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역사도서관 2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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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절판된 책이어서, 그동안 다른 역사책에 인용된 부분만 읽으면서 감질나 죽을뻔 했다. 그러다 드디어 온라인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해 읽게 되었다. 오, 명불허전! 읽어가면서 책의 한 장 한 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무지무지 재미있었다. 한편 독학의 한계랄까, 답답함이랄까,,, 그런 감정에 빠져 들기도 했다.

 

우선 저자 소개부터.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현대 서양사학계에 '미시사'라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한 세계적 역사학자이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 서양사학계가 실증주의의 독일 사학에 대한 반동으로 프랑스 아날학파가, 또 그 아날학파의 계량경제사학을 바탕으로 하는 거시사적 역사분석에 대한 반대편 연구 입장으로 이탈리아 미시사 사학이 생겨난 것 같다. (더 묻지 마시라, 이 부분은 좀더 공부해야 할 듯) 이 미시사 연구의 시초가 된 사람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이고, 그 시발점이 되는 책이 저자가 27세에 박사논문으로 발표한 이 원고이다. 

 

베난단티(복수형, 단수형은 베난단테)라는 존재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문서에 나타난다. 이들은 병자들을 치료해주고 마녀들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양막을 쓰고 태어난 이들은 때가 되면 대장의 부름을 받아 영혼이 빠져 나가 일년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판에 모인다. 이들 베난단티는 수숫대를 든 나쁜 마녀들에 대항하여 회향목 가지를 들고 밤새 싸우는데 그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이 지방의 베난단티들은 수없이 많으며 그 진술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그외에도 베난단티는 죽은 자들이 고향 집에 돌아오는 행렬에 참여하기도 한다. 즉, 그들은 풍요의식을 거행하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샤먼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종교재판관들은 이런 베난단티를 사악한 마녀들과 동일시하는 유도심문을 한다. 그래서 후대에 내려올수록 베난단티는 마녀와, 그들의 풍요 의식은 마녀의 사바트와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기독교에 민중 신앙이 굴복한 셈.

 

그런데 저자는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관련 문서들을 소개하면서 건조하게 재판 진행 과정과 베난단티 신앙의 변모 과정을 나열하기만 할 뿐, 역사적 해석을 가해서 독자에게 들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학 작품도 아닌데 빈 부분을, 역사적 의미를 나 스스로 읽어가면서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보다 대중적인 역사서를 읽을 경우, 저자가 읽고 공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가 역사를, 세계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 독자인 내게 확연히 보이는 반면,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의 내 수준에서 읽기에는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해가면서 기존 고대부터의 기층 민간 신앙에 압력을 가하여 유럽 민중의 일상 생활까지 지배하려 하는 시도, 그 과정에서의 민중 신앙의 변모 과정이 보여 흥미로웠다. 하지만 솔직히 이 사료들을 어떻게 해석하며 읽어야할지 답답한 점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 가면서, 마치 먹을 것을 양 손에 가득 받았는데도 감격에 겨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소화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하는 거지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아, 어쩌랴! 책은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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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미국사 - 인종과 문화의 샐러드, 미국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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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역사 교사 모임'의 야심찬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첫번째는 터키사였는데 그 책이 아주 좋아서 이 책도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책은 괜찮은 교과서같은 느낌이다. 지도, 사진, 도표가 풍부해서 더 교과서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사 통사에서 짧게 미국사를 접하고 처음으로 미국사를 전체 한 권으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할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쉽게 침대에 누워 읽을 수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원래 미국의 주인들의 문명, 역사 이야기가 1장에 걸쳐져 있다. 전체의 1/8분량이다. 2장은 유럽인의 침략, 3장은 독립전쟁과 미국의 탄생, 4장은 미국의 서진과 완성, 5장은 남북 전쟁, 6장은 19세기 후반부터 1차대전까지, 7장은 대공황과 2차 대전까지, 8장은 냉전시대부터 911을 거쳐 오바마까지를 다룬다. 다른 책에 비해 원주민과 그들을 몰아낸 서구인들의 미국 건국, 형성 과정을 비중있고 올바르게 다루고 있다. 그 분량이 책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바로 콜럼버스(멀쩡히 잘 존재하던 미대륙을 '발견'했다고 묘사하는)와 독립전쟁, 남북전쟁의 의의 나열로 들어가버리는 다른 책들에 비해 아주 맘에 드는 구성이어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상하게도, 베트남 전쟁이후 현재까지의 미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2차대전 이전까지의 미국사는 별 문제의식 없이 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대외적 패권구사의 문제점은 이미 미국 형성과정에서 다 드러난 점의 재판이자 삼판이자 전지구적 확대재생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내적 정책의 실패는 이민으로 인한 미국 형성과정에서 기득권을 놓고 벌어진 일들의 재판, 삼판인 것이고. 그런 정확한 지점을 알려 주기에 이 책의 이런 구성은 아주 맘에 들었다. 또 20세기 이후의 미국사는 세세한 자국사보다 전체 세계와의 관계 위주로 서술해 주신 점도 좋았다.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 보는 미국사니까 그렇다.

 

책을 읽어가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이 책을 집필하신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심을 하셨을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실제의 미국과 우리(특히 전쟁 원조를 기억하시는 어르신들)가 생각하는 미국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채워 서술할 것인가, 쓸 데없는 태클은 피하면서,,, 하는 고민을 하신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덕분에 이 책은 하워드 진이나 브루스 커밍스의 역사책보다는 온건한 표현으로, 기존 교과서 서술보다는 진보적 시각을 담는 성과를 이룩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좀 싱거웠다. 좀더 세게 서술해도 될 것을! 하하. 예를 들어, ''고립주의 원칙이 미국이 내세우는 대외 정책의 기본 노선이었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 원칙은 기꺼이 포기되었다(본문 292쪽)" 혹은 "트루먼 독트린은 이후 30여년간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이 되었다.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반대하기만 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억압적인 독재 정권도 지원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행위는 미국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국민을 희생시킨다는 이유로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본문 316쪽)"와 같은 문장. 저자의 고심이 느껴져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세계사 책에서 미국사 부분 요약된 부분만 읽으면, 사건 연대와 그 의의 위주로 저자의 시선만 따라 읽게 된다. 식민지 엘리트들의 이권을 챙기기위한 독립전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위대한 혁명이 되어버리고, 연방의 와해를 막기위해 명분을 획득하고자 선언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인류애가 가득한 선언으로만 보게 된다. 미국의 생산품을 소비할 시장 확보와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위한 마샬 플랜은 유럽의 전후 복구를 위한 형제애로 여기게 된다.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실력행사였던 70년대의 오일 쇼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지 이기적인 아랍의 자원 민족주의 탓으로만 알게된다. 아아, 미국 혹은 모든 강자들이 내거는 '명분'은 일단 한번 의심해 볼지어다!

 

결국, 1차대전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시키려는 전후처리용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믿고, 미국의 지원을 오해하며 3,1운동 일으킨 우리 조상님네들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의 진행 과정을 다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판단과 의의는 자신이 내려야 한다. 그리고, '명백한 운명'이후 미국인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이면의 구린내를 늘 맡아내야만 한다. 안 그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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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
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김희상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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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참 재미있다. 리뷰 쓸 생각만 해도 즐거워진다(그 이유는 맨 밑에).

 

깊이 공부하려면, 학자들의 클래식 저서들을 읽는 것이 낫다. 잘 안다.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관점으로 서술된 대중 역사서를 읽는 것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오락거리이다. 게다가 "털"이라잖은가! 도대체 이런 내용을 가지고도 역사서를 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을 만나면 사는 게 다 즐거워지는데 아니 읽고 어찌 견디겠는가!

 

이 책에서는 수염,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다리털, 겨털 등 다양한 체모들과 대머리의 역사와 관련한 가벼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체모를 밀건 기르건 다듬건, 가발을 쓰든 말든, 그건 전적으로 그 시대 그 문화권의 권력이나 취향이나 종교, 성차별에 달린 문제라는 것.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메로빙거 왕조시절 긴 머리카락은 왕권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머리와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는 것은 좌파의 상징이라는 것. 예를 들어 체 게바라. 늘 면도해야하고 지나치게 미끈하게 여성의 체모를 제거해야만 하는 미국의 경우, 늘 젊고 섹시하게 보여야하는 그들 문화와도 관련있다는 것. 여성의 긴 머리는 유혹의 상징이기에 머리를 가려야 하는 문화권의 이야기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늑대인간과 빨간머리 이야기도 있다.

 

<라푼쩰>의 긴 머리카락에 대해 참신한 해석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은 책인데, 여성의 긴 머리와 남성의 성욕 도발의 관련성 부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상의 정보가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뜻밖에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1세 부활 전설의 구체적 내용을 건져서 기뻤다. 다른 책에서는 그냥 아더왕과 같이 민족이 위기에 처하면 다시 나타난다고 슬쩍 언급되어 있었는데 말이다. 읽은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독특한 문화사책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이 짧은 리뷰를 쓰는 내내 즐거웠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고 책에 관심을 가질 친구분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진실을 밝혀야지. "이 책 절판이랍니다! 약오르시죠? 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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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2
올리비에 크리스텡 지음, 채계병 옮김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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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사의 큰 흐름을 빨리 잡기에 적합한 책이다. 15세기말 에라스무스 등 인문주의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루터와 칼뱅을 주로 다룬다가 바르톨로뮤 대학살과 낭트 칙령, 네덜란드 독립으로 끝맺는다. 세계사 통사나 각국사에 조금씩 흩어져 있는 내용을 한 권에 몰아서 읽는 듯하지만 기존 통사류에서 당시 로만 카톨릭의 타락 위주로 간단히 종교개혁의 원인을 말하고 지나가는 것에 비해 독일, 프랑스 내의 사회, 경제적 문제점도 언급해 주고 있는 점이 좋았다. 신학적 논점보다 큰 역사적 과정 위주로 서술되어 있고 독일 위주가 아닌 점도 마음에 든다.

 

또 괜찮은 점은 이 책의 도판이다. 시공사의 이 시리즈는 다 도판이 호화찬란한 편이지만, 어느 정도 주제와 관련없는 그림들이 난삽하게 배치된 책도 있는데 이 책은 구교, 신교간의 입장과 각자 상대에 대한 공격, 선동(찌라시같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판화들이 많아서 흥미로왔다. 이런 시각으로도 종교 개혁사를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저자의 약력을 보니, 프로테스탄티즘의 역사와 시각 예술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내가 그때그때 리뷰를 써 놓지 않은 책들이 많은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짧게, 20분만에 '쓰고 빠지는' 수법으로 리뷰 써 버릇하다보니 묵직한 클래식 역사서 리뷰를 안 써 놓아서 막상 내가 참고하려니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생했다. 하지만 덕분에 이 기회에 전에 한 번 읽고 던져 놓았던 책들을 다시 읽게 되었으니 뭐 인생만사 새옹지마인셈. 이 책도 전에 읽고 좀 무시했던 책인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토마스 뮌처를 언급한 거라든가, '마지못해 루터는 종교개혁자가 된 셈이다'라고 루터에 대해 평한 부분 같은 거. 분명히 인쇄된 활자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전에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그 부분을 못 봤다. 아니,  안 보였다. 얇은 입문서를 썼다고 저자의 지식이 얇은 것은 아닌데, 이전의 나는 내가 무식해서 몰랐기에 안 보고 지나갔으면서 이 책과 저자를 얕잡아 본 것이었다. 새삼, 나란 인간의 얇팍함을 깨닫게 된다.   

 

1524-1525년 이러한 문제들이 극적인 방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는 에라스무스가 루터에 대항해 자유의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인문주의와의 결별이 이루어진 시기로, 루터는 주기적으로 독일을 뒤흔들고 있던 토지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강제 부역문제로 1524년 6월 슈바르트발트에서 시작된 농민반란은 슈바벤, 남부 독일, 알자스, 튀링겐, 그리고 작센 지방으로 확대되었고, 농민들은 사회적인 요구와 종교적인 요구가 담긴 12개 조항을 제시했다. (중략) 하지만 튀링겐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은 과격한 토마스 뮌처의 영향을 받고 이었으며, 도를 지나친 폭력에 대한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루터는 탄압자 편에 가담해 제후와 귀족들에게 '베고 참살하라.'고 지시함으로써 농민반란이 마침내 1525년에 이르러 유혈진압되도록 했다. 뮌처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 본문 57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개혁'이라는 용어 때문인지 그가 모든 방면에서 개혁가이고 진보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사람들은 착각한다. 아니, 기존 역사서에서 그렇게만 언급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하지만 농민봉기에 대한 루터의 대응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부분, 좋은 책을 통해 더 공부해보고 싶다. 당시 독일 농민 항쟁과 관련해서 말이다. 그런데 검색해보면 종교 전문 출판사의 책들만 보여서 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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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의 왕 아틸라 역사 명저 시리즈 10
패트릭 하워스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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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던가, <박물관은 살아 있다>란 영화를 조카들 데리고 가서 보았다.  전시되어 있던 밀랍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며 주인공과 더불어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유목민의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눈에 띄었다. 설정 상, 아틸라인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야간 경비직에 있는 주인공이 무료한 밤에 읽는 책이 바로 이 책 <훈족의 왕 아틸라>였기도 했으니.

 

이 책의 주인공인 아틸라는 아마 징기스칸과 더불어 유럽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양계 군주가 아닐까싶다. 그러나 아틸라는, 서양 신문에 의해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고국에서 신적 추앙을 받으며 제대로 업적이 자국 역사에 기록된 징기스칸에 비해, 너무 터무니없이 편견으로 가득찬 평가를 받고 타국 역사책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저자인 패트릭 하워스 역시 그 점을 의식해서인지, 첫 장부터 "크게 중상당해온 민족"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에 든다.

 

지난 1500년 동안 서구 사람들은 편견에 가득 차 있고 아주 적대적인 자료들을 통해 훈 족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라틴 어나 그리스 어로 된 그 같은 자료를 남긴 최초의 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시민이었다. 그들은 야만인 훈 족을 경멸어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를 이은 기독교 계통의 연대기 저자들은 훈 족을 이교도 무리로, 아틸라를 하느님이 죄를 지은 사람들을 징벌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보낸 도구로 보았다. 최근 들어서는 아틸라와 훈 족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이 주로 고고학적인 유물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 본문 10쪽에서

 

저자는 훈족이 실제의 모습 이상으로 유럽사에서 유럽인의 시각에 의해 중상당해 왔음을 밝히며 훈족의 역사를 서술한다. 근래에 고고학적 발굴 작업의 성과로 이 시각이 많이 고쳐지고 있다고 한다. 훈족이 서진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게르만족이 이동하면서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중세가 끝난다, 라는 기본적 세계사의 서술만 보면 훈족이란 찬란한 고대 로마제국의 문명을 무너뜨린 야만족일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발굴된 유골을 보면 실제 순수 몽골로이드의 유전자를 가진 훈족은 1/4밖에 되지 않으며 크게 묶어 로마인들이 훈족이라 칭했던 그들 무리의 민족 구성은 보다 복잡했다. 유럽인과 같은 외모를 가진 화이트 훈족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훈족은 지배지역의 농경민족들을 그대로 땅을 경작하게 하기도 했으며 그들 지배하의 기독교 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했다. 물론 그들이 피지배인들을 지배계급 무사로서 칼로 다스린 것은 사실이지만, 고대, 중세의 다른 지배계급과 지배민족들에 비해 특별히 더 가혹한 지배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어서 저자는 아틸라의 탄생과 가족사, 그의 8년이란 짧은 치세 기간동안에 이룩한 정복 사업들에 대해 서술한다. 그의 콘스탄티노플 위협 부분에서는 로마 제국의 역사가 짧게 서술되기도 한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서로마제국의 공주 호노리아에게 청혼받은 일화가 그의 서로마제국 침략을 앞당겼던 이야기가, 452년 카탈루냐 전투 이후 롬바르디아 지역의 도시들을 함락시켜 (결과적으로) 베네치아 공화국 탄생에 일조한 역사가 이어진다. 또 서구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교황과의 만남도 아틸라는 별 감흥없어 했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서구인들만 아틸라를 신의 채찍이니 뭐니 의미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니벨룽겐의 노래"를 비롯, 서구인들의 드라마나 오페라에 수없이 아틸라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온다. 게르만계 여성 일디코를 새 신부로 맞이한 첫날밤에 그는 급사하고, 이후 그의 아들들 대에 제국은 해체된다.

 

이후 아틸라는 긴 세월 동안 문학과 예술 작품들을 통해 그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게 된다. 아마, 그 정도로 그란 인간 자체와 훈족의 침략이 인상적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실제로 로마 측 지식인의 기록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구비 설화를 바탕으로 기록된 '에다'나 '니벨룽겐의 노래'를 보면 그의 모습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등지의 드라마에서 그의 모습은 대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근대에 와서 아틸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에 등장, 당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위한 애국심 고취용으로 이용된다. 또한 기독교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의도로 프란츠 리스트의 <훈 족의 전쟁>에도 이용된다. 게다가 보불전쟁시기나 1차대전 시기의 프랑스인들은 독일의 위협을 훈족의 침략에 빗대 선전 선동하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무시무시한 정복자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쟁 관행에 비추어볼 때 전시의 약탈과 학살은 아틸라 만의 만행은 아니었다. 훈 족의 침략 역시 당시 민족 대이동 시기의 유럽사에 비추어 아주 특이한 그들만의 침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유럽사와 유럽인들의 심리에 아틸라의 모습은 부정적으로 남게 된다. 천 오백여 년이나 전의 역사적 경험인데도 말이다. 유럽인들에게는 유전자에 그 때의 공포가 새겨져서 대대 손손 전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그 때의 공포를 상기시켜 야만과 문명, 동양과 서양, 기독권과 비기독권을 대립시켜서 유럽인들 스스로 챙길 이익들이 많았던 것일까? 게다가 웃기는 것은, 동양의 작은 나라 몽골로이드 인종인 우리는, 왜 고대 로마제국의 입장에 서서 게르만족을, 훈족을 야만족이라고 덩달아 평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에 와 닿으면 엄청나게 혼자 달리게 된다. 나는 도대체 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냥 역사책을 읽어대는 것일까? 이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대중 역사서의 시각과 서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등,,,  (게다가 나에게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가 역사 에세이 책을 쓴다면 과연 서술할 때에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에까지 나의 생각이 나의 지능과 재능을 앞질러 달려가 버리는 거다. 맙, 소, 사!

 

그래도 말하고 싶다. 이 책, 참 재미있다고. 거칠게 읽고 거칠게 말한다. 고대 훈족과 게르만족, 로마 제국의 부족명칭이나 전투 장소 지명 같은 것은 읽고 나서 다 잊어도 좋다. 단 하나, 우리가 그동안 훈족을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남의 시각으로 봐 왔는지, 그 점만 기억하면 된다고. 비단 훈족의 역사만 그렇게 봐 왔으랴. 그러므로 대중 역사서를 읽으면서 얻는 소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재정립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하고 싶다. 연도 암기나 사건 순서, 위인 인명 외우기에 시달려 역사서를 멀리한 당신, 역사는 순 암기 투성이고 지루하다는 거, 그거 역사를 보는 시각을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강요하는 강자들의 음모론 같은 것이니 속지 말라고. 이 책을 읽으며 고대 종족의 역사가 지금 현실에 뭐가 대수냐, 하지도 말라. 머나먼 옛적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굳어진 세계관은 현재 당신의 세계관도 지배한다. 결국, 제대로 알지 못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은 당신을 강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 편에 서서 사고하게 만들고, 지금 당신 옆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조심, 또 조심.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그런 시각으로 서술된 책을 쓰고 싶다! 맙, 소, 사! 그만 써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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