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카의 말과 저서를 편집한 책
아이들이 공연을 보는 사이 카페에 앉아 죽 훑어보다
마음에 몇 개 남기고 싶은 글들을 발견했다

공부한다고 완벽한 지혜를 더얻은 것은 아닙니다우리는 지혜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명예롭고, 용감하고,
당당한 말을 왜곡해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지혜를 공부하는 사람이 이미 완벽한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해도 곤란합니다. 아직 지혜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존경할 만한 말만을 입 밖에 내려고노력하지만,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덕 속에 살고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한 말대로 완벽하게 살 수는없습니다. 아직까지 스스로를 다듬어 인격을 수양하고 훌륭한 본보기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운 목표를 전부 이뤘을 때 비로소 언행일치를 할 수있을 겁니다."
한편 선을 완벽에 가깝게 추구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겁니다.
"우리에게는 애초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판단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아가 현자라면 이렇게 대꾸하겠죠.됩니다.
"나는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며 산 적이 없소. 나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사람이 있을 뿐이오. 그가 내 목소리에귀를 기울이기는 했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오."

부유함은 선이 아닙니다. 부가 선이라면 부를 지닌 사람은 모두 선할 겁니다. 하지만 사악한 사람 또한 부를 소유할 수 있으니, 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부가 있으면 삶이 안락해지니 유용하고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다만 이렇게 구분한 미덕 중 한쪽을 고를 수 있다면 저는 피땀을 흘려야만 얻을 수 있는 미덕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미덕을 선택할 겁니다.

폭풍이 막 지나간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일렁입니다.
잔잔한 바다에도 잔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지난 일에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마십시오. 자기를 질책하며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확신을 가지세요. 그래야 올바른 길을 걷고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사방으로 뻗어 있는 수많은 갈림길에서도 이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확신을 잃는 순간 바로옆에 올바른 길을 두고 헤매게 될 테니까요.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흔들림 없이 잔잔한 마음을 그리스어로 ‘에우티미아euthyimia‘라고 합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에우티미아, 즉 ‘영혼의 안녕‘이라는 주제로 훌륭한 논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잔잔한 마음의 상태를 평온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꼭 그리스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항상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내면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기껍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평온함‘이란 어떤 일에도 들뜨거나 낙심하지 않고 늘평화를 유지하는 마음의 상태를 일컫습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은 산을 넘고바다를 건너 온 세상을 떠돌면서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겠다."
모험가는 좋은 경치를 찾아서 충분히 감상한 다음, 이제거친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험한 땅으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겠다."
기껏 험지를 찾아서는 이제는 눈을 즐겁게 해줄 풍경이없어서인지 무언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겨울에도 날씨가 온화한데다가 항구가 발달해서 고대부터 수많은 사람이 터를 잡고 살던 곳으로 가자."
그러고는 군중이 떠드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됐으니 사람 구경을 하러 떠납니다.
"이제 도시로 방향을 틀겠다."
이들은 한 여행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여행지를 찾아떠납니다. 루크레티우스 Lucretiu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자신에게서 달아나지 않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모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서벗어날 수 없으며, 그 부담은 어떤 짐보다 무겁게 어깨를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고난은 환경이나 장소가 아닌 자신의 결점에서 비롯됩니다. 나약한 사람은 인내가 부족하기에 노력을 계속 이어가거나 쾌락을 절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행위를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없습니다. 툭하면 목적을 바꾸니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같은 자리에 되돌아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시도를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자기 결점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사람은 제멋대로 살면서 시간을낭비하다가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면 이렇게 불평합니다.
"언제까지 똑같은 나날을 견디며 살아야하지?"

무엇보다 평온한 마음을 원한다면 외부의 관심사에서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를 믿고, 좋아하고,
존중하며, 타인의 사정에 개입하는 습관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헌신하십시오. 또한 손실을 가볍게 넘기고 고난을 온화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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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추천해준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여의치않아 책으로 보게된 이야기.
2개의 도서관에서 첫 시작은 내가 처음 넘기는 책으로 읽고, 대부분의 내용은 빛바랜 책으로 읽게 된 책.
오베씨의 따뜻함에 잃었던 인류애를 채우고,
겉과 속이 한결같은 어른 김장하가 한국에 있다면
겉과 속이 다르지만 매력있는 오베가 스웨덴에 있다.
내가 이해해야 하고 알아야 하는 이 넓은 스펙트럼을 한 뼘정도는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오베와 소냐의 이야기에서 나와 남편을 엿보게 되어
처음으로 남편에게 내가 읽은 책을 권하게 되었다.
처음엔 재밌어서 권했지만, 좀더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나는 남편에게 나에게 오베같은 사람이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과연…?

그해 최악의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 철로를 오르내릴 때쓰곤 했던 낡은 트럭이 마을 20킬로미터 밖에서 고장이 났을 때,
오베는 드라이버 하나와 거즈 테이프 반 통만 가지고 트럭을 수리해냈다. 그 뒤로 철로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베는 ‘괜찮은 녀석‘으로 인정받았다.
저녁이면 그는 소시지와 감자를 데쳤고, 식사를 하는 동안 부엌 창을 통해 바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일을 하러 나갔다. 그는 이런 일과가 좋았다. 늘 벌어질 일을예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로, 그는 해야 할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점점 더 차별을두었다. 실천하는 사람과 말만 하는 사람들을 구별했다. 오베는점점 더 말을 줄이고 점점 더 실천을 했다.
오베는 친구가 없었다. 반면 적도 거의 없었다. 톰을 제외하고는 톰은 현장 주임으로 승진하고 나서부터 오베의 인생을 가능한 한 피곤하게 만들고자 갖은 애를 썼다. 그는 오베에게 가장더럽고 힘든 일을 맡겼고, 소리를 질러댔으며, 아침 식사 때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객차를 점검하라며 보내놓고는 오베가 선로 위에 무방비하게 누워 있을 때 객차를 작동시켰다. 오베가 놀

라 몸을 던져 간신히 빠져나오자 톰은 경멸하듯 웃으며 소리를질렀다. "조심하라고, 안 그러면 네 아비처럼 될 테니까!"
하지만 오베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자기보다 두 배나 큰 사내에게 도전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매일 출근하여 떳떳이 지냈다. 아버지도 그렇게 해서 잘 살았으니 오베도 그렇게 해야 했다. 오베의 동료들은 그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말을 많이안 하는 사람은 헛소리도 안 퍼뜨리지." 어느 날 오후 철로를 따라 내려가던 중 작업장 선배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오베는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어떤 건 이해하고, 어떤 건 이해하지못했다.
마찬가지로 오베가 어느 날 이사의 사무실에서 한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베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고 나서 거의 2년이 다 되던 날이었다. 오베는 막 열여덟이 되었다. 톰이 객차에 떨어져 있던 돈을 훔치다 발각되었다. 오베를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톰이 돈을훔치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다. 돈이 사라졌을 때 객차에 있던 사람은 톰과 오베 둘뿐이었다. 이사 사무실에서 나온 진지한 남자가 톰과 오베에게 언제 사무실에 출석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동안, 누구도 오베가 범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베와 오베의 아내가 밤과 낮 같다고 늘 말했다. 오베는 당연하게도 자기가 밤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게 그에게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누군가 그런 말을 할 때 오베의아내는 항상 재미있어 했는데,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낄낄 웃으면서 사람들이 오베를 밤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가 태양 쪽으로가기에는 너무 못돼먹어서라고 지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이나 책이나 이상한 단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였다. 그는 드라이버와 기름 여과기를 좋아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살아갔다. 그녀는 춤을 췄다.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언젠가그가 어째서 늘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그녀에게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읽는 책 중 하나에 프란체스코인가 하는 수도사가 그렇게 써놓은 게 분명했다.
"날 속이면 안 돼요, 여보." 그녀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커다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춤이란 너무 무계획적이고 어지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직선과 명료한 결정을 좋아했다.
그게 그가 늘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수학에는 정답 아니면오답만 있었다. 수업 중에 ‘네 입장을 토론해보자‘며 사기를 치려 드는 히피 같은 과목들과는 달랐다. 마치 누가 긴 단어를 더많이 아는지 점검하는 게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기라도 한 것인양. 오베는 옳은 건 옳은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길 원했다.
그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심술궂은 영감탱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솔직히 말해 그건 그들이 오베에게 사람을 다른 식으로 볼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지 결정을 내릴 때가 오게 마련이다.

때로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물론 그들 자신이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하는 게 나아서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반대의 이유이기도 했다. 즉 자기들이 진작 그 일을 했어야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아마 오베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내내 알고 있었겠지만,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소냐는 그들이 결혼한 뒤로 오베가 딱 한 번 자신이 틀렸다고인정한 적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때는 1980년대 초반, 나중에알고 보니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일에 대해 그녀의 의견에동의하고 나서였다. 오베는 그건 거짓말이라고, 망할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오베는 그녀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그렇게 말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

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물론 오베는 예시로 든 옷장 문이 혹시 자기를 가리키는 건아닌지 의심했다. 그는 소냐가 "나는 가끔요, 기초가 처음부터몽땅 흔들리면 고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라고 중얼거리는 걸 이따금 들었다. 그녀가 그에게 화가 났을때 하는 소리였다. 그는 그녀가 이야기를 어디로 몰고 가려는 건지 무척 잘 알았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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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소중한 일은 하루하루를 지나친 기대와 미움 없이살아내는 것이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으니 나 힘든걸 애먼 데 화풀이하지 않고,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을 유지하며나이 드는 것이다. 다가오지 않은 것들을 염려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에 목매지 않으며, 그렇게 사는 데에 글쓰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성냥불은 언제라도 다시 대형 산불로 번져 나를 위협했다. 삶은 성실하게 인간을 시험한다. 네가 버틸 수 있는지, 버틴다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못 버틴다면 어쩔 것인지. 바이러스가 신체를 위협하듯이. ‘믿는 구석‘이 있는 인간은 버틸 수 있다.
그게 나한테는 글쓰기였다. 진통제처럼, 소염제처럼, 때로는 백신처럼.
이런 내 ‘사적 치료‘의 근거를 실제 과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것은 나중에 알았다. 인간의 뇌에는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와 이성을 관장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 전자가 편도체, 후자가 전전두엽이다. 슬픔에 빠지면 편도체가 과로한다. 그런데 그 슬픔을 ‘슬프다‘라고 쓰는 순간 편도체가 쉬고 전전두엽이 일한다. 슬픔의진창에서 발을 빼고 ‘슬프다‘라는 언어를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것이다.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그래서 썼다. 나를 괴롭혔던 모든 감정에 대하여. 그 감정을 일으킨 사건에 대하여. 그 사건을 차단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하여. 내

마음이 나 자신보다 부풀어 마음에게 질질 끌려갈 때 썼다. 유난히 자주 과로하는 편도체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중 하나라면 의식적으로 전전두엽의 노동을 독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많은 언어가 필요했다. 기분도 안 좋은데 글 쓰면 더머리 아프지 않으냐는 물음은 적어도 내게는 어불성설이었다.
책을 출간한 뒤로는 내가 어디에 무슨 글을 아무리 길게 써도누구도 질문하지 않는다.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당연하니까. 다음책을 쓰겠지, 습작을 하겠지, 마감이 있고 돈을 받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을 붙잡기 위해 쓴다. 타인을 위해, 세상을 위해,
역사를 위해 쓰지 못한다. 그런 글들은 워낙에 함부로 흥분하지않는 편도체와 고도로 훈련된 전전두엽을 가진 분들의 몫일 테다. 나는 다만 나의 편도체를 덜 날뛰게 함으로써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덜 다치게 하고 싶다. 어차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라면 너무 깊지는 않게, 당신 또한 당신만의 ‘믿는 구석‘으로 금세아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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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배우게 되는 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바다에선 모든 게 분명하지 않아서 좋다. 버텼던마음은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끝은다시 시작이 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오늘도 바다에서나이를 먹고도 울 수 있는 마음과 처음과 끝 사이를오가는 길을 배운다. 그러니 모두, 패들링을 멈추지말기를. 그리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라인업이 바로 저기에 있으니.

오래전 법정 스님의 "풍부하게 소유하지 말고풍성하게 존재하라"는 말씀을 글로 읽고 과연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오래 생각한적이 있다. 스물의 나에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어려운 물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첫 서핑과 서프보드위에서 처음 디뎌본 세계를 떠올리면 나는 답에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곤 한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한 세계만큼 존재한다. 감각은 입력의 총량을 더 잘게 쪼갤 수 있을 때 고도화된다. 태어나 처음 경험한에스프레소에서 느껴지는 건 쓴맛이 지배적일 테지만, 점차 경험이 누적되면 우리의 혀와 코는 신맛과단맛, 바디감, 여러 계열의 향기를 구분해내기 시작한다. 감각하고 인식하고 움직일 때 나는 이곳에 존재하게 된다. 다시 첫 서핑을 떠올린다. 마치 파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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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사랑들이 아닌 사랑하는 미움들
나는 어떤 것을 쓰고 싶을까

창문 밖이 가로수 이파리로 가득 찬 스타벅스 2층의 풍경. 여기 앉은 사람들의 감각을 모두 알고 싶다. 따가운 햇볕 아래서 목덜미가 빨갛게 익고 땀으로 축축해지는 한여름의 날씨에서, 며칠 사이 갑자기 이렇게 서늘해져 겉옷을 챙겨야 하는날씨가 되어버렸다. 다들 무얼 느끼고 있을까? 눈보라가 이는겨울 언덕을 그리워하는 이도 있을까? 어느 낯선 대륙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의 차가운 공기를 생각하고 있을까?
추운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살이를 상상할까? 꽁꽁 언 손과 귀끝을 녹여가며 거리를 걸을 때의 기분을 생각할까? 지금의 나보다 많이 느끼고 있을 다른 사람들의 감각이 궁금하다. 그게너무 신기하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고 말해줘도 아무도 모른다는 게.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는 사람을 말려 죽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

는 것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도 같다. 잠시 갈증을 해소할순 있지만 소금기 때문에 더욱 몸이 타들어가서 계속 바닷물을 마시는 것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나는 타인의 인정에 너무집착한 나머지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참으로 강했다. 그 괴로움을 알기에 인정욕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역시 이렇게 강하다.

굉장히 환대받는 느낌이 두렵다. 왜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지?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있기에 그런 기분에 너무 골똘해지지않으려고 한다. 환대와 친절을 받았다면 무엇보다 공연으로보답을 해야 한다. 공연을 하는 동안 나는 자유롭고 일상에서벗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순간을 앞두면 손끝이 차가워지고 맥박이 빠르게 뛴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두근거렸다). 어서 마치고 싶기도 하고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고싶기도 한 나의 공연을 오늘도 앞두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일 나의 공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들에게 무엇을 줘야 할까? 언젠가부터는 나를 중심으로 답을 찾고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으로.

손끝을 따뜻하게 만들고 숨을 천천히 쉬어 심장박동을 진정시킨다. 나만의 시간. 오직 나만 생각해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이 나를 기다린다.ㅂ

차고 넘치게 가지고 싶었는데. 더 잘하고 더 많이 가진 사람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나는 기껏 채워놓고는 시간이 지나면 이제 쓸모없어졌다고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또다시 제 양보다 차고 넘치게 먹어서.
해버리더라고. 강하게 쥐면 손에 무엇도 남지 않는 모래를 가지려면 가볍게 손을 오므려 넘치지 않게 찰랑찰랑하게 담기.
나의 몫만큼 가지며 오래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희망하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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