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절벽 - 노후 공포 시대, 젋은 은퇴자를 위한 출구 전략
문진수 지음 / 원더박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할 그 당시만 해도 직장인들의 ‘은퇴’란 어느 정도 환상을 가진 꿈의 이상향 같은 어감을 내포한 단어였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한 다음에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여행도 하며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자 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희망퇴직, 강제퇴직 등의 이름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직장에서 내쳐지는 냉혹한 단어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국가를 믿고 개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보낼 수 없다. 몇 십 년을 몸담았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밀려나게 되고, 그로 인해 가정에서는 가족들과 경제적, 정서저인 갈등이 고조되어 급기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아니 현실의 삶도 팍팍하여 미래까지 챙기며 살 수 없는 삶의 구조속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은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의 결과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강제적인 은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해졌다. 과학의 발달과 의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졌고, 100세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은퇴 나이는 점점 빨라지고 살아가야 할 날은 길어서 장수가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려면 최소 10억 원을 준비해야 한다.”(p68)

보험회사의 노후 위험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케팅이다. 자녀교육과 내집마련에 올인하며 살아가다가,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리는 삶엔 대출금이 고스란히 남은채로 마주한 현실. 미래를 위하여 충실히 대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삶을 좀 단순하고 소박하게 하면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어도 노후를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휘둘려 감정을 소모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저자는 은퇴 절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돈’보다는 ‘일’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은퇴를 하고서도(자의든 타의든) 남은 생을 다시 일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바에는 비축해 놓은 돈이 없는 것에 상심하기보다는 원하는 동안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삶에는 플러스가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인생 이모작을 위해서는 10년계획을 세워 학습하기, 건강수명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기 등을 통해 절벽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 칠포세대,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 등 과거엔 듣도 보도 못했던 수많은 신조어들이 만연하고 있다. 이는 팍팍한 우리의 삶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청년을 살려야 우리의 사회도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되는 것이라고.

  국가 사회는 청년실업, 은퇴 등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응하여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고 투자를 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임해야 할 것이며, 개인은 나름대로 예전의 고루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래가 불확실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언젠가 불쑥 찾아올 수도 있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금전쟁 - 걷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하노 벡.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세금’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저 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어렵고 복잡해서 별로 알고 싶지 않는 분야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상식을 깼다. 더 알고 싶어졌다! 세금 이야기를 쓴 책을 읽으면서 웃어본 적은 처음일 정도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알기 쉽게 풀어 쓴 저자의 노력이 문장 전반에 걸쳐 재치와 유머로 반짝인다.

 

 

 인간의 삶에서는 오직 죽음과 세금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하면서 동서고금의 세금의 역사, 여러 터무니없는 세금에 대한 이야기, 역사적인 인물의 사건과 사례에 얽힌 세금에 관한 비애, 하나의 세금이 탄생하기까지 국가와 정치가가 결탁하는 등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격인 성경에 나와 있는 고대의 세금에 대한 이야기로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화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는 것을 통해서 세금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세금은 고래(古來)로부터 오늘에까지 계속 진화하고 늘어 인간의 삶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세기까지 존재했다는 ‘창문세’ 또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도입했다는 수염세,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일정량의 공물을 바치게 했다는 살인세 등 지금으로 말하면 납득할 수 없는 웃기는 이야기다. 역사책에서만 알던 표트르 대제가 세금을 걷기 위해 얼마나 악착을 떨었는지.

 

 

  세금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탈세가 있기 마련이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세금을 전가하게 되는 이야기. 처음 듣는 ‘세금해방일’이라는 단어, 과도한 세금 때문에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탈세의 온상이 된 제3국에 대한 이야기 등 재밌으면서도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작은 분노(?)까지도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것은 세금은 납세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는 나라의 살림을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는다. 한번 늘어난 세금은 결코 줄어든 적이 없다고 한다. 선거시즌이 되면 여러 공약을 내세워 유리한 방향을 끌어내기 위하여 혈안이 된다. 이를테면 ‘부자감세’등 새로운 세금을 고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이 혜택을 보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대 세금의 역사, 증세를 위해 만들어 낸 별 희한한 이름의 세금, 세금을 둘러싼 국가와 정치가의 전략에 휘말려 국민들이 얼마나 허리가 휘는 삶을 살아오고 또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삶이 있는 한 세금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면 이제라도 우리는 좀 더 관심을 갖고 똑바로 지켜볼 일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쓰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상의 것이지만 완벽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일까.



"사람들은 적은 세금보다 공평한 세금을 원한다."-미국의 유머 작가 윌 로저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주고, 시민의 것은 시민에게서 뺏는다'(p384)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 냄새가 났다. 로 첫 문장이 시작된다. 제목에서 양과 강철의 조합이 대체 어울리기나 하는가. 의아했다. 부드러운 양의 털로 펠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해머로 완성 한단다. 피아노 속의 해머로 인해 아름다운 선율로 울리는 것이다. 소나무의 일종인 가문비나무는 피아노의 일부가 되고. 여든 여덟 개의 건반에 연결된 강철 현. 아, 그래서 양과 강철의 숲이 되었구나.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 시간이 남아도는 아이였던 나(도무라)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손님을 체육관까지 안내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고향 홋카이도의 숲 냄새를 느낀 나는 조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때까지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던 내가. 그 조율사의 제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가 소개해 준 학교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하고 이타도리가 있는 그 악기점에 취직하여 조율사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 조율은 조율 기술 외에도 다른 것이 더 있다는 선배 야나기의 말을 듣고, 클래식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모차르트, 베토벤, 소팽의 피아노곡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피아노를 만나고부터 나는 기억 속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울어대는 아기의 미간 주름. 있는 힘껏 힘을 준 새빨간 얼굴에 잡힌 주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의지를 품은 생명체 같아서 옆에서 보면 가슴이 뛰었다.’(p26)


"기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의사소통이야. 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그 이미지를 제대로 확인해야 해.“(p45)


 도무라에게 있어 숲은 신이다.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에서 숲 냄새를 느끼고 조율사가 되고 싶어 했으며, 피아노를 알고부터는 ‘소리’가 신이 되었다. 고객의 집에서 조율을 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동글동글한’ 소리, 활기찬 소리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면 고객은 감동한다. 형체가 없는 ‘소리’에 ‘동글동글’한 형체를 연상하다니... 그 의미를 같이 공감하는 것. 그 과정의 고객과의 교감, 바로 소통인 것이다.


 “아름다운 라가 440헤르츠로 표현된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피아노는 한 대 한 대 다른데 소리는 서로 연결되어서 주파수로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도 들어요.”(p116) 이런 말이 내 안에서 나오다니 하며 스스로 놀란다. 아직 한참 멀었다. 체육관에서 경험한 ‘심장이 떨리는’(p118) 그 소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것이 있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은 고객으로부터 클레임을 받고 크게 상심한다. 과연 재능만 가지고 내가 그 숲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재능을 논하기에도 아직 머나 먼 길이다. 경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정열로 대신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한다. 선배 조율사들의 일 하는 모습을 견학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상상하고 도달하려는 숲에 이르기 위해 분발하고 분발한다.


 고객으로 있던, 피아노를 무척 사랑하는 쌍둥이 자매 유니와 가즈네의 이야기 또한 잔잔하고 애틋한 즐거움을 준다. 병으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조율사가 되고 싶다는 유니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감동에 사로잡힌다. 피아노 조율사는 피아니스트, 피아노와 어우러져 조화로운 소리로서 세상에 소통하는 것이다. 피아노에 손 대 본적이 없지만, 특유의 감성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는 끈기와 베짱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 그의 진심어린 태도에 감동을 하고, 주위 사람들을 그 행복의 숲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읽어가는 내내 숲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버섯을 따러 다니곤 했다. 특히 장마 끝에 숲속 땅은 축축하게 물기가 배어 나왔으며 소나무 밑 언저리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돋아나 있었다. 싸아하게 느껴지는 서늘함과 소나무 향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의 숲은 무엇일까. 내가 도달해야 할 숲은 어디일까. 내가 아주 좋아해서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숲은 무엇일까. 지친 영혼까지도 치유해주는 책 읽기.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더불어 글쓰기로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지향점은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p68) 이건 나의 욕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얘기가 웃긴다고? 조심해! 나 까칠한 들고양이 에드가야! - 400일 동안 끄적인 일기
프레데릭 푸이에.수지 주파 지음, 리타 베르만 그림, 민수아 옮김 / 여운(주)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깜찍한 고양이가 있다.

자신이 들고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름은 에드가, 태어난지 6개월 된 아기 고양이

그런데 ‘아가’라고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인형처럼 대하며 자신을 쓰다듬지도 말라고 한다

인간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쟁이로 본다.

자신은 아주 똑똑하고, 잘생기고 게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다며...

사냥, 먹기, 낮잠이 취미인 고양이

 

 잘 때 절대 깨우지 말고

기름지고 맛있는 먹이만 잔뜩 달라는 요구사항에

깔깔깔 웃음이 나온다. 어찌 그렇게 사람의 마음과 똑같은지...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편안함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구나!

 

 

 

 

 

 또 얼마나 똑똑한지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척척 꿰고 있다.

정치, 사회제도, 첨단기술과 문명, 사회의 불평등, 소외, 청년 실업 등의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불만이 많다.

인간들이 자신의 눈에 보기 좋게 하려고 미용사에게 데려가서 꾸며주고,

살이 좀 쪄 보인다 싶으면 다이어트 시킨다며 요란을 떤다고.

 

 명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이름도 없는 달변가 고양이가 생각난다. 한 서생의 집에 들어가 그의 일거수일투족, 가족들의 생활상을 모두 엿보고 엿들으며 사는 고양이. 언젠가는 고양이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야무진 꿈을 품은 채, 불만도 참고 하루하루만 잘 살아내면 된다는 그 고양이가.

 

 그에 비하면 에드가는 까마득한 후배이며 어린 고양이다.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붙임성 있는 고양이 에드가의 눈과 입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을 내세워 쓴 우화는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아! 하며 생각해볼 거리도 주어서 좋다.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나, 키우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귀엽고 까칠한 에드가의 메시지로 반복되는 일상의 나른함도 거뜬하게 날릴 수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월기>는 당나라의 기담 <인호전人虎傳>의 제재를 모티브로 작품이 된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일본 교과서에 1951년 처음으로 게재되면서 그 후로 60년이 넘도록 수록된 국민작품이다. 짧은 글 속에 섬뜩한 교훈을 주는 강렬함이 매력이다. 아무리 타고난 수재일지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갈고 닦는 노력이 없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즉 호랑이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의 대략은 이렇다. 당 현종 때의 이징(李徵)은 박학다식에 출중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오늘날의 경찰 및 군사 담당 관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곧 관직에서 물러난다. 고향에 머물면서 남들과 교제도 모두 끊고 오로지 시작(詩作)에 몰두한다. 시인으로서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고자.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생활은 점차 궁핍해지고 초조해진다. 그 무렵부터 얼굴은 험상궂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여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느 지방의 관리직을 얻었는데,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상태로 그 일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1년 후 어느 날, 결국 발광하여 호랑이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진사에 급제했던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원참이 감찰어사직을 수행하러 길을 떠나는 중에 우연히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지난날을 하소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째서 호랑이가 되었을까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왜 이전에 인간이었던가 생각을 하게 된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p11)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중략)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詩友)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p16)


 호랑이의 모습을 한 이징은, 굶어죽을 지도 모를 처자보다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 따위를 먼저 염려한 남자이니 이런 짐승의 몸으로 전락한 것이라며 통곡한다. 우리는 살면서 남과 비교하며 저울질 한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보다 못했던(자신의 생각에) 사람이 어느 날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한다. 인생, 생각에 따라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루하루 보낸 날이 모여서 ‘내’가 되는 것이니.


<이릉>은 한나라의 장수 이릉과 그를 두둔했다가 궁형을 받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 그리고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고난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19년 만에 돌아온 소무라는 세 인물의 삶을 보여 준다. 흉노족에 패하여 항복한 이릉은 분노로 평생을 살고 사마천은 쉰이 다 된 나이에 그런 치욕을 당했는데도 마음을 다잡아 서사의 편찬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은 다르다. 어떤 것이 옳다고, 이것이 정답이니까 그대로 따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 즉 문학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절대적인 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제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자로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밤에 “봉황도 나오지 않고 황하는 그림도 내지 않도다.(성왕이 출현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나도 끝이런가” 라고 혼잣말로 공자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을 때, 자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공자가 한탄한 것은 천하의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로가 운 것은 천하를 위함이 아니라 공자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p97)


 여기서 자로는 결심한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p98)공자의 제자 중 자로만큼 스승에게 많이 혼나고 거침없이 반문한 자도 없었다고 한다. 긴 방랑과 고난을 함께 했고 맡은 일에 최후까지 열정을 다하고 산화한 인물이다. 사제간의 정, 그 뜨거움이 마음에 감동으로 일렁였다.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조선인 순사 조교영의 눈에 비친 풍경이다.

전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운전수와 순사를 깔보고 무시한다. 일본인 부인과 조선인이 싸운다. 친일 조선인의 연설을 듣고 일본 청년이 욕을 한다. 일본 신사의 정중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우쭐해하는 조선인 순사가 있다. 강우규 의사의 사이토 총독에 대한 의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의 조선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창녀의 목소리. 새로 부임한 일본인 교장이 종순의 덕을 말하는 장면(일본에 있을 때는 독립자존의 정신을 말하던)이 나온다.


 1923년. 겨울은 더럽게 얼어 있었다.

모든 것이 더러웠다. 그리고 더러운 채로 얼어붙었다. 특히 S문(서대문)밖의 골목에서는 더욱 심했다. 중국인의 아편과 마늘 냄새, 조선인의 싸구려 담배와 고추가 섞인 냄새, 으깨진 빈대와 이의 사체 냄새, 길거리에 버려진 돼지 내장과 고양이 가죽 냄새, 그것들이 그 냄새를 보존한 채 길 위에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p240)


보통학교의 일본역사 시간, 다소 당혹스런 표정의 교사가 있다.

“이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치 딴 나라 이야기인가 하는 아이들의 둔한 반응.

“그리하여 히데요시는 조선으로 쳐들어갔던 것입니다.”(p242)


 마지막 장면은 순사 조교영이 식산은행 옆에서 ‘돌맹이’처럼 자고 있는 지게꾼들을 깨우며 한탄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너는, 너희는.”

돌연 무언가 알 수 없는 격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는 한 번 몸을 떨고, 그들의 누더기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고 울기 시작했다.

“너희는, 너희는. 이 반도는... 이 민족은...”(p250)


 정말 더러웠다. 더러워진 채로 얼어버린 겨울 풍경. 지금의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캄캄한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득함.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일본인 작가의 눈에 비친 비참한 조선의 현실과 일본제국주의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상 일본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그의 작품은 더욱 더 읽어볼 의무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나카지마는 일본에서 제2의 아쿠타가와로 불린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이 뒤늦게라도 문예출판사를 통해 나온 점, 내가 이 작품을 만난 것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문예출판사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