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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한때, 우리나라 권장도서 목록에 반기를 든 적이 있다. 물론 서재에서 나 홀로 아무도 모르게. 그때 읽었던 책은 허균의 <홍길동 전>이었는데 어떻게 이 소설이 초중고 학생들의 권장도서 목록에 담겨져있을까 의아했던 적이 있다. 물론 고등학생 정도의 연령층이라면 사회 각층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이해할 수 있으니 그래, 고등학생 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고치자. 그러나 초중등 학생들을 위한 축약본을 어찌 생각해야할까 의문스러웠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는 뉴스 기사를 접할 때마다 나는 슬쩍 반감이 생긴다. 그러니까 그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그저 책을 읽지 않는다는 비난만 쏟아내는 기사를 접할때마다 '글쎄,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가만히보면, 우리는 어릴적부터 무수히 많은 책들을 마주한다. 기본적인 교과서는 제처두고라도, 권장도서 목록과 독후감이라는 숙제때문에 읽어야했고 써야했던 그 기억들엔 행복함이 없다. 왜 그렇게나 어려운 책을 읽어야하는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고 또 왜 꼭 써내야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그 시간들이 쌓이고쌓여 성인이 된 지금에도 책은 '어렵다'는 생각이 각인되어버린 듯 싶다.
왜 학창시절에 읽는 고전들은 어렵게만 느껴질까.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들과 배경에서 오는 공감의 부재가 아닐까. 아직은 성숙되지 못한 시선과 생각들이 등장인물을 탐색하고 이해하기엔 버거움을 느꼈으리라. 그렇지만 어린시절 읽던 책만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온전히 이해했다 말할 수 없다. 어떤 기회에 의해 어릴적 읽었던 책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펼쳐들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머리속에는 베르디의 '레퀴엠(Requiem)이 시종일관 울려퍼지며 송곳같이 날카로운 히스클리프의 행동 하나하나에 조바심을 냈던 기억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지독한 사랑도, 또 그 사랑에 침잠되어 죽음에 이르는 그의 모습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느꼈다.
" 그러나 고등학생 때나 심지어 중학생 때(덜덜덜!) 우리가 이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은 나쁜 소식이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리고, 감정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고, 회한이 인생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알 길이 없다. 사슬에 줄줄이 묶인 죄수들마냥 발을 질질 끌며 <개츠비>의 세계로 처음 들어갈 때, 우리는 시험 준비를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p13)
" 하지만, 먼저 우리는 똑똑해 져야 한다. 나이도 더 들어야 하고 일상의 슬픔과 사랑스러움 양쪽 모두에 상처 받을 수 있도록 민감해져야 한다"(p15)
이번에 읽게된 모린 코리건의 책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은 <위대한 개츠비>를 열렬히 사랑하는 작가가 피츠 제럴드의 생애와 함께 소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린은 우리가 어린시절 읽었던 개츠비는 진실이 아니며 마지막 문장을 마주했을때는 반드시 앞으로 되돌아와 펼쳐들게 된다는 이야기로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왜 이렇게나 열렬한 사랑에 빠져있는지, 왜 이 책이 '가장 위대한 개츠비' (모린의 표현이다) 가 될 수 밖에 없는지를 그녀의 이야기로 들어보자.
" 소설 다시 쓰기에 대한 예리하고 흥미로운 저서 <예술적 편집>을 쓴 수전 벨은 피츠제럴드의 교정에 두 장을 할애했다.(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로 <개츠비>를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첫 장을 시작한다. 2002년, 마흔 세 살때 이 책을 다시 읽고 그녀는 " 놀라 기절할 뻔 했다. 모든 문장과 사건들이 필연이라고 느껴졌다")"(p250)
" 그러나 실제로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것은 머틀의 쇼핑 목록이다. 머틀이 사고 싶어 하는 강아지용 목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톰 뷰캐넌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보여주는 소재이고, 재떨이는 재에서 재로 떠나는 운명에 가까이 다가가는 그녀의 상황뿐 아니라 그녀가 재의 골짜기라는 하층 계급 출신임을 환기한다. 그리고 묘지 화환은 그녀의 죽음을 싸늘하게 예언한다. 상징을 쌓기 위해 상징을 쌓는 일은 지루하지만, <개츠비>는 다르다. 피츠제럴드는 낭만적인 이기주의자였고, 성당에 더 이상 나가지 않는 냉담자였고, 또 몽상가였다. 타고난 기질과 교육 덕분에 그는 세속의 세계에서 의미를 보았다. <개츠비>가 너무 기이해서 독특한 까닭은 무엇일까. 왜 이 소설을 기적과 같다고 하는가. 소설에 상징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녹색 불과 에클버그를 제외하고) 상징이 거의 없는 듯 읽히도록 썼기 때문이다"(p230)
이 소설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재즈 시대(1차 세계대전의 종전부터 1929년 경제 대공황 이전까지)'다. 전쟁으로 불안하고 횡폐해진 사람들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상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틈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신흥 부자들을 풍자한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요소들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모린의 책을 읽고 도저히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을 수 없어서 펼쳐들었는데 그녀의 말처럼 상징성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숨겨진 요소들을 발견했을때의 기쁨으로 그녀는 개츠비를 50번이나 읽게 되었고 무려 7시간 동안 <위대한 개츠비>을 읽어주는 연극 공연을 관람하며 온전하고 똑똑한 '닉'의 숨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나 역시 책을 무척 좋아한다 느꼈지만 모린을 보며 즐기며 사랑한다는게 무엇인지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부재 '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이라는 말을 온전히 느끼기엔 부족했다. 피츠 제럴드와 그의 저서에 관한 이야기 또 소설의 배경인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를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다니고, 오래된 문서를 보기위해 도서관에 끊임없이 노크를 해대는 모린의 모습에서 고전을 즐기는 방법을 어렴풋이 깨닫게된다.
그것은 책을 온전히 즐기라는 것, 풍부한 경험과 감성을 쌓아올리고 일상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불만과 고민 들을 쌓아올려서 책과 맞닿는 것. 또한 작가를 이해하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이해되지 못하는 고전을 거듭 읽어야 한다는 것, 꼭 곁에두고 불현듯 떠오를때 집어들 수 있어야 하며, 쉼표 하나, 단어 하나에 모든 감각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고전을 즐기는 것은 삶을 더 풍부하게 느끼고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권장도서 목록엔 반감을 표현한다. 독서는 억압하면 할수록 멀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진정한 문화부흥을 꿈꾸는 나라라면, 그렇다면 이런 권장 도서목록으로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으리라.
이 책을 읽다보니 에밀 파게의 구절이 떠올라 마지막 말로 장식한다.
" 읽기는 감미롭다. 그리고 거듭하여 읽기는 더더욱 감미롭다..........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읽는다"
( <단단한 독서> 에밀 파게 지음, 최성웅 옮김, 유유 출판사)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