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금속 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이건 내가 최근에 만든 아포리즘인데, 나 자신도 이 문장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인간도‘의 ‘도‘에 대해서 설명하기가어렵다. ‘인간은‘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일률적으로 단정해 버리는 꼴이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일도양단해서는 안 된다.

‘금속피로‘는 예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말인데, 지금은 사전에제대로 실려 있다. 사전에 의하면, "진동의 반복으로 인한 금속의열화 현상으로, 표면에 난 흠집이 진동의 증가로 약해져서 결국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친절하고 공손한 설명이다.
나 같은 사람이 금속이라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라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것 혹은 금강불괴 같은 말이다. 그런데 금속에도 흠집이 날 수 있고 균열이 커지면 끝내 파괴될 수도 있다니.
인간도 긴 세월 살다 보면 온갖 고난과 고생이 켜켜이 쌓인다.
몸이 상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건지 마음이 상해서 몸이 약해지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말하자면 ‘열화 현상‘이다.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된다는 의미다. 어린 시절 분별없이 치솟았던콧대가낮아지기 시작한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그러다 보면 어미에 ‘・・・・‘ 혹은 ‘?‘가 붙는다.
또 섣불리 단언하거나 확언하지 않는다.
하물며 호언장담 따위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허풍 떨며 큰소리치다니,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싶다.

옛날에는 사리분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럴듯하게 꾸며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인간을 보면 배알이 뒤틀렸고 철저하게 따져물어서 흑이냐 백이나 결착을 지어 찍소리 못하게 만들려고 했다.(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적당히, 정도껏 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속으로는 ‘거짓말 하지 마‘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적당히 상대해 주지 뭐.
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저 인간의 실체를 까발리겠다는 되바라진 행동은 하지 않는다.
‘모나면 정 맞게 돼 있다고 하잖아.‘
라며 앞날이 읽히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다.
금속피로는 열화 현상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앞날이 읽힌다‘는장점도 가져온다.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이 어느 정도 식견을 넓혀준다.
그 식견이 무엇인가 하면 ‘눈감아주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모르는 체하다‘라는 생활 방식의 발견이다. 세상은 복잡하게얽혀 있고 끌고 끌리다 보면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교만해서도 안된다. 그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도 어른의 수행이다.

그렇다면 열화세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 아닐까.
이제는 앞서 말한 ‘인간도 금속피로가 생기고 나서 진정한 인간이 된다‘라는 아포리즘의 의미를 이해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나는 진짜와 가짜를 ‘어른‘이냐 ‘어른이아니냐‘로 구분해 생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딱히어른이 아니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의견또한 좋다. 하지만 역시나 어른이 아닌 쪽보다 어른인 쪽을 대하는 게 훨씬 편하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전부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피부로 느끼고 있고,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모든일을 좋게좋게 정도껏 해결하고 적당히 응대하면서 동쪽에 가서는 "그냥 눈감아 주자"고 말하고, 서쪽에 가서는 "그냥 모르는 척해 줘"라고 말하며, 남쪽에 가서는 "고생은 피해"라고 말하고, 북쪽에 가서는 "옛날에 당한 억울한 일 있으면 어디 가서 얘기해 봐.
사람들이 얼마나 재미있어 하는지 몰라"라고 말한다.
어른의 꿈 중 최고는 "무덤에 가까워진 늘그막의 사랑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라고 노래한 가와다 준의 <늘그막의 사랑老5<2>이다. 너무 이상적이지만 뭐 꿈은 꿈이니까. 젊었을 때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기를 쓰지도 않는다. 그건 인간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게 뭐가 재미있냐며 미심쩍은 눈으로 보지만, 내심 빙그레 웃으며 의외로 인생을 즐기며 산다. 그렇다면 금속피로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 하며 계산기를 두들겨도 숫자가 맞지 않을 때, 암담한 기분으로모두가 의욕을 잃은 바로 그때, 베테랑 선배가 내뱉는 한마디.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이정도면 됐어."
그야말로 절대 권위의 한마디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인정하고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고 앞날에 대한 희망까지 어렴풋이 드러내는 말이다.
오사카에서는 의사도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우리 같은 비전문가는 실제 의료 분야를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수술은 진인사대천명과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많을 것이다. 오사카에 사는 어느 명의는 수술이 끝날 즈음 입버릇처럼
"이 정도면 됐어."
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 말은 아마도 ‘인간의 지혜와 손으로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하간 ‘이 정도면 됐어‘에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하느님‘은 짓궂기 때문에 이해심이 부족하다. ‘우는 아이와 하느님은 당해 낼 수가 없다‘고 말할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써 보고 어느 지점까지 왔을 때
"이 정도면 됐어."
라며 단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