 좇으며 학살을 둘러싼 이들의서로 다른 기억과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게 전쟁은 50년의 세월을지나, 기억의 전쟁이 된다.

"이 영화는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전쟁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세계의 모든 인간들은 계속다른 형태의 ‘전쟁‘을 일으키고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죠. 그럼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그 질문이 안 보여요. 그러나 희망은 이 영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후 내가 한국에서 습득한 몸의 동작들을 돌아보았다. 늘 주변을 신경쓸 것, 겉모습을 단정히 할 것, 다리를 벌리지 않고 앉을것,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 화장할 것, 치마를 입을 것,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할 것, 성별에 맞게 행동할 것. 이른바 정상성의몸 되기. 내 몸이 체화하고 있는 동작들은 결국 시스템을 유지할수 있는 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나 혹은 우리의 몸은 그걸

지속하며 이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묻어야만 했던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건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었고,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었다. 나는 나와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소재로 영화를 통해 우리 몸의 기억을 드러내기로 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촬영을 하러 한국에 갔다. 스튜디오에 엄마와 할머니를 불러 인터뷰를 했다.
꼭 하고 싶은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감독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딸이자 손녀로서는 하고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박정희 정권 때는 실제로 인구 조절을 하기 위해 낙태 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당시에는 쉬쉬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엄마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나는 그럼에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나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했다. 할머니는 놀랐고 엄마는 듣고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질문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여성들이고 나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할머니의 몸으로부터 나왔는데왜 우리는 각자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지. 여태껏 발화되지 않고 몸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들은 이상적인 몸을 갖추기를요구하는 국가·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터뷰 영상

연결되었다. ‘몸‘의 서사를 통해 국적과 문화를 뛰어넘어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의 몸은 나와 엄마, 할머니의 기억에서 출발해 개인의 몸을 통제해온 한국 사회의 역사, 더 나아가 제1세계가 제3세계 국민의 신체를 어떻게 통제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작업은 기존의 관념과 통속을 벗어나야 하기에,
한국과 네덜란드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프로덕션을 꾸리고 있다. 내후년 정도에는 <우리의 몸이 또다른 ‘우리의 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통해 나와 엄마의 몸, 할머니의 몸,
우리의 몸에 대한 여정을 계속 해나가면서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해 질문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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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금속 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이건 내가 최근에 만든 아포리즘인데, 나 자신도 이 문장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인간도‘의 ‘도‘에 대해서 설명하기가어렵다. ‘인간은‘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일률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꼴이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일도양단해서는 안 된다.

‘금속피로‘는 예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말인데, 지금은 사전에제대로 실려 있다. 사전에 의하면, "진동의 반복으로 인한 금속의열화 현상으로, 표면에 난 흠집이 진동의 증가로 약해져서 결국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친절하고 공손한 설명이다.
나 같은 사람이 금속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것 혹은 금강불괴 같은 말이다. 그런데 금속에도 흠집이 날 수 있고 균열이 커지면 끝내 파괴될 수도 있다니.
인간도 긴 세월 살다 보면 온갖 고난과 고생이 켜켜이 쌓인다.
몸이 상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건지 마음이 상해서 몸이 약해지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말하자면 ‘열화 현상‘이다.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다는 의미다. 어린 시절 분별없이 치솟았던콧대가낮아지기 시작한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그러다 보면 어미에 ‘・・・・‘ 혹은 ‘?‘가 붙는다.
또 섣불리 단언하거나 확언하지 않는다.
하물며 호언장담 따위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허풍 떨며 큰소리치다니,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싶다.

옛날에는 사리분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럴듯하게 꾸며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인간을 보면 배알이 뒤틀렸고 철저하게 따져물어서 흑이냐 백이나 결착을 지어 찍소리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적당히, 정도껏 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속으로는 ‘거짓말 하지 마‘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적당히 상대해 주지 뭐.
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저 인간의 실체를 까발리겠다는 되바라진 행동은 하지 않는다.
‘모나면 정 맞게 돼 있다고 하잖아.‘
라며 앞날이 읽히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다.
금속피로는 열화 현상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앞날이 읽힌다‘는장점도 가져온다.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이 어느 정도 식견을 넓혀준다.
그 식견이 무엇인가 하면 ‘눈감아주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모르는 체하다‘라는 생활 방식의 발견이다. 세상은 복잡하게얽혀 있고 끌고 끌리다 보면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교만해서도 안된다.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도 어른의 수행이다.

그렇다면 열화세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 아닐까.
이제는 앞서 말한 ‘인간도 금속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라는 아포리즘의 의미를 이해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나는 진짜와 가짜를 ‘어른‘이냐 ‘어른이아니냐‘로 구분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딱히어른이 아니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의견또한 좋다. 하지만 역시나 어른이 아닌 쪽보다 어른인 쪽을 대하는 게 훨씬 편하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전부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피부로 느끼고 있고,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모든일을 좋게좋게 정도껏 해결하고 적당히 응대하면서 동쪽에 가서는 "그냥 눈감아 주자"고 말하고, 서쪽에 가서는 "그냥 모르는 척해 줘"라고 말하며, 남쪽에 가서는 "고생은 피해"라고 말하고, 북쪽에 가서는 "옛날에 당한 억울한 일 있으면 어디 가서 얘기해 봐.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어른의 꿈 중 최고는 "무덤에 가까워진 늘그막의 사랑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라고 노래한 가와다 준의 <늘그막의 사랑老5<2>이다. 너무 이상적이지만 뭐 꿈은 꿈이니까. 젊었을 때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는다. 그건 인간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게 뭐가 재미있냐며 미심쩍은 눈으로 보지만, 내심 빙그레 웃으며 의외로 인생을 즐기며 산다. 그렇다면 금속피로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 하며 계산기를 두들겨도 숫자가 맞지 않을 때, 암담한 기분으로모두가 의욕을 잃은 바로 그때, 베테랑 선배가 내뱉는 한마디.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이정도면 됐어."
그야말로 절대 권위의 한마디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인정하고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고 앞날에 대한 희망까지 어렴풋이 드러내는 말이다.
오사카에서는 의사도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는 실제 의료 분야를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수술은 진인사대천명과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많을 것이다. 오사카에 사는 어느 명의는 수술이 끝날 즈음 입버릇처럼
"이 정도면 됐어."
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 말은 아마도 ‘인간의 지혜와 손으로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하간 ‘이 정도면 됐어‘에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하느님‘은 짓궂기 때문에 이해심이 부족하다. ‘우는 아이와 하느님은 당해 낼 수가 없다‘고 말할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 보고 어느 지점까지 왔을 때
"이 정도면 됐어."
라며 단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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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생님은 모두가 잊어버린 누군가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가까운 과거나 먼 과거를 지키는 사람, 과거의 수호자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옜날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다시 말해 학생들이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지나간 일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여 옛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또록 돕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 공부의 기본은 관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현재로 돌아와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전화나 영화, 텔레비전 등은 예전에는 없었는데 이런 물건들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에는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전혀 변하지 않거나 무척 느리게 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관습은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나 사고도 있습니다. 역사는 쉽게 변하지 않는 매우 긴 시간과 놀라운 변화가 계소되는 매우 짧은 시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 긴 시간과 짧은 시간 중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 수십 개의 이유 찾기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려면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수십 개의 이유를 연결 지어서 설명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역사 수업은 모든 학생들이 어떤 사건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수업을 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을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역사를 배웁니다. 따라서 역사 교사는 아이들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학생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거나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사 교사는 사건의 진실을 가르칠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이 진실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역사를 가르치는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기
역사학자의 사고 과정 탐구 추론?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밑바탕으로서의 역사.
그렇다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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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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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겨보진 않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유명한 건 안다. 도서관에서 책등을 살피다 우연히 발견한 책
오전 내내 읽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이 꽤 있었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멋졌다.
시간이 되면 그의 영화를 하나씩 하나씩 만나보고 싶다.
<걸어도 걸어도>,<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바닷마을 다이어리><<태풍이 지나가고><하나><공기인형><어느 가족><브로커><괴물>

그리고 그 분이 추천한 <밀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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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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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강하게 느낀 것은, 나라는 존재가 그리 짧지만은 않은 100년의 역사를 짊어지고 흐르는 영화라는 거대한 강을 이루는 물방울 하나라는 감각이었다. 여기는 문화와 국가와 언어의 차이를 초월해 영화만으로 사람과 사람이 이어져 있는 장소이자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놀라움인 동시에 큰 기쁨이기도 했다. 요컨대 칸에 와서 내가 속해 있는,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영화 공동체가 웅덩이로서 명확히 가시화된것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면 살짝 부끄럽기도 한 심플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 파도로메마른 모래톱에 윤기가 돌고 충만해진다. 이 영화제라는장소에서 내가 느낀 풍요로움의 원천은 조명이 비추는 레드카펫 위의 화려함이 아니라 이 ‘보이지 않는‘ 연결을 실감할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영화를 또 하나의 측면인 ‘문화‘로 볼 경우, 가장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영화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요컨대 ‘국익‘이나 저의 이익보다 ‘영화의 이익‘을 우선하는 가치관이죠. 이야말로 영화를 문화로 여기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촬영을 시작하고부터 작품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변해갑니다. 이번에는 출연자들이 내는 아이디어와 번뜩임을 받아들이는 형태로도그런 변화가 태어나는, 아주 스릴 있고 자극적인 현장이었습니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고, 그런 것을 찾으며 만들고있는 것도 물론 아니지만, 분명 이후의 작업을 통해 ‘아………그랬구나‘ 하는 발견이 또다시 계속되겠지요.

아주 본질적인 이야기이므로 비판을 각오하고 굳이 쓰겠습니다만, 이 작품을 본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감상을 가질지에 대해 저는 일절 책임질 생각이 없습니다.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그쪽이 훨씬 위험하며 오만하겠지요. 표현이란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뜻에서는 요시다 님이 말씀하신대로 ‘위험‘을 동반한 행위가맞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각오를 염두에 두고 신중해져야 할 필요는 물론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의 심리 변화는 분명히 말해 저는 모릅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하는오만한 말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남의 작품을 접할 때 그런 수동적인 태도로 마주하지 않거든요, 분명히 말해서.

미디어 종사자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 속에서 스스로를 보려는 자세일 것이다. ‘대체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 이 물음을, 옴진리교를 낳은 지금의 일본 사회를 다시 생각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디어는 바로 그 사유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영상 제작자는 시청자에게 그런 사유를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거울을 앞두고 철저하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

단 거기에, 이 또한 그런 묘사가 꼭 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아시아를 향한 시선, 즉 ‘아시아에 대해 가해자인일본‘이라는 시선이 중층적으로 도입되었다면, 그 후에 그려진 ‘복수심‘이라는 감정은 보다 복잡하고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아시아를 묘사해!‘ 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시선으로 ’복수심’은 상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원자폭탄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태도를 명확히 내세운다면, 다른 한편에 있는 가해자의 기억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상호 보완적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좀처럼 안 되니 이렇게도 단순한 ‘복수’가 세상에 넘쳐나는 게 아닐까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들 여기저기서 거듭 말하는데, 이건딱히 상대의 기분에 동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세계상을 상상하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런 ‘타자‘에 대한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은 정말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가닿을 말로 이야기하는 건 웬만해선 힘들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큐멘터리란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행위라는 것을 방송을 만들기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극영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겠지요. ‘상대의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저하게 상대의 언어에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테면 제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과 상대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이과연 같은 의미인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다릅니다. 거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생을 걸어왔고 상이한 가치관으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대전제이고 그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해 나갑니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감싸주는 존재의 곁을 떠나 ‘타자’로서의(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세계와 마주하는-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누구나 경험해야 할이런 뜻밖의 만남을 예행연습으로서 폭력적으로 강제 체험하는것이 미아라는 경험 아닐까. 바로 그래서 미아는 갓난아기처럼 울부짖는 것이다. 홀로 세계에 내팽개쳐졌다는공포로 인해 세차게 우는 것이다. 그리고 제아무리 울어봤자 이제는 고독하게 세계와 마주해나가야 한다고 깨달았을때, 소년은 자신이 미아라는 점과 결별하고 어른이 되는 게아닐까. 그때를 경계로 어머니는 자신을 감싸 안아주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 한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려줄 뿐인 조그만 존재로 변한다. 한때 미아였던 어른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번에는 남몰래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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